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하늘길이 닫히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지금 전 세계 관광업계는 사상 유례없는 충격 속에 있다. 각국은 생계의 위협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과 기업을 지키기 위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으며, 유네스코 또한 관광 산업에 종사하는 취약 계층의 피해와 세계 각지의 문화유산 및 생태계의 안녕을 우려하고 있다. 단순히 휴식과 소비의 문제만이 아니라 환경과 문화의 지속가능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행이 현재의 위기를 딛고 ‘넥스트 노멀’을 열어갈 방법은 없을까?
텅 빈 관광지의 위협
“여행이 현대인의 삶에 이토록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여행전문가이자 『디애틀랜틱』의 선임기자인 제임스 팔로우스(James Fallows)는 지난 6월 코로나19로 인한 여행의 변화를 다룬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그의 말대로 지금 세계 곳곳은 ‘여행 금단 증상’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크고작은 여행 중단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세계를 잇는 항공사에서부터 낯선 여행지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지켜줄 호텔과 택시 기사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광업의 붕괴 위기가 사회 전반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가 지난 6월 발표한 「세계관광지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올해 초 전 세계 여행자 수는 전년 대비 56%가 급감했고 5월에는 그 낙폭이 98%에 이르렀다. 이 감소폭을 수출액으로 환산하면 약 320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지난 2009년 세계경제위기 상황에서 기록된 수출액 감소폭의 세 배가 넘는 규모다. 더욱이 이 상황은 단기간에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세계관광기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수습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에 따라 올해 전체의 관광객 감소폭을 최소 62%에서 최대 79%로 예측한 바 있는데, 최악을 가정한 시나리오가 ‘여행 제한이 12월에 풀릴 것’을 전제로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감소폭이 그보다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더불어 세계관광기구는 올해 여행 관련 매출이 약 1조2000억 달러 줄어들 경우 실직 위협을 받는 일자리 수가 1억20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선진국들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의 피해를 몰디브 같은 작은 섬나라들이 집중적으로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 조치의 충격이 부자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에, 그리고 사회적 취약계층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다. 저개발국, 특히 소규모 도서 국가(SIDS)들은 국가 재원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이며 일부 국가에서는 그 비중이 무려 80%에 달해, 여행 제한 조치가 국가의 위기를 불러올 우려도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전 세계 관광업 종사 노동자의 54%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여행업계 종사자 중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과 이주민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여행 공백의 사회적 충격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행의 위기가 환경과 문화의 위기로
한편으로는 여행이 중단되면서 지구의 생태계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막대한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 항공업계를 필두로, 여행업계는 그간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분야로 지적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몇 달 전 SNS에서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긴 베니스 운하에 돌아온 백조’라든지 ‘중국 윈난성 차밭으로 돌아온 코끼리 떼’ 등 인간의 활동이 멈춰선 자리에 다시 돌아오고 있는 야생동물 관련 사진들이 폭발적으로 공유되면서 그간 지속가능하지 않은 여행을 해 온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SNS를 뜨겁게 달구며 언론에까지 소개됐던 이들 사진들이 대부분 조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여행 제한이 곧장 생태계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기대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여행이 중단됨으로써 지구 곳곳에서 생태계 위협을 받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관광 수입은 전 세계의 문화유산이나 자연보호구역들이 각종 연구 및 보호 활동을 펼치는 데 필요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 왔기 때문이다. 이는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여행 산업이 갖는 다층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세계관광기구는 2015년 기준 전 세계 관광업의 약 7%가 야생동식물 관광과 관련돼 있으며, 해당 분야는 매년 약 3%의 성장세를 유지해 온 것으로 분석한다. 케냐는 자국 내 야생동식물 보호 관련 예산의 70%를, 짐바브웨는 관련 예산 전액을 관광 수입에 의존하는 등, 아프리카의 14개 국가는 매년 자국 내 자연보호구역 입장료로 벌어들인 1억4200만 달러 중 적지 않은 금액을 해당 지역 내에서 밀렵을 방지하고 난개발을 막는 데 써 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입장료 수입이 끊기면서 이같은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겼고, 여러 자연보호구역에서는 이미 밀렵과 약탈이 늘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 케냐의 마라 나비스코 보호단체는 보호구역이 폐쇄된 이후 40명의 소속 순찰대원들의 월급 지급이 끊겼고 600여 명의 마사이 족 가족들이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보고한 바 있으며, 국제보호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도 코로나 사태 이후 아프리카 지역에서 육류 섭취를 위한 야생동물 포집이 늘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삼림 파괴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유산 모니터링이나 보존 및 발굴 작업비용의 상당 부분을 관광 수입에 의존해 온 문화유산들도 여행이 중단되면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 지역이 운영 및 보전 활동 자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는 데 더해, 유·무형 유산 관련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원주민들이 받는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8월 9일 국제 원주민의 날을 맞아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원주민들이 받은 피해는 절망적”이라며 “전 세계 4억7600만 명의 원주민들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각국의 지원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의 세계유산 및 박물관의 90%가 문을 닫았고, 박물관의 13%는 다시 문을 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강화된 방역 지침을 지키기 위해 이들 유산과 박물관들은 상황이 호전된 이후 다시 문을 연다 해도 이전과 같은 관광 수익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를 바라보고 세우는 관광 관련 대책이 단기적 처방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원상 복구’ 이상을 위한 합의가 필요할 때
현재 각국은 여행 제한 조치의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여행업계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경제적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그룹(UNSDG)이 지난 8월 발간한 정책보고서 「코로나19와 관광의 전환」은 “전 세계 수백만 명에 달하는 여행 관련 종사자들이 정당한 노동권을 보장받는 가운데 직업을 지키며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라고 강조했다. 정책보고서는 또한 ▲산업 전체가 활력을 잃지 않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세금 감면이나 지불 유예,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금, 대출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이 파산하는 것을 막고 ▲여성 등의 취약계층과 비공식경제종사자, 자연생태관광 종사자 등을 위한 중단기 금융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정책보고서가 “(경제적 지원책을 넘어) 이번 위기를 관광 산업의 구조를 더 탄력적이며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도 강조했듯, 여러 국제기구와 관계자들은 지금이 관광업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과거의 노멀’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올바른) 노멀’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합의를 이루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경제적 차원, 사회·문화적 차원, 그리고 환경적 차원에서 관광 산업이 얼마나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대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역시 여행 관련 종사자들의 삶을 사회·경제적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과 더불어 ▲업계 전반의 회복력을 담보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을 세우고 ▲디지털화 등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지속가능하며 포용적인 녹색성장으로 나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여행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9월 2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문화, 관광, 코로나19: 회복, 복원 및 치유’(Culture, Tourism and COVID-19: Recovery, Resiliency and Rejuvenation)를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도 참석자들은 같은 내용을 지적하며, 앞으로 여행이 관광지를 재생하고 해당 지역에 경제·사회·환경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기후변화와 같은 전 지구적 도전 과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메틸트 뢰슬러(Mechtild Rössler) 세계유산센터장의 진행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패널들은 지난날 기하급수적 성장에만 집중해 온 관광업이 무분별한 관광객 유입 등의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을 유발해 세계유산 및 보전지역에 적잖은 과제를 안겼다고 진단하고, 단순히 코로나 이전으로 상황을 되돌리는 대신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새 모델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번 위기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시 날아오를 조건
향후 여행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관련 주체들이 따를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들고,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이를 지켜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토론회 참석자들도 여행업계와 소비자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적 접근’이 새로운 여행의 기준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는 데 동의했다. 남아프리카관광의 CEO 시사 은트쇼나(Sisa Ntshona)는 “소외된 사람들은 (유산을) 파괴하고, 포용된 사람들은 보호한다”고 말하고, 기업에서부터 정부 당국과 지역사회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행업계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이 ‘여행 단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환경보호와 공정한 가격과 지속가능성에 공감하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여행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 중 오버투어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던 이탈리아 베니스의 주민들이 2017년에 “당신(관광객)들은 이곳을 파괴하고 있다”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정부도 기업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오버투어리즘의 경제적 유혹을 떨쳐낼 마지막 보루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산을 지켜 온 주민들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외부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가장 다이내믹하며 일자리 집약적인 산업인 여행이 혁신과 전환을 거쳐 지속가능관광으로 나아가는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업계 전체가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뼈를 깎는 변화를 요구하는 말은 심지어 야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이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더는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은 아닐까? 컨셔스 트래블의 설립자 애나 폴락(Anna Pollock)은 “그동안 여행업계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위기에 대단히 취약한 채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고 비판하며, 지금 변할 수 있어야만 파국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여행은 업계뿐만 아니라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변화를 맞이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양적인 성장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었듯,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여행에 있어서도 ‘더 싸게, 더 많이, 더 빠르게’라는 근대적 가치를 대신할 새로운 비전을 채워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 지역과 전통과 문화에 대한 따뜻한 관심, 소비뿐만 아니라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배려, 그리고 유일하며 대체 불가능한 지구를 지키려는 의지를 채워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다시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다’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bbc.com “How Can We Be Sustainable Post-Covid 19”
· foreignpolicy.com “The Future of Travel after the Coronavirus Pandemic”
· unesco.org “Experts Call for Inclusive and Regenerative Tourism to Build Back Stronger Post-COVID-19”
· United Nations Sustainable Development Group 「Policy Brief: COVID-19 and Transforming Tourism」(2020.08)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