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학교 60년사 ➋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세계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유네스코학교에 한국이 가입한 지 60년을 맞았다. 지난달부터 이어오고 있는 두 번째 기사로 1961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유네스코학교 활동을 정리해 본다.
평화를 위한 국제이해교육
1953년에 ‘세계 공동체’와 ‘실험적 교육 활동’을 강조하며 시작된 유네스코학교는 1957년에 국제이해와 국제협력을 위한 유네스코학교 프로젝트(Associated Schools Project)*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다. 이는 국제이해교육을 매개로 학생의 마음에 평화의 터전을 만들고자 하는 유네스코학교 활동의 취지가 좀더 부각된 것으로, 1961년 국내 유네스코학교 활동이 출범했을 때도 반영되었다. 1962년 6월 18일부터 22일까지 숙명여고에서 열린 유네스코학교 프로젝트 전국연구대회에서 당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김성일 사무국장(오늘날의 사무총장)은 국제이해교육을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교육”으로 정의한 뒤 “국제이해교육은 세계각국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입장이 아니라 인민의 입장에서 정확히 시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각국의 체제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세계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 당시 표기는 협동학교계획이었으나 이 글에서는 ‘계획’을 ‘프로젝트’로 통일하여 표기함. 한편 ‘유네스코학교’는 2013년 이전까지 ‘유네스코협동학교’로 불렸다.
초창기 국내 유네스코학교 활동의 방향과 내용은 1962년부터 1983년까지 총 14차례 열린 국내연구협의회를 통해 제시됐다. 제2회 연구협의회(1963년)에서는 중고교의 사회과 학습지도방안과 교육과정의 효과적인 운영 방안을 논의했고, 제9회 연구협의회(1972년 전주)는 환경보전과 지역사회개발을 연구 주제로 추가했다. 1973년부터는 문교부가 국제이해교육의 강화를 장학지침으로 시달함으로써 국제이해교육 확산에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졌다. 한편, 1971년과 1981년에는 서울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최로 아시아 지역 유네스코학교 회의가 열렸고, 그 첫 번째 회의에서는 지역내 유네스코학교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국제이해교육센터의 설립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유네스코학교들은 세계문제와 유엔 및 전문기구의 역할, 외국과 외국문화, 인권 등 당시 유네스코학교 주요 학습 주제에 따른 활동을 진행했다. 1967년을 예로 들면, 영어웅변대회, 프랑스·일본·말레이시아 학생과의 국제 펜팔 활동, 베트남 파병 백마부대 위문편지 쓰기, 일본의 지리 연구를 내용으로 하는 교과 활동 등이 있었다. 스포츠와 국제이해, 민족주의가 국제이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하는 학습 활동과 120개국 국기 제작 및 그 유래와 국기설명서 게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활동도 있었고, 인권선언문 강독회와 모의 유엔 총회는 지금까지도 유네스코학교에서 펼치고 있는 활동이다.
유네스코학교 활동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및 관련 조정기구와 각급 유네스코학교가 유기적 관계를 맺지 못함으로써 다소 침체기를 겪었다. 1980년대 들어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1986년부터 국내외 유네스코학교 중 희망하는 학교를 국제이해교육 시범연구학교로 지정해 이 학교들의 연구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6-1988년 기간 동안 5개의 지정연구학교 외에 14개교가 31건의 현장 연구를 수행했고, 이 활동들은 유네스코 본부의 주요 사업과 국내의 교육 동향을 연계해 연구의 다양성과 깊이를 담아내고자 했다.
세계화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국제이해교육
1990년대 초, 한국의 국제이해교육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됐음에도 학습자료와 교사교육이 충분치 않았고, 국제이해교육 관련 학과 및 사회적 이해도 부족했다. 이에 정부는 1995년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한국의 국제이해교육센터로 지정했다. 국정 지표인 세계화 정책에 맞춰 국제이해교육 사업을 추진하는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국제이해교육이 정보통신혁명과 세계화, 냉전체제의 붕괴와 국제관계, 시장경제의 보편성 등 세계의 변화 상황에 적합한 교육을 충족하기 어렵고 ▲유네스코의 기준에 의하여 보편적인 수준에서만 전개되었을 뿐 한국적 상황에서의 국제이해에 필요한 부분이 별로 강조되지 않고 있으며 ▲세계화 시대의 국제이해교육은 단순히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의 세계화, 한국사회의 세계화라는 차원도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어 국제이해교육의 재개념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로소 한국의 국제이해교육 사업이 유네스코학교 중심의 시범 사업 수준을 넘어 세계화 교육의 핵심으로 새롭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국제이해교육 교사용지침서 『학교에서의 국제이해교육』이 제작·보급되었고(1996년), 유네스코학교 기획위원회를 발전적으로 재조직한 국제이해교육 지도위원회가 구성되고(1997년), 유럽과 동남아지역 국제이해교육 해외연수, 국제이해교육 교원연수 등도 실시됐다. 1998년부터는 한국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 및 다른 문화의 유입이 본격화하는 현실을 반영해 타문화 이해와 세계시민의식 증진을 위한 ‘외국인과 함께 하는 문화교실’(CCAP)사업이 국제이해교육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다. 2000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국제이해교육연구회를 발전시킨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 창립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에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APCEIU)이 설립되는 데 이바지했다. 이어서 2001년에는 일본 유네스코 아시아문화센터(ACCU)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일교사대화(2001년-현재) 사업이 막을 올렸다.
요약하면, 유네스코학교 활동 제1기라 할 수 있는 1961-1994년에는 연구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평화를 위한 국제이해교육 중심으로 유네스코학교 활동의 기틀을 잡았고, 제2기에 해당하는 1995-2000년대 초까지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이해교육을 통해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특히, 1995년 이후의 국제이해교육은 다음 글에서 다룰 세계시민교육의 전사(前史)로서 그 의미가 적지 않았다.
[참고자료]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1968년도 국제이해교육 연구협의회 자료집』, 『1994년도 국제이해교육 연구보고서』, 『교원의 국제이해교육 증진에 관한 연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30년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50년사』, 「유네스코협동학교발전을 위한 협의회 자료집」, 『제1차 유네스코 국제협동학교계획 전국연구대회 강의록』
·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세계시민과 함께 평화의 문화를 배우다 2000-2020』
· 이택휘 「한국에 있어서 국제이해교육의 현황과 문제」
· UNESCO 『UNESCO Associated Schools Project Network (ASPnet): Historical Review 1953–2003』
신종범 유네스코학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