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선수들의 땀과 노력, 선의의 경쟁과 눈부신 우정이 우릴 흥분케 했던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약 2주 후인 8월 28일 아침, 저는 또 하나의 올림픽이자 진정한 모두의 축제인 파리 패럴림픽 성화 봉송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유네스코 본부로 향했습니다. 패럴림픽 성화가 유네스코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10시이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9시 30분까지 입장을 했는데요. 유네스코 직원들과 그 가족들, 주유네스코대표부 직원들, 당일 유네스코에서 개최된 국제 장애 포용 회의(International Disability Inclusion Conference) 참가자들과 함께 성화를 기다렸습니다.
패럴림픽 성화는 유네스코의 일본식정원(Japanese garden)에서 세귀르홀(Segur Hall)을 거쳐 피아짜(Piazza)라고 부르는 중앙정원에 도착했는데요. 다섯명의 성화봉송 주자 중에는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있었습니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성화봉송용 유니폼인 하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패럴림픽 선수들과 함께했는데요. 워낙 사람들이 많아 저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유네스코 본부에서 하이라이트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해 주었어요.
성화 봉송 다음으로 이어진 국제 장애 포용 회의(International Disability Inclusion Conference)에서 앤드류 파슨즈(Andrew Parsons) 국제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은 패럴림픽 티켓 판매가 다행히 순조롭다는 소식을 전하며 개회사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올림픽 보다는 미디어나 대중의 관심을 적게 받는 패럴림픽 운영의 어려움을 엿볼수 있었는데요. 제가 예약한 패럴림픽의 양궁 결승전 티켓 가격이 올림픽 양궁 결승전 가격의 5분의 1 수준이었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파슨즈 위원장은 패럴림픽을 유치한 국가들이 장애인들의 스포츠 활동 지원을 강화한 선례를 소개하면서 모든 국가들의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우리가 패럴림픽에서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장애가 인식되는 방식”이라는 말이 특히 인상깊었습니다. 이어서 연단에 선 아줄레 사무총장은 패럴림픽과 유네스코가 설립 배경과 가치에 있어 공통점이 많다고 언급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신체와 정신의 피폐를 경험한 사람들이 패럴림픽과 유네스코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유네스코는 교육, 과학, 문화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평화의 방벽을 쌓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 전문기구인데요. 패럴림픽은 1948년, 전쟁 부상병들이 참가한 영국의 체육대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패럴림픽은 이후 한참이 지난 1960년 로마에서 개최됐지만 그때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패럴림픽 성화는 영국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올해 유네스코에서 발간한 『양질의 체육 교육 세계 현황 보고서(Global Status Report on Quality Physical Education)』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학생 3명 중 1명은 체육 교육을 받지 못하고, 학교의 3분의 1만이 포용적인 체육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을 통해 유네스코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는 장애인 스포츠 활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며 ▲접근권 향상(improve access) ▲기반시설(infrastructure) ▲포용 교육(inclusive education) ▲포용적인 미디어(media inclusion) ▲데이터 취합(data collection)을 강조하는 행동강령(call to action)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 ‘포용적인 미디어’에는 미디어에서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의 스포츠에도 충분한 분량을 할애해 다루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청도 들어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최근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Un p’tit truc en plus》라는 영화 한 편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어요.
장애인들이 대거 출연한 이 영화의 제목은 한국어로 ‘작은 덤’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혹시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제목이 어떻게 번역될지도 궁금한데요. 영화는 막 보석상을 턴 도둑 부자 콤비가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우연히 장애인 교육시설의 여름 캠프에 참가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장애인이, 그것도 범죄자가 필요에 의해 장애인 흉내를 내며 생활하는 이야기라니,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저런 우려도 나올 법한 이야기인데요. 영화는 저의 예상을 뛰어넘어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이 넘치고,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한 장면들을 보여줬습니다.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배우들은 때로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비장애인의 장애인 흉내를 바로 알아차린다든지요), 때로는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활용한 몸개그도 마다하지 않으며 관객들의 마음을 훔칩니다. ‘작은 덤’이 무엇인지 영화에서 직접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저는 장애인이란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덤처럼 별 것 아닌 무언가를 조금 더 짊어지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도 각성의 소재도 아닌, 저마다 작은 덤을 가지고 있는 개성 넘치는 한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장애인이 10명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통쾌하게도 이 영화는 5월 초에 개봉해서 아직까지도 극장에서 상영중으로(바로 얼마전에 유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작됐네요), 이미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프랑스 역대 국내 영화 흥행 순위 10위권에 안착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작고 사랑스러운 영화가, 그리고 패럴림픽 선수들이 보여주는 멋진 승부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홍보강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