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 유네스코 글로벌 청년 포럼’을 기대하며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이 승인되고 겨우 11일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포성이 멈춘 것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설치령이 대통령령으로 공포되고 겨우 21일째가 되는 1953년 7월 27일이었다. 유네스코는 끔찍한 세계대전에 승리한 연합국이 평화를 위해 설립한 기구이니만큼, 한국에서 유네스코 활동에 대한 희망과 계기가 6·25전쟁의 발발 및 정전과 시간상으로 맞닿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똑같이 맞닿은 7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6·25전쟁과 정전을 유네스코 이념과 가치의 시각에서 성찰하는 특별한 행사를 시작하려 한다. 바로 유엔군 깃발 아래 참전했던 16개국 및 의료지원을 했던 6개국 청년들과 한국의 청년들이 모여 전쟁과 정전체제를 깊이 성찰하는 유네스코 글로벌 청년 포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의 방벽을 세워 전쟁을 방지하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빛나는 이상으로 설립된 유네스코에 대한민국이 가입을 신청한 것은 단순히 국제 사정에 밝은 소수 인사의 선견지명 덕분만은 아니었다. 이미 구한말부터 뜻있는 한국인들은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겪으며 근대 교육과 과학, 그리고 문화의 발전에 대한 염원은 더욱 더 간절해졌다. 백범 김구 선생이 한없는 문화의 힘으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세우는 것을 소원했듯, 교육과 과학과 문화로 평화로운 미래를 이룩한다는 것은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모든 한국인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 가입은 소수의 선각자만이 아니라 신생 대한민국의 구성원 모두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이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기뻐할 틈도 없이 발발한 6·25로 인해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한국인의 염원은 싹도 틔우기 전에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하지만 이 전쟁은 한국에서 유네스코가 활동을 시작하고 막대한 지원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초등학교용 교과서를 공급할 인쇄시설을 긴급 지원했고 교육 재건을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 아마도 유네스코의 지원을 한국만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이제 한국은 분담금 8위, 자발적 기여금 5위에 이르는 유네스코의 든든한 재정 후원국으로 성장했다.
유네스코 헌장에 규정된 국가위원회를 설립하여 국내에서 유네스코 가치를 실현하고 국제교류와 협력을 시작하기 위한 설계도가 완성된 것은 정전 협상이 마무리단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설치령 초안이 설립준비위원회의 심의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확정되고 대통령령 제801호로 공포된 것은 1953년 7월 6일이니,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21일 전의 일이다. 이후 1954년 1월 30일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정식으로 출범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설계한 유진오, 백낙준 박사 등은 반관반민이라는 형태를 통해 정부와 긴밀한 협조를 강조하면서도 위원회에 창의성과 활력을 보장했다. 한국위원회가 전체 유네스코 회원국 국가위원회 중에서 “가장 규모도 크고 역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유일하게 수도 한복판에 자체 회관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유네스코에 대한 한국인들의 각별한 관심 및 지지와 더불어 1953년 한국위원회 설치령을 기초한 사람들의 혜안 덕분이었다. 1963년에는 대통령령이 ‘유네스코활동에 관한 법률’로 승격되면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법률에 근거한 조직이 되었다. 유네스코법의 24개 조항 가운데 18개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관한 조항으로서 설치령에서 마련한 기본틀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2023년 7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설치령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한위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글로벌 청년 포럼을 개최하여 유네스코 이상과 가치의 시점에서 정전체제를 검토하려 한다. 유엔 깃발 아래 참전했던 16개국 및 의료지원 6개국 청년들과 한국 청년들이 함께 2-3개월 동안 각기 선정한 주제를 깊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를 7월 말에 발표한다. 하루 모여서 각자가 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성찰한 결과물을 공유하며 진지하게 토론하는 일종의 학술제처럼 포럼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들이 탐구하고 성찰할 영역은 무척 다양하다. 우선 ‘평화 개념의 변화와 확장’은 어떨까? 6·25 발발 당시만 하더라도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했지만 이후 평화는 얼마나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확장되었는가? 미래 세대가 염원하는 평화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가 궁금하다. 전쟁이 교육, 젠더, 문화, 과학기술 등 여러 영역에 미친 영향도 관심사다. 또 ‘전쟁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처럼 전쟁과 미디어 리터러시도 중요한 주제 영역이 된다. 이 밖에도 유네스코의 이상과 가치의 시점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 영역은 정말 많다. 게다가 출구도 찾지 못한 채 희생이 누적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볼 때, 그러한 성찰은 바로 현재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소원했다. 6·25는 끔찍한 참화였지만 그만큼 평화에 대한 염원은 더욱 절실하다. 여름에 한국에서 개최될 국제 청년포럼이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커다란 움직임의 출발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새해를 맞는 지나친 욕심일까?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