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을까?”
여러분,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살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예요. 바닷가에서 한손 가득 퍼올린 모래알처럼, 돈이란 제대로 쓰고 관리하지 않을 땐 평화를 지키기는커녕 나도 모르게 흩어져 사라질 테니까요. 그렇다면 말을 이렇게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요?
“평화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든다.”
평화가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에 달린 일이라 할지라도, 저 말이 ‘절대 틀렸어!’라 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별로 없을 거예요.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추기 위해, 혹은 단지 굶주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품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소한의 경제적 힘은 갖춰야 하기 때문이에요.
평화를 공짜로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평화의 방벽을 만들고 전 지구가 마주한 도전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네스코는 어디서 그 자금을 끌어오는 걸까요? 또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번 뉴스레터는 유네스코의 예산과 지출 상황을 상세히 정리해 놓은 코어 데이터 포털(Core Data Portal)에서 지난 2년간의 유네스코 예산 흐름을 살짝 들여다 보았어요.
+ 유네스코 활동 재원, 어떻게 확보하고 있어?
- 작년 말 기준으로, 유네스코가 2022-2023년 두 해 동안 확보한 재원은 총 12억 7500만 1천 달러예요.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조 7365억 원 정도죠.
- 그중 각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분담금(Assessed Contribution)은 약 5억 3464만 달러로 전체의 약 42%를 차지해요. 나머지는 분담금 외에 회원국이 내놓거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발적 기여금(Voluntary Contribution)이에요.
- 때가 되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분담금보다 자발적 기여금의 비중이 훨씬 높다는 건, 그만큼 유네스코의 예산 상황이 안정적이지는 못하다는 뜻이기도 해요. 유네스코가 늘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직과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예요. 더불어 유네스코는 기여금을 다양한 곳으로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회원국 정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과의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어요.
+ 그럼 누가 제일 ‘큰손’일까?
- 회원국별 정규 분담금이 각국의 경제 규모에 따라 정해지는 만큼, 유네스코 창설 이래 미국은 늘 압도적인 경제적 기여를 해 오고 있었어요. 미국이 내는 분담금이 전체 유네스코 예산의 약 22%에 달할 정도였죠. 하지만 미국은 2011년부터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등에 반발하면서 분담금을 내지 않았고, 급기야 유네스코를 탈퇴했다가 작년 말에 다시 유네스코로 돌아왔어요.
- 미국이 없는 사이 분담금 1위 자리는 중국이 차지했어요. 2022-2023년 기간에 중국은 정규 분담금과 자발적 기여금을 합쳐 약 1억 1971만 달러를 냈어요. 이제 미국이 다시 돌아온 만큼 다음 번 회기에도 중국이 이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 지난 2년간 중국에 이어 이탈리아, EU(EU 차원에서 낸 자발적 기여금 총액), 일본, 프랑스가 뒤를 이었고, 한국은 약 3869만 달러로 열 번째 자리를 차지했어요. 자발적 기여금을 뺀 분담금 순위로만 보면 중국-일본-독일-영국 순이고, 한국은 전체 회원국 중 아홉 번째로 많은 정규 분담금을 냈어요. 2022년까지는 8위였는데, 미국이 복귀하며 밀린 분담금 일부를 내면서 작년 말 기준으로 6위에 자리했기 때문이에요.
+ 어느 지역에서 제일 많이 써?
- 유네스코의 재원을 공여 주체별로 나눠보면 개별 회원국 정부, 다국적 연합, 유엔을 제외한 국제단체, 민간 영역, 그리고 유엔으로 나눌 수 있어요.
- 여기서 유입된 자금이 투입되는 대상을 지역별로 나눠보면 역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예산이 제일 많고(약 9억 1672만 달러), 지역별로는 아프리카(3억 8564만 달러), 아랍(2억 7452만 달러), 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2억 7155만 달러), 아시아태평양(2억 3804만 달러), 유럽·북미(8327만 달러) 순으로 많은 예산이 지출되고 있어요. 아무래도 개발도상국 이하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에 유네스코가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알 수 있죠.
+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쓰이는 거야?
- 유네스코의 주요 사업 분야 중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곳은 역시 교육 분야예요. 모두에게 포용적이고 공평한 양질의 교육을 평생 제공하고(약 4억 4712만 달러), 교육 분야 지속가능발전목표(SDG4) 달성 및 교육 연구를 위한 국제 협력(약 2억 6937만 달러)을 추진하는 데 많은 예산이 쓰였어요.
-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세계유산 사업을 비롯한 문화 분야 사업도 빼놓을 수 없죠. 자연유산을 보전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며 문화 다양성도 증진하기 위한 사업에 약 5억 5431만 달러가 들어갔어요.
- 그 뒤로 포용 증진과 차별·혐오발언·편견에 맞서기 위한 역량을 높이고(약 2억 4804만 달러), 과학 및 기술 혁신 분야의 국제 협력 증진(약 2억 4679만 달러), 기후변화·생물다양성·수자원·재난경감 지식 확보(약 1억 9376만 달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답니다.
알쓸U잡 더보기 | 더 밝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
유네스코에 소중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는 회원국들과 국제기구, 그리고 뜻이 있는 민간 기업 등의 단체들을 모두 합하면 그 수가 603개에 달해요. 유네스코는 이렇게 받은 자금을 전 세계 172개국에서 추진 중인 2,064개의 프로젝트에서 알차게 쓰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들은 ▲교육 ▲자연과학 ▲인문 및 사회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의 다섯 개 주요 분야를 포함해 총 14개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기여하고 있어요.
유네스코에 자금을 지원하는 공여 주체들, 그리고 유네스코의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을 받는 수혜국들, 그리고 1조 원이 넘는 두 해 동안의 재원에서 드러난 숫자는 결코 작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숫자는 정말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사업 분야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평화를 만들고 미래 문제에 대처하는 일을 하는 데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순 없어요. 그래서 유네스코는 힘차게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주어진 현실 속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다만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어요. 유네스코의 비전을 국내에서 구현하고, 동시에 우리의 비전을 유네스코 무대에서 펼쳐 나가고자 하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마찬가지예요. 각 회원국 위원회 중에서 규모도 크고 손꼽히는 활력을 보여주는 위원회이지만,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약속한 ‘사람과 자원, 지혜를 모아 지적·도덕적 연대를 다지는 일’,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을 빛내고 인류에 공헌하는 일을 모두 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정기적이든 일시적이든 후원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고, 마침 11월 10일까지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투게더 걷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어요! 내 건강을 챙기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잠깐 고민해 보고 싶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걷기도 좋고 사색하기도 정말 좋은 이 가을날의 캠페인을 놓치지 마세요!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