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핫한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덕분에 요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데요. 마침 유네스코에서는 미슐랭 3스타 셰프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유네스코와 세계적인 요리사? 언뜻 봐서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이 조합은 과연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여러분께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 세계적 요리사와 유네스코, 음식과 문화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다
지난 9월 25일, 세계적인 요리사 다니엘 흄(Daniel Humm)이 유네스코의 음식 교육 분야 친선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대개 임명식은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지만 이번엔 다니엘 흄이 운영하는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에서 열렸습니다. 오드레 아줄레 사무총장이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면서 일정을 조율한 것 같아요.
다니엘 흄은 스위스 출신의 요리사로, 환경 보호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2021년부터 모든 음식을 식물성 식재료만을 이용해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실천 중입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의 식당은 얻는 것 만큼이나 지키기가 어렵다는 미슐랭 3스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친선대사로서 다니엘 흄은 지속가능한 음식 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전통 요리 문화의 보존 및 이를 통한 환경 보호를 강조할 예정이라고 해요. 아울러 유네스코가 계획 중인 ‘세계음식지도(International Food Atlas)’에도 참여할 예정인데요. 세계음식지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백 개의 전통 요리 문화(한국의 김장, 프랑스의 바게트 등)와 56개 음식 창의도시(한국의 전주, 이탈리아의 알바 등)를 소개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입니다.
유네스코의 친선대사로 요리사가 임명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작년에 유네스코 생물다양성을 위한 친선대사로 임명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우로 콜라그레코(Mauro Colagreco) 또한 미슐랭 3스타 셰프로서 현재 프랑스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연 친화적인 음식을 중요시하는 그는 내년 1월에 다니엘 흄과 함께 유네스코 본부에서 채식 기반의 요리 행사를 개최할 것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 유네스코 본부의 ‘삼시세끼’
유네스코 본부는 미식으로 유명한 파리에 있지만, 직원들의 식생활은 얼핏 봐서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점심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도시락을 만들어 오거나, 샌드위치를 사 먹거나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한끼를 때우는 식입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라, 맛있다고 소문난 빵집이나 식당 앞에는 점심 시간에 긴 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유네스코 본부에서 가장 높은 층인 7층에는 식당이 두 개 있는데요. 전형적인 구내식당인 카페테리아와 좀 더 우아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카페테리아는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에펠탑 뷰 맛집’이기도 해서 유네스코에 출장 오시는 분들께 꼭 한번씩 추천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고급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도 외부 식당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으로, 코로나19 이후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가 얼마 전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식당 외에 커피와 간단한 스낵을 즐길 수 있는 커피숍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개인컵을 가지고 가면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1년 내내 수많은 회의가 개최되는 곳인 만큼 커피 브레이크나 리셉션이 열리는 일도 잦은데요. 사실 음식의 양과 질 모두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와인 등의 음료와 소량의 핑거푸드만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리셉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저는 참지 못하고 라면을 끓이곤 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회원국이 주도해서 음식을 제공할 때인데요. 매년 개최되는 아프리카 주간, 남미 주간 등의 행사에서는 맛있는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고, 주유네스코대표부 대사들의 관저에서 열리는 만찬 자리에는 각 회원국이 자존심을 걸고 마련한 훌륭한 음식이 나온다고 해요.
얼마 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우연히 다시 봤는데요. 벌써 꽤나 오래된 영화지만, 천부적인 요리 재능을 갖고 있는 생쥐 레미와 요리 재능은 없지만 상냥한 요리 견습생 링귀니가 파리의 식당에서 만나 벌어지는 모험은 다시 봐도 재밌었어요. 특히 파리가 실제로 생활 공간 곳곳에서 생쥐를 만날 수 있는 도시다 보니—유네스코 본부에서도 직원들은 음식물을 절대 사무실에 남겨두고 퇴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그 내용도 훨씬 실감나게 다가왔어요. 링귀니처럼 요리 재능이 없는 저로선 다시 봐도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영화 속 전설적인 요리사의 말이 와 닿지는 않았는데요. 그렇지만 비록 모두가 고급 식당에 갈 수는 없고 누구나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없을지라도, 음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저마다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는 얼렁뚱땅 국적불명의 음식을 만들어 먹을 테지만—처치 곤란한 레드와인을 닭볶음탕에 부어 볼까?—유네스코와 손을 잡은 세계 최고 셰프들이 앞으로 선보일 지속가능한 음식 문화와 환경 보호 활동들을 관심을 갖고 지켜볼 거예요.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홍보강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