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파리 시간으로 오후 3시 쯤, 한국 친구로부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놀라고 기뻤습니다. 이후 한국 서점가에서 벌어진 난리법석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한강 작가의 소설은 곧바로 품절됐고, 파리 시 공공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들도 대여가 됐습니다. 우리 대표부에 축전을 보내온 회원국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10월 14일, 노벨경제학상이 발표됐을 때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바로 전 주에 제가 그분의 강연을 들었거든요! 강연 시작 전에 가브리엘라 라모스 유네스코 인문사회과학 사무총장보가 곧 노벨상을 받을 사람이라고 소개했을 때만 해도 저는 설마했는데 말이에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o) MIT 교수는 유네스코가 이번에 야심차게 시작한 앨버트 허시만 강연 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강단에 섰었는데요. 유네스코는 중요한 글로벌 문제에 대한 학문 간 대화를 촉진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지적 탐구를 이어가도록 장려하기 위해 동 강연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연 시리즈 제목에 들어간 이름인 앨버트 허시만은 누구일까요? 산업에서 특정 기업의 시장 집중도를 측정하는 허핀달-허시만 지수(Herfindahl-Hirschman Index)를 떠올렸다면 ‘리스펙’하겠습니다.👏 저는 몰랐거든요. 허시만은 1915년 독일에서 태어난 경제학자로, 개발 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의 기초를 다졌고 사회 변화를 이해하는 독창적인 접근법과 학문적 엄격함, 실용적 문제 해결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한 학자였습니다. 유대인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다른 유대인들의 피난을 돕기도 했는데, 이때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한나 아렌트나 마르크 샤갈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전쟁 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으며, 미국으로 귀화한 뒤 여러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다 2012년 9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앨버트 허시먼 강연 시리즈의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아세모글루 교수의 주제는 “기술 발전은 공동의 번영을 구축할 수 있는가(Can Technological Progress Build Shared Prosperity)”였습니다. AI 기술의 엄청난 발전 속도에 전 세계가 놀라움과 함께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과거의 기술 발전의 경험과 연계해 설명했습니다. 인류가 이미 여러 차례 신기술 등장으로 인한 일시적인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적절히 해결하고 공동의 번영을 누려 왔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아세모글루 교수는 적절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는 한 기술 발전은 일정 기간 동안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한 혼란이 야기되는 수십 년의 기간은 인류의 긴 역사에 견주어 보면 매우 짧지만, 그 시기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위협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AI 기술이 우리에겐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정책입안자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아세모글루 교수의 주장에 저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기침 때문에 입에 사탕을 물고 강의를 이어가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인간적인 모습(유튜브 영상 기준 58:20)도 볼 수 있는 이번 강의를 놓치지 마세요!
더불어 올해는 유네스코의 전신인 국제지적협력기구(International Institute of Intellectual Cooperation)가 설립된 지 100년이 된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9월에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되기도 했는데요. 다양한 방식의 지적 협력과 연대를 통해 평화를 추구한 유네스코의 훌륭한 전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 매년 개최될 유네스코의 허시만 강연 시리즈에서 한국 연사를 만날 날도 기대해 봅니다.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홍보강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