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밥상은 얼마나 건강한가요? 요즘 다이어트를 위해, 혹은 ‘저속노화’를 위해 매일 먹는 음식과 구매하는 식품의 상세한 성분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어요. 나트륨이나 지방이 몇 %나 들었는지를 꼼꼼히 살피는 사람도 있고, ‘비건’ 혹은 ‘제로’와 같은 문구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포장지에 적힌 수식어나 자세한 영양성분표가 그 식품의 모든 정보를 말해준다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식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만들거나 사먹는 일이 단지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오늘의 한 끼를 먹기까지 관여하는 수많은 결정들과 행위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생태적으로 정말 많은 흔적을 남겨요. 그 흔적들은 돌고 돌아 다시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죠. 우리가 식재료를 선택하고 음식을 먹을 때 관심을 가져야 할 게 숫자와 문구 너머에도 많이 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식품이 식탁까지 거쳐온 경로에 관심을 갖고 ▲식물성·친환경 식단을 선택하는 일의 더 큰 의미를 생각해 보고 ▲나아가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 일이 곧 문화 유산을 함께 향유하는 일임을 자각하는 것까지, 그 관심의 폭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더 넓고 깊어요. 오늘은 장을 보면서,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거나 사랑하는 가족의 한 끼 식사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식재료와 음식에 관한 ‘팩트’ 너머에서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조금은 더 넓고 깊은 지식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요.
+ 식품과 나 사이의 ‘사회적 거리’는?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하는 식품 포장지에는 많은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영양성분표를 통해 영양소별 함량과 비율을 정확하게 알 수도 있고, 각 재료들이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도 알 수 있죠. 덕분에 노르웨이의 관자, 베트남의 새우, 멕시코의 삼겹살, 호주의 갈빗살이 때로는 이탈리아의 치즈와 스페인 올리브유를, 때로는 프랑스 버터나 와인의 풍미를 입고 식탁에 오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계절과 지역에 상관 없이 원하는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시대. 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이 세상 구석구석과 가까이 연결돼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식탁이 유례없는 세계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은, 식품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일까요? 프랑스 몽펠리에 농업연구소의 다미앙 코나레(Damien Conaré) 세계식품시스템 유네스코 석좌 사무총장은 식품 유통의 글로벌화와 산업화가 표면적으로는 우리와 식품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갓 잡은 생선을 들고 활짝 웃는 현지 어부들의 사진을 보면서 식재료를 구입하면서도 생산자들이 거대 공급망 속에서 어떤 처우를 받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식품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곳까지 오면서도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각 단계마다 어떤 형태의 거래가 이루어졌는지에도 큰 관심이 없죠. 이처럼 고도로 산업화된 글로벌 식품 공급망 속에서 우리가 체감하는 ‘거리’에는 해당 식품이 우리 식탁에 도달하기까지 실제 거쳐온 사회적 경로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코나레 사무총장은 “중개인의 수가 증가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제적 거리가 멀어졌고 생산지가 더욱 외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지리적 거리도 멀어졌으며, (그 결과) 생산자와의 접촉이 단절되면서 소비자들의 식품 공급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졌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거리감과 단절, 그리고 무지는 결국 우리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식품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더 건강하고 공정하고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요구할 수 있는 건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생산자가 정성과 애정을 듬뿍 쏟아 수확한 식품을 소비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기업들이 제공하는 숫자와 정보 너머에 있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사회적 연결고리에 더 큰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다.
+ 내 몸을 넘어, 모두에게 건강한 식단의 조건은?
혹시 ‘지구식단’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국내 모 식품전문기업이 내세운 이 브랜드는 지속가능성을 내새운 식물성 식품들을 선보이면서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처럼 오늘날에는 식품을 소비하면서도 단순히 내 몸의 건강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나아가 지구 생태계의 건강을 챙기고자 하는 소비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비건(vegan)’을 중심으로 한 식물성 식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에는 기존 식량 생산 시스템의 ‘환경 비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여러 단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농·식품 관련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분의 1 가량을 차지합니다. 그중에서도 육류와 양식 어패류 및 유가공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의 양이 많고, 채소와 통곡물, 콩류의 생산 과정에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땅과 물,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여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채식 위주 식단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채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고, 식품 기업들도 발빠른 대응책을 내놓으면서 관련 시장은 지금도 쑥쑥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를 인류의 가장 큰 도전으로 꼽는 상황에서 이 모든 변화들은 분명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식량 생산, 특히 육류 위주 식단을 유지하는 데 이토록 많은 환경 부담 요인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전기차와 플라스틱 대체 상품에 쏟는 관심 이상으로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유네스코는 이러한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일종의 세련된 유행이나 도파민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소비 행태로 머무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식탁 위의 변화가 유행을 넘어 우리 일상 전반에서 더 크고 지속가능한 변화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데 더욱 관심이 있죠. 유네스코가 프랑스 망통과 미국 뉴욕에서 각각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적인 셰프,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와 다니엘 흄(Daniel Humm)을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하고 다양한 협업을 펼쳐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데요. 유네스코 『꾸리에』와의 인터뷰에서 셰프들은 식습관에 대한 소비자들의 사고방식 변화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넘어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키는 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그 다음 과제라고 말합니다. 식품 선택 과정에서 만들어 가는 변화를 더욱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변화로 확장시키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먹을지를 선택하는 일이 곧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마우로 콜레그레코의 이 말에서 책임 있는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책임 있는 삶, 나아가 사회와 세상 전반에 대한 우리 모두의 책임감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최근 식물성 식단 유행으로부터 읽어내야 할 진짜 메시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셰프들은 지속가능한 식단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관심을 유도하는 홍보 및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유엔 차원의 회의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 이 음식을 통해 맺어지는 나와 세상의 관계는?
식품과 나, 식품 생산자와 나 사이의 건강한 ‘사회적 거리’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지속가능한 식습관에 대한 나의 선택이 책임 있는 세상에 대한 더 확장된 습관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 유네스코가 음식이라는 어쩌면 더없이 원초적인 대상으로부터 이토록 거창한 의미를 함께 찾아보고자 권유하는 이유는, 음식을 만들어 섭취한다는 단순한 행위가 우리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 방식이란 포장지에 적힌 숫자와 문구가 아니라, 식생활을 영유하기 위해 매 순간 선택하고 만들고 공유하는 우리의 행동에 깃들어 있죠.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 ‘김치’가 아니라 ‘김장 문화’이며, ‘나폴리 피자’가 아니라 그 기술을 보유하고 전승하는 ‘피자이올로(pizzaiuolo)’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원산지와 영양성분표가 그 음식의 모든 ‘팩트’를 말해준다고 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을 거예요.
“나에게는 에드워드라는 미국 이름이 있지만, 저는 한국 이름도 있어요. 나에게 한국 이름은 ‘균’ 입니다. 그래서 이 요리는 이균이 만들었어요.”
지난해 ‘흑백요리사’의 결승전에서 떡볶이를 모티프로 한 디저트 요리를 내놓으면서 에드워드 리가 한 말입니다. 한국에서 떡볶이를 시킬 때마다 늘 많이 주셔서 떡이 두세 개가 남았고, 거기서 풍족함과 사랑과 배려를 느꼈다는 그에게 있어 떡볶이는 단지 떡과 고추장 소스로 이루어진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자 역사이며 문화였을 겁니다. 떡볶이에 깃든 에드워드 리의 기억은 같은 요리에 깃든 모든 한국인들의 기억과 일부는 겹치고 일부는 그렇지 않을 테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음식에 대한 기억과 행동이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기억과 행동이 되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매일의 식사를 위해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나 우리가 하는 행동의 결과가 식탁 위에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도 느끼게 될 거예요. 더 튼튼한 내 몸, 더 건강한 우리 사회, 그리고 더 지속가능한 우리의 지구를 위해 내리는 매 순간의 선택. 오늘 여러분의 ‘삼시세끼’에도 여기에 대한 생각을 살짝 얹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슈쿠키 돋보기 I 우리와 식품 간 건강한 관계맺기에 대한 유네스코의 제안, GEOfood🌱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Global Geopark)과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은 유네스코가 인간과 지구 환경과의 공존에 중점을 두고 자연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 각각 213개소와 759개소가 지정돼 있는 이들 지역에서 유네스코는 주민들과 정부 단체, 연구자들과 함께 지역 환경 보존과 연구뿐만이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이 ‘함께’ 발전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4개국의 26개 세계지질공원에서는 지역 농·축·수산물 생산자들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루트를 통해 소비자들을 찾도록 돕는 지오푸드(GEOfood) 브랜드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오푸드란 세계지질공원 내에서 자연경관과 전통, 문화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며 생산되는 지역 식품에 부착할 수 있는 브랜드인데요. 유네스코는 이러한 가치를 담은 지역 식품들이 각자의 이야기와 함께 식품 소비자들과 가까이 만날 수 있을 때, 우리 밥상에서 출발하는 건강한 변화의 바람도 더 힘을 받게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마침 우리나라의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에서도 지오푸드 로고를 단 식품이 나오고 있는데요. 바로 ‘푸랭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무등산 수박입니다. 여름의 더위를 싹 식혀줄 간식 하면 수박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올여름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출하될 ‘지오푸드’ 무등산 수박을 시원하게 한 입 베어물면서,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눠보아요.
김보람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