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대표부에 주재관으로 부임하면서 기대했던 점 하나는 노트르담 대성당(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2019년 화재 이후 진행된 보수공사를 5년 안에 완수하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건축 공사란 자고로 늦춰지기 마련이고, 하물며 이곳은 일처리가 느리기로 유명한 프랑스였으니까요.
조금 더 희망을 갖게 된 계기는 2023년 5월에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정보 회의였는데요. 이 회의에 참석한 장-루이 조르주랭(Jean-Louis Georgelin) 대성당 복원위원회 위원장은 대표부 직원들과의 질의응답 자리에서 2024년 성탄미사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2024년 겨울을 기다리며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자잘한 경험들을 쌓아갔습니다.
혹시 《대지의 기둥(The Pillars of the Earth)》이라는 소설을 아시나요? 중세 시대에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며 더 높고 아름다운 성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켄 폴릿(Ken Follett)의 에세이에 따르면 완공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던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들에 의해 파괴되어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성당으로 복원되는 등 정말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해당 에세이를 쓰게 된 배경도 재미있었는데요. 대성당 화재 직후 출판사가 작가에게 대성당에 관한 글을 의뢰하면서 수익금을 대성당 복원에 사용하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흔쾌히 동의한 작가는 며칠 만에 글을 완성했는데, 그 며칠 만에 전 세계에서 걷힌 대성당 후원금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었다고 해요. 결국 작가는 수익금으로 프랑스의 다른 작은 성당들의 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2023년 가을에는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를 관람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거의 중단됐던 대형 공연들이 차츰 재개되던 시점에서, 그리고 대성당 재개관을 1년여 앞둔 상황과 맞물려 큰 관심을 받았던 공연입니다.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공연이지만 실제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후 한동안은 뮤지컬 OST를 반복해서 들으며 공연의 감동을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현지 뉴스에서도 복원 과정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을 수시로 보도하는 등, 전 국민적 관심 속에서 문화유산 복원 작업이 세심하게 이뤄지는 게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습니다.
작년 12월 7일, 마침내 대성당 재개관식이 열렸습니다. TV로 생중계된 개관식에는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대성당 재건에 역할을 했던 주요 담당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축하 공연을 펼쳤고 주교가 집전하는 기념미사도 함께 열렸습니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재개관 축하 메시지를 보도자료로 사전에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다음날인 12월 8일부터 일반인 관람이 시작됐는데요. 예약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저도 몇 번의 실패 끝에 운 좋게 취소표를 예약해서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예약시간에 맞춰 가도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는데, 2월 현재는 예약 없이도 조금만 기다리면 입장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여러 보도에서 봤던 대로 대대적인 보수와 청소 작업을 거친 대성당 내부는 놀랄만큼 밝게 바뀌었더군요. 일부 새로운 구조물이 생기기도 했지만, 20여 년 전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장미 스테인드글라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아직까지 외부 공사는 마무리되지 않아서 성당 뒤편에는 철재 구조물이 여전히 남아 있고 작은 정원이 있던 곳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는데요. 언젠가는 이 정원 벤치에 앉아 고딕 성당 특유의 공중부벽(flying buttresses)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가 즐겨 찾는 영화관 체인의 모토가 ‘다 보려면 아직 멀었어요(Vous etes loin d’avoir tout vu)’인데요. 주재관으로서 2년은 유네스코에 대해 몰랐던 점들을 많이 알게 해 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제게 유네스코는 다 보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드는 대상입니다. 그간 보고 경험한 유네스코의 일면 중에서 (비교적) 흥미로워 보이는 조각들을 독자 여러분께 전달해 드리려고 노력했는데요. 부디 조금이라도 제 의도가 성공했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 역할과 책임을 다음 주재관에게 넘기게 돼서 홀가분하면서도, 독자들의 반응을 상상하며 글감을 고심하던 이 시기를 언젠가 다시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유네스코뉴스 독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Adieu 👋
홍보강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