글로벌청년포럼기획 – 전문가에게 듣는다 ➍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삶을 주었지만, 동시에 인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힘도 주었다.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이 서로 충돌하는 직선의 서사 위에서 전쟁과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면,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공존하는 둥근 서사 위에서 평화와 손을 맞잡아야 한다.
폴 내시(Paul Nash), 메닌 거리(The Menin Road), 1918
전쟁과 과학기술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은 직후, 일본은 고종에게 회전포(回轉砲) 1문과 연발총 2정을 선물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 후 식민지배체제로 엮일 두 나라의 운명이 이 장면에 예고되어 있는 듯하다. 서양 무기를 앞세운 일본의 기술적 우위는 곧 제국주의 지배력으로 전환되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에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충격을 받은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어떤 어려움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우주 탐사에 나설 것이며, 십 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후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실현되었고 우주 기술개발 경쟁의 장을 열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쟁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전시에 과학기술은 상대를 제압할 군사력의 바탕이 되었으며, 평시에도 미래 산업과 기술혁신을 이끌 원동력으로 찬사 받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전쟁과 과학기술은 그리 잘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전쟁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지만 과학기술은 중립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전시에는 아군과 적군 사이에 엄격한 경계가 존재하지만 과학기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신념이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쟁의 역사는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와 조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리장성, 앙코르와트와 같은 오래된 건축물부터 등자와 총의 발명, 공중보건의 증진을 가져온 각종 질병 연구, 컴퓨터와 인터넷 등 군사적 필요에 그 기원을 둔 발명의 역사가 많이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전전자기 교환기(TDX), 기아자동차 봉고, 비철금속 관련 기술 등의 발전에 국방 기초연구가 기여한 바가 크다.
승전과 패전의 서사 속 현대 과학기술
현대 과학기술과 전쟁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직선’이다. 승리를 향한 전투는 항상 앞을 향한다. 뒤를 향한다는 것은 군인에게는 패배를, 민간인에게는 피난을 의미할 따름이다. 6·25전쟁을 그린 김환기의 그림 「피난열차」는 생존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난 이들의 이동을 그렸다. 그 이동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표정 없는 이들의 얼굴이 불안을 드러낸다. 1919년 1차 세계대전을 묘사한 폴 내시의 「메닌 거리」도 수직의 이미지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풍경을 표현했다. 폐허가 된 거리 모습이 몹시 을씨년스럽다.
전쟁은 모든 것을 직선과 수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든, 자원이든, 그 무엇이든 줄을 세우고 중요한 순서를 정한다. 일제 식민 지배를 거치며 한국인이 경험한 총력전 체제(total war system)가 그랬다. 전쟁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고 배치함에 따라 전방과 후방의 경계는 무너졌다. 먹을 것, 입을 것, 일상의 도구, 그리고 사람조차도 예외 없이 전쟁 자원으로 인식됐다. 전쟁 패배의 원인을 과학기술력 부족에서 찾은 일본은 전후 복구과정에서 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현대전에서 과학기술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비행기와 독가스, 유보트를, 2차 세계대전은 원자폭탄과 레이더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드론이 최종 결정권을 가진 인간 조종자를 임무 수행에 방해된다고 판단해 공격했다는 시뮬레이션 훈련 결과가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린 피카소가 인공지능을 예측했을 리는 없지만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 무정한 인간에 기계의 이미지를 활용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김환기, 피난열차, 1951
둥근 과학기술로 전쟁 아닌 평화를 꿈꾼다
전쟁을 불가피한 과정으로 전제하는 직선의 세계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평화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어떻게 연결하고 촉진할 것인지를 탐구하는 도덕적 상상과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둥근’ 과학기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거나 종료된 상태가 아닌,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갈등과 반목의 욕망과 동기를 가진, 국적과 생각이 다른 각 주체들의 상호 연결과 협력을 도모하려는 도전이 꼭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우주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주 한 귀퉁이에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구인이라는 정체성을 발견한 강렬한 순간이었다. 기대만큼이나 많은 우려가 있지만, 인공지능을 비롯해 과학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구를 몇 번이나 파괴할 정도의 군사력을 갖게 될 것은 물론이다. 파국을 내포한 직선의 세계보다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 돕는 ‘둥근 과학기술’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할 이유다. 이 둥근 서사에서 평화와 과학기술은 서로 잘 어울린다.
한경희 연세대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