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Knowledge, beliefs and practices related to jang-making in the Republic of Korea, 이하 ‘장 담그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어요👏🎉. 이로써 장 담그기 문화는 우리나라의 23번째 유네스코 무형유산이 되었죠. 그래서 《유네스코 뉴스레터》는 무려 10여 년에 걸친 준비 과정, 그리고 최종 결정 현장에 함께한 남수미 한국외국어대 문화유산연구센터 선임연구원에게 문화유산으로서의 장 담그기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져 보았답니다.
+ 한국외대 문화유산연구센터에서 국내외 유·무형문화유산의 전승, 보존, 보호 및 활용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 오고 계셨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장 담그기 문화의 등재에도 기쁨이 각별하실 것 같은데요. 먼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외교부의 지원으로 추진한 전문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라는 좋은 기회를 통해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대표목록 등재 현장에 직접 가서 이를 축하하고 또 받을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저희 센터는 지난 2015년, 2016년에 한식진흥원이 진행한 한식문화 중 유네스코 대표목록 등재 후보 검토의 기초 연구를 진행했었고, 그 결과 장 담그기 문화를 후보로 선정한 바 있는데요.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이렇게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등재가 결정된 파라과이 현지에는 2016년 연구 진행 시 도움을 주셨던 장 담그기 공동체 대표명인인 기순도 명인도 함께 가셨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이런 것이 인연이구나 싶었고, 여러모로 저에게 의미가 큰 순간이었습니다.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사업의 시각에서, 장 담그기의 어떤 측면이 이번 등재를 가능케 만들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한국 식문화의 근간이자 핵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이 빠진 한식은 찾아보기가 힘들죠. 이러한 장을 만드는 기술과 지혜는 한반도 지역의 자연환경, 즉 콩과 기타 부재료에 대한 이해, 발효, 숙성 및 보관에 적합한 조건 등을 바탕으로 축적된 것이에요. 그리고 장을 만들고 나누는 과정에는 다양한 문화적 관습도 깃들어 있어요. 예를 들면 장독에 금줄치기를 하고, 장 담그기 좋은 날을 선정하거나 장이 잘 되길 기원하는 의례 등이 있죠. 이렇게 장을 담그고 소비하는 전 과정의 문화적 실천을 통해 가족과 사회 공동체의 가치를 강화하고 전승한다는 측면이 유네스코 무형유산 위원회에서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특히 장 담그기라는 무형유산의 연행이 집안 내 어머니-딸, 시어머니-며느리와 같이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여성의 역할이 가족공동체 유지에 기여한 측면도 강조되었습니다.
+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에도 콩을 기반으로 한 장 문화가 있는데, 이들과 구분되는 우리나라 장 담그기의 특징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장을 만드는 재료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장은 콩만을 이용해 만든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장과 구분됩니다. 우리는 콩으로만 만든 메주로 기본 장을 만들고, 여기에 지역적 특성에 맞게, 혹은 집집마다 각기 다른 재료들을 가감하여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여 활용하고 있죠. 반면에 일본과 중국의 장에는 콩 이외에 밀가루나 쌀가루 같은 다른 곡물류가 들어갑니다. 발효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어요. 우리의 장은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균을 이용해 6개월 이상을 기다려 천천히 만드는 방식이라면, 일본의 낫또나 인도네시아 템페는 콩을 발효한 장이라 할지라도 따로 균을 첨가해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나라의 장은 된장, 간장, 고추장이라는 기본 틀에서 지역적 또는 가정별 특징을 보이고 있는 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매우 다양한 장을 활용하지만 공통적으로 쓰이는 장류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특징이에요(2016년 한국외대 연구산학협력단의 한식문화 유네스코 등재추진을 위한 연구 최종보고서 p.81-89).
+ 우리 음식 문화로는 2013년에 김장 문화가 처음 등재되었고, 장 담그기는 두 번째인데요. 함께 지키고 향유해야 할 음식 문화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많을 것 같습니다. 그 후보들을 꼽아보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지금 생각나는 건 전통주인 막걸리 빚기와 나물 문화가 있습니다. 김장 문화와 장 담그기 문화는 모두 한국 문화의 대표 아이콘이자 식문화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제는 한국 식문화 내의 다양한 면모를 찾아 볼 차례이지 않나 생각해요. 국가무형유산인 막걸리 빚기는 현재까지 김장이나 장 같은 식(食)문화 외에 한국의 음(飮)문화를 담은 유산이라 할 수 있죠. 지역별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다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음(飮)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같아요. 장 담그기와 마찬가지로 막걸리 빚기의 연행과 관련된 한국 내 다양한 문화적 관습도 있고요.
한편, 나물 문화는 한식 문화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채소를 활용하고 먹어 왔고 현재도 나물 문화의 실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서 나물 뜯는 사람들을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길러진 작물로서 채소만이 아니라 다양한 들나물(산채)을 활용하고 있어요. 먹을 수 있는 산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감식력, 건조시켜 겨울에 활용하거나 삶아서 장아찌를 만드는 등의 다양한 저장 방법, 쌈 문화까지 포함하는 나물 문화는 한국 식문화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육식 중심의 글로벌 식문화를 고려해 본다면, 다양한 채소를 활용한 나물 문화의 조리법과 식생활은 세계인의 건강을 위한 대안 음식이자 환경보호 및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유네스코 대표목록으로서 적합한 후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013년 ‘김치’가 아니라 ‘김장 문화’가, 이번에도 ‘된장, 고추장’이 아니라 ‘장 담그기’가 등재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문화가 핵심이라는 뜻일 텐데요. 이런 측면에서 대다수의 한국인은 여전히 김치와 된장 고추장을 즐겨 먹지만, 직접 김장을 하거나 장을 담그는 일을 체험해 본 한국인은 정말 소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화’로서 이러한 것들을 지켜 나가기가 점점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앞으로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가장 어렵고, 그래서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장 담그기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주와 생활 양식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한국 식문화의 근간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현대 한국인의 식단에서도 고추장, 된장, 간장은 빠질 수가 없죠. 다만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이 대량생산된 장을 사먹고 있기에 가족 공동체 중심의 장 담그기 문화를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 지는 건 사실이에요. 직접 장을 담그는 일을 체험하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최근에는 도시의 주민센터나 아파트 단위로, 지역에서는 농업기술센터 등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장 담그는 법을 배우고 직접 만든 장을 이웃과 나누는 실천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문화적 실천이 현재 한국사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접근방식이자 연행방식이라고 생각되어요. 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전통 장과 장 담그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도 장 담그기 문화의 지속성에 위협이 되는 부분인데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과 지속가능한 음식 자원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과 장 담그기 관련 홍보 및 지식 보급을 서로 연결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이와 더불어 1인 가족, 핵가족이 주류인 것을 고려하여 장을 소량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도 제안하고 싶어요.
한편, 최근 K-문화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기는 한식에 대한 관심으로도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정부간위원회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었어요. 장 담그기 등재를 축하하기 위해 파라과이 현지에서 장을 나눠주는 행사를 했는데, 엄청난 관심과 함께 장이 일찍 동이 났고, 외국인들의 장에 대한 이해가 생각보다 더 깊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전통 장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현지 재료와 결합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전파함으로써 장 담그기가 세계인의 문화로서 창의적으로 해석되도록 만드는 노력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