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비형식교육 지원 사업
‘브릿지 사업’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개발도상국, 교육, 문해, 기초교육, 비형식교육, 학교 밖 교육 등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요? 모두 맞습니다. 브릿지 사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학교 밖 비형식교육 지원을 통한 교육소외계층의 교육 접근성을 강화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지금까지 이 지면을 통해 브릿지 사업에 대한 소개, 사업 현장의 목소리, 실무자들의 출장 이야기 등을 전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브릿지 사업의 핵심인 학교 밖 비형식교육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너무나도 유명한 세계인권선언의 26조에 있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교육권’이 있으며, 이것은 무상으로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부터 시작합니다. 인종, 성별, 나이 등의 이유로 선택 여부를 따질 수 없는 당위적인 명제이지요. 이 당연한 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유네스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2억 2천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모두를 위한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지키기 위해 유엔의 교육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브릿지 사업은 유네스코의 우산 아래서 협력국의 교육부 및 국가위원회와 맞잡고 개발도상국 국민의 교육권을 지키고자 하는 사업입니다.
브릿지 사업은 왜 하필 학교 밖 비형식교육을 지원하게 되었을까요?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전 세계에서 7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령기에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해 글을 읽고 쓸 줄 모릅니다. 그중 3분의 2가 여성입니다. 주어진 환경 때문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생의 두 번째 기회가 필요합니다. 브릿지 사업은 이 두 번째 기회를 만드는 사업이며, 교육소외계층이 빈곤의 굴레를 벗게 해주는 기회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유네스코는 교육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어린이와 성인이 빈곤에서 벗어나 사회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브릿지 사업이 제공하는 학교 밖 비형식교육은 교육의 기회 그 자체이면서,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말라위의 중학생 77명은 어디로 갔을까?
비형식교육이란 ‘공식적인 학위나 졸업장의 취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화된 교수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나 국가의 학력·학위 인증을 받지 않은 교육’을 의미합니다. 즉, 형식교육(학교교육) 밖에서 일어나는 체계화된 교육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단어가 여전히 낯선데, 이는 학령기 인구의 취학 비율이 초등학교 98.5%, 중학교 98.2%, 고등학교 94.5%에 이를 정도로(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 우리나라의 형식교육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관심이 필요한 교육 사각지대의 소외계층이 많지만, 개발도상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형식교육의 수요가 크지 않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사정은 다릅니다. 브릿지 사업 협력국인 말라위는 전기중등학교(중학교 수준) 수료율이 23%에 그칩니다. 100명 중 23명만이 중학교를 졸업한다는 뜻입니다. 함께 입학했던 나머지 77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브릿지 사업의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말라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개발도상국에는 학교 안에 있는 사람보다 밖에 있는 사람이 더 많으며, 이들을 위한 학교 밖의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비를 낼 수 없어서, 집안의 생계를 위해 아동 노동을 하느라,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혹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들에게 학교 밖 비형식교육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교육권을 지키는 유일한 답입니다.
새로운 교육소외계층을 만든 팬데믹
코로나19 팬데믹은 교육에도 큰 손실을 입혔습니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16억 명 이상의 공교육 학습자가 교육의 기회를 빼앗겼고, 전 세계 학생의 94%가 학교 폐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학교 밖 어린이와 청소년의 숫자도 늘어났습니다. 팬데믹이 완화됐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유엔과 유네스코는 학습자 2400만 명이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새로운 교육소외계층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이 집계에는 비형식교육을 받고 있던 청소년과 성인의 수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던 취약계층은 팬데믹을 거치며 그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특히 성인을 위한 성인문해 및 교육은 팬데믹으로부터의 회복 과정에서 각국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설문에 응답한 49개의 성인문해 프로그램 중 90% 이상은 팬데믹 이후 프로그램이 일부 또는 전면 중단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평생교육의 거점으로 거듭난 지역학습센터
이렇게 팬데믹을 거치며 교육의 기회가 줄어든 상황에서 학교 밖 교육과 이를 지원하는 브릿지 사업의 중요성도 점차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릿지 사업은 새로운 면모를 부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릿지 사업의 실행 현장이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학습 공간이며,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다목적 장으로 기능하는 지역학습센터가 평생학습의 거점이자 보건위생교육의 거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산간오지에 거주하고 있는 협력국 주민들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와 보건위생 지식들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브릿지 협력국들은 지역학습센터를 거점으로 한 ‘코로나19 대응 특별사업’을 신속하게 기획하여 기존 학습자뿐 아니라 모든 주민들에게 마스크 등의 보건위생물품을 보급하고 손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 수칙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는 학교에 다니던 어린이들이 지역학습센터에 모여 학업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형식교육과 비형식교육이 자연스럽게 융합하게 된 것이지요. 이 과정을 통해 지역학습센터는 더는 학교 밖 일부 학습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 주민에게 열린 평생학습의 장이 되었습니다. 학교 안과 밖의 경계를 넘어, 남녀노소 모두가 어울려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이지요.
브릿지 사업에서 지역학습센터는 학교 밖 비형식교육이 실제로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이자,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권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지역학습센터가 없는 동티모르와 말라위에는 새 센터를 짓고, 부탄과 라오스, 파키스탄에서는 방치된 기존 센터의 환경을 개선합니다. 컴퓨터를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동티모르 어린이들은 새 지역학습센터에서 방과 후에 컴퓨터 수업을 듣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여성들이 모여 글을 배우고,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직업 훈련을 받고 창업을 하기도 합니다. 영유아교육과 성인문해교육을 함께 제공하는 말라위 지역학습센터에서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유아부터 지팡이를 짚는 노인까지 모두가 각자에게 필요한 교육에 참여합니다.
변화를 확산하기 위한 정책 발전
브릿지 사업은 지역학습센터를 만들고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를 넘는 변화를 위해 협력국의 비형식교육 정책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브릿지 사업을 통해 라오스에서 개발한 ‘국가 지역학습센터 매뉴얼’이 그 좋은 예입니다. 라오스에는 정부, 국제 NGO, 국내 시민단체 등 다양한 기관들이 지역학습센터를 통해 학교 밖 교육과 평생학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 기관에 따라 지역학습센터의 성격과 운영이 파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라오스국가위원회와 교육청소년체육부는 정부 차원의 지역학습센터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함으로써 각 지역의 센터들이 효율적으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탄에서는 비형식교육 학습자들의 정보관리 체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전까지 부탄 정부는 학교에 다니는 학습자에 대한 정보만 국가 차원에서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브릿지 사업을 통해 학교 밖 학습자의 학습 기록과 정보도 수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정보는 부탄의 모든 국민을 위한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삶을 바꾸는 교육, 여러분과 함께 만듭니다
앞서 함께 살펴보았듯 개발도상국에서 국민의 교육권을 확보해 나가는 데 비형식교육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브릿지 사업 협력국들이 저마다 교육부 안에 비형식교육 전담부서를 설치해 두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브릿지 사업은 이처럼 개발도상국에서 꼭 필요로 하는 비형식교육을 지원하고 있지만, 단지 이것이 브릿지 사업의 최종 목표는 아닙니다. 어쩌면 사업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공교육의 기회를 누리며 글과 숫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세상이 되어 브릿지 사업이 더는 필요 없어지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비형식교육은 이 사회와 학습자의 요구에 더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부합하는 평생학습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더욱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브릿지 사업은 학교 밖 지역학습센터에 연필 한 자루, 교과서 한 권을 배포하고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교육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찾고, 꿈을 찾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업입니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삶은 바뀌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바로 후원자들과 대한민국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비형식교육의 의미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 실제로 현장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자부심이 되면 좋겠습니다. 삶을 바꾸는 교육은, 여러분과 함께 브릿지가 만듭니다.
김계신 국제협력사업실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