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지만 소중한, 백두산을 바라보는 한국의 입장
지난 3월 20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219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18곳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새로 인증됐는데요. 이 중에는 중국의 ‘창바이산(長白山, 백두산의 중국측 이름) 세계지질공원’이 있어서 깜짝 놀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백두산은?’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직접 문의하는 분도 계실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번 알쓸U잡은 ‘일타강사’로 변신해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보려 해요. 자, 그럼 잘 따라오세요!
+ 맙소사. 백두산이 중국의 세계지질공원이라니, 무슨 일이야?
먼저 세계지질공원이 뭔지를 알아봐야겠죠?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UNESCO Global Geopark)이란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명소와 경관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며 관리하기 위해 회원국의 신청을 받아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곳이에요. 단순한 보호구역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질유산의 사회·경제적 활용과 보전을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제도랍니다.
알다시피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이어지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은 백두산을 양분하고 있는데요. 중국은 그중 중국 영토에 속하는 부분을 지난 2020년에 ‘창바이산 세계지질공원’이란 이름으로 인증을 신청했고 이번에 최종 인증을 받은 거예요.
+ 그럼 북한쪽 백두산은 세계지질공원이 될 수 없는 거야?
북한도 이미 2019년에 자국 영토 부분을 ‘백두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신청한 상태예요. 북한에는 아직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한 곳도 없는데, 백두산이 그 첫 번째 신청지가 된 거죠.
세계지질공원 인증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위원회가 서면평가와 현장실사를 통과해야 해요. 그런데 북한은 아직 이 절차를 밟지 못해서 진행이 멈춰있는 상태예요. 조만간 실사가 진행되어 북한쪽 백두산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알쓸U잡 키워드 | 한국, 중국, 북한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현황
새로 지정된 18곳을 포함해 전 세계에는 48개국에 213곳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 있습니다. 중국은 ‘창바이산’을 포함해 이번에 무려 6곳을 새로 인증받아 총 47곳의 세계지질공원을 갖게 됐는데요. 그간 코로나19로 심사가 밀려 있던 것들을 이번에 한꺼번에 인증하면서 이번에 그 수가 많았죠. 앞에서 언급했듯 북한에는 아직 세계지질공원이 없고, 한국에는 제주도(2010년 인증), 청송(2017년), 무등산권(2018년), 한탄강(2020년), 전북 서해안(2023년)의 5곳이 있습니다.
+ 이번 지정으로 “백두산이 창바이산이 됐다”는 식의 뉴스가 쏟아지던데 ㅠㅜ
‘동북공정’을 비롯해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의 역사왜곡 시도가 꾸준히 있어 왔기에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겠지만,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중국 영토 내의 백두산 지역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고 해서 백두산 전체가 중국에 넘어갔다거나 중국만의 지질공원으로 등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백두산은 이미 중국과 북한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UNESCO Biosphere Reserve)으로 지정돼 있기도 해요. 생물권보전지역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키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요. 중국은 1980년에, 북한은 1989년에 각각 자국 영토 내 백두산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올렸어요.
+ 민족 분단도 억울한데, 이제 앞으로도 백두산은 이렇게 분단된 상태로 관리해야 해?
지구상에 인간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돼 있었던 자연지형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어요. 이런 곳에서는 보호구역 지정이나 유산의 활용을 두고 국가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죠. 그래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이나 다양한 보호지역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장소를 ‘접경(transboundary)’ 혹은 ‘초국경(transnational)’ 유산이나 지역으로 지정하고 인접국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스페인과 프랑스가 1997년에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피레네-몽페르뒤(Pyrénées-Mont Perdu)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들 수 있는데요. 피레네산맥을 경계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가 해당 지역을 하나의 유산으로서 함께 관리하기로 한 거죠. 세계유산뿐만이 아니라 세계지질공원과 생물권보전지역에서도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아요. 백두산 역시 동북아 지역의 대표적 접경 유산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이 그러한 협력을 펼친다면, 그리고 한국이 이를 적절히 지원한다면 더욱 평화로운 관리와 보전이 가능할 거예요.
+ 백두산이 기본적으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 사이의 문제라면, 한국은 뭘 할 수 있을까?
북한과 중국 사이의 문제를 두고 우리가 직접 내놓을 수 있는 대응책에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애국가에도 나오는 백두산에 우리가 마냥 무관심할 수는 없죠. 외교부 역시 이번 집행이사회 이후 정례브리핑에서 “백두산의 중국 영역 부분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것에 주목하고, 백두산은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산이며, 앞으로 등재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의 세계지질공원 지정 추진도 기대한다”고 밝혔어요.
북한이 유네스코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도움을 주면서 협력을 펼치는 일도 필요해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 1995년부터 중국과 일본, 북한, 몽골 등과 함께 동북아 생물권보전지역 네트워크(EABRN)를 설립해 지역 내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고 네트워크 안에서 남북 협력과 교류의 기반도 다져 왔는데요. 앞으로 세계지질공원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여러 유산 관련 사안에서도 이와 같은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알쓸U잡 더보기 | 제주도에 설립되는 국제보호지역 글로벌 연구·훈련센터
백두산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전 세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람사르 습지 중 2개 이상의 국제보호지역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중첩되어 지정된 장소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지역의 관리를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연구훈련기관이 필요하다고 보고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인 ‘국제보호지역 글로벌 연구·훈련센터’를 설립하기로 했어요. 설립안은 2019년에 유네스코 총회에서 승인을 받았고 한국-유네스코 간 협정도 체결되어 제주도에 설립을 앞두고 있는데요. 훈련센터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면 백두산과 같은 국제보호지역에서의 협력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