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부터 엑스포와 인천국제공항까지 지난 약 50년간 한국의 다양한 국제 이벤트와 주요 도시 계획에 참여해 온 곽영훈 대표. 건축과 공공정책부터 평화운동, 그리고 세계시민교육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동 영역은 유네스코만큼이나 넓고 깊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행동, 그리고 분열된 사회를 어루만질 포용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요즘, 그간의 경험담과 오늘날의 생각 속에서 ‘평화’를 향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그를 만나 보았어요.
+ 대표님,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먼저 호칭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MIT와 하버드대에서 건축과 교육환경학을 공부하신 뒤 대학 교수와 공공기관 및 지자체 위원을 하셨고, 현재는 ‘사람과환경그룹’과 유엔한국협회 회장이자 세계시민기구(World Citizens Organization) 대표로도 활동 중이십니다. 심지어 태권도 유단자(9단)이시기도 하세요! ‘호칭 부자’라 해도 모자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불러주시길 원하시는지요?
저를 그냥 성곽길 환경미화원으로 불러 주세요. 실제로 요즘 서울 성곽길 주변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고 있으니까요. 저는 이 호칭이 제일 좋은데, 사람들은 다들 그건 꼭 빼고 다른 호칭으로 부르더라고요.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 호칭으로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꽃이며 별이라고 은유적으로 생각하는데, 어느 별이 더 빛나고 어느 꽃이 더 예쁜지 가릴 수 없잖아요?
+ 1988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과 올림픽공원 자문위원을 맡으셨고, 이후 1993년 대전 엑스포와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대회장 계획가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그림’을 구상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1962년 한국 학생 대표로 세계 학생 대표들과 함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위해 미국을 방문했어요. 미국의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삶의 질의 격차를 목격했고, 그래서 이러한 어마어마한 격차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어요. 이를 극복하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비상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글로벌 이벤트 유치는 그러한 전략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어떤 멋진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도시와 지역계획과 국가계획이 연계되고 확장되는 전략적 국가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이 모든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분야들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래서 지난 2000년에 저를 인터뷰한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에서 표현했듯 ’애플(A.P.P.L.E.)’, 즉 Architect(건축가), Planner(도시계획가), Political scientist(정치학자), Landscape architect(조경가), Educator(교육자)가 된 거예요.
저는 이러한 세계적인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우리가 이 행사를 무엇을 위해 하는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주제로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죠. 그 결과 동서 이념의 벽(Ideological Wall)을 허물겠다는 주제가 떠올랐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그러한 벽을 정말로 허물었고 그 결과를 실제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원자폭탄 계획을 추진했던 핵과학자 그룹을 중심으로 시카고 대학에서 고안한 인류의 위기 지표, 즉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냉전 종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동안 인류 종말의 시간이 17분이나 늦춰지면서 2차대전 이후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 뒤를 이어서 1993 대전 엑스포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과학기술의 길(Technological Way)을 찾고 보여주고자 했고, 2012 여수 엑스포에서는 그렇게 벽을 허물고 찾은 길을 통해 전 세계에 지식을 전파(Epistemological Wave)한다는 주제를 제시했죠. Wall-Way-Wave로 개념이 체계적으로 연결되면서, 나아가 K-Culture로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 시민들에게 전달됐다고 생각해요.
+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는 다양한 국제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우리의 국가발전 정책 설계와 실현력을 증명했고 이제 어엿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했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제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 교육 역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할 것도 같습니다. 어떤 방향에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할까요?
제가 다방면, 다차원의 국가발전 환경 설계와 정책 계획 공부를 하고 올림픽과 엑스포 같은 행사 주최와 국가 발전 전략에 기여하며 성공했습니다만 그 과정은 참 힘들었습니다. 정부 내에서마저 저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는 요새 청년들이 쓰는 단어인 ‘중꺾마’ 정신으로 더욱 분발했지요. 이런 개인의 삶, 꿈, 일 속의 직접 경험에 비추어 한국 교육의 방향을 몇 가지만 짚어 볼게요.
먼저 학제적(学際的, transdisciplinary)으로 개개인의 소질에 맞게 교육받을 수 있는 학위 시스템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서 모두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 제도가 설계되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이제 우리는 ‘세계시민’임을 알고 이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표현하고자 ‘지정과문경학(地政科文經學, Geopolitechculnomics)적 사고’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즉 지리(지정학)와 정치, 과학기술, 문화, 경제를 하나로 아우르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각자의 소질을 길러내는 교육이 되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더 욕심을 낸다면, 각기 다른 믿음과 국적에 기반해 서로를 갈라놓은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초월(超越)’의 개념을 넘어, 서로를 인정하자는 개념을 담아 만들어 본 ‘포월(包越)’의 정신도 제안하고 싶어요. 국가와 종교나 이념 등으로 인한 인류의 분열과 반목이 증폭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성 교육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 올림픽과 엑스포 등을 준비하시면서 가졌던 고민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갖고 계신 고민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수도권으로의 지나친 인구 집중, 이와 반대로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구 절벽 현상,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2024년의 우리나라가 도시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현 시점에 매우 적절한 질문이네요. 환경 정책을 통해 우리의 삶터를 설계하는 것은 국가경영의 제1순위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이제 자연 환경을 바꿔가면서 인간 척도(human scale)에 맞지 않는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를 대규모로 짓는 것을 우선 그만해야 합니다. 다 아시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문명을 담는 그릇이고 ‘유기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도시는 물리 공간적인 환경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환경, 역사문화적 환경, 시각·미각적인 환경과 자연생태적 환경을 모두 아울러 보아야 합니다. 가족-집-동네-도시-나라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행복을 고민하면서 서로 잘 어울리고 지속가능한 환경 설계를 해야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제 ‘하루 생활권’입니다. 무조건 도시로 모일 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내가 원하는 곳에서 집을 짓고 동네를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조선과 건축 기술이 발달 되어 해역(海域)에도 새로운 집과 동네를 지을 수 있어요.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 볼 수 있습니다.
+ 설계에서부터 정책적 의지의 발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과 시행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우리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모든 고민을 하고 계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나라를 이끈 모든 세대들에게,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지만 환경과 평화도 늘 함께 생각하고 일하며 살았어요. 사실 우리나라가 지금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이유, 전 세계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발전을 이룩한 것은 다름 아닌 ‘대한국인’입니다. 대한국인들이 스스로 이룩한 것이에요. 지금 전 세계 한류의 열풍을 보세요. K-팝, K-무비, K-드라마, K-뷰티, K-푸드, K-패션, 그리고 최근 K-문학까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우리 대한국인들이 해낸 일을 정치가 잘 도와주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바로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보듯,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았죠. 그러니 앞으로 우리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더욱 고민하고 이끌어 주세요. 사람 살기 좋은 곳, 세계인이 오고 싶은 곳으로 될 수 있도록 초록빛 백두대간 녹지축이 다 연결되고, 사람이 걷는 길이 모든 동네까지 잘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부탁합니다.
김예진 청년기자, 유네스코뉴스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