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챗GPT’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나요? 깜짝 놀랄 만한 어휘와 지식을 자랑하는 이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절로 내 영어실력도 높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 겁니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영어 회화 공부법을 설명하는 글과 동영상들이 수없이 나오고, 학원 강사가 쓴 인공지능 활용 영어공부법을 설명하는 책도 보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더 나은 교육, 혹은 더 수익성 높은 교육 사업을 이야기하는 교육 관련 기업들의 구상을 보면, 머지않아 우리 아이도 인공지능 선생님의 수업을 듣게 될 것 같고 선생님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맞이할 교육의 미래에서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의 활용도는 매우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네스코는 지난 2021년 내놓은 ‘교육의 미래 보고서’(『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논의와 연구를 통해 이러한 신기술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안전하고 포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술은 우리가 인식하는 수준보다 더 숨가쁘게 발전하고, 그러한 기술이 경쟁적으로 도입되는 와중에 우리는 신기술이 정확히 어떤 혜택과 어떤 부작용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볼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것이 우리 자신, 그리고 다음 세대를 가르치고 이끌 교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심정으로 이를 차분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발행한 『꾸리에』에서 유네스코는 인공지능 분야 권위자인 스튜어트 J. 러셀 Stuart J. Russell UC버클리대학교 컴퓨터과학 교수(사진)를 만나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교육과 교사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머신러닝과 강화학습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낸 러셀 교수가 피터 노르빅Peter Norvig과 함께 쓴 책 『Artificial Intelligence: A Modern Approach』는 전 세계 135개국 1,500여 개 대학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는데요. 그런 그가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핵발전소를 대하는 심정으로’ 신기술을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해당 인터뷰(영문)의 내용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스튜어트 J. 러셀 Stuart J. Russell UC버클리대학교 컴퓨터과학 교수 유네스코 『꾸리에』 인터뷰
+ 최근 몇 년 동안 교육 분야에서 신기술이 더욱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의 등장이 어떤 전환점을 가져다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원격교육이 확산했고, 이제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의 출현은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교실에서 집단적으로 받는 학습에 비해 개인 교사와의 수업이 2-3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지난 60년 동안 개발된 AI 기반 개인 학습 시스템은 학생과 대화를 나누거나 질문에 답하면서 학생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르치는 개인 교습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콘텐츠를 제시만 할 뿐, 가르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규모 인공지능 언어 모델이 등장하면서 여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제 학습자는 인공지능과 꽤 일관성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여전히 약점이 적지 않고 앞으로 해결돼야 할 일이 많지만, 저는 인공지능이 10년 내에 전 세계 모든 어린이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그렇게 된다면 교사라는 직업은 어떻게 될까요?
그 역할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교사는 여전히 꼭 필요합니다. 현재 (교사의 역할을 하기 위한) 인공지능의 당면 과제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 특별한 ‘교육적 역할(pedagogical role)’의 특성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육적 역할이란 예컨대 단지 학생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과정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언어 모델에게 이러한 ‘교사가 되는 방법’을 훈련시키는 과정에 대한 인상적인 사례는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열리더라도 학습자가 세상의 체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파악하는 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학습자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기 위해, 학습자가 가야할 올바른 길은 무엇이며 타인과 협력하고 사회 안에서 역할을 하는 법을 알기 위해 성인 조력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예컨대 한 교사가 8-10명의 학생과 함께 지내면서 일종의 ‘멘토’처럼 개별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숫자의 교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의 디지털 격차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신 기술이 이러한 격차에 변화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새로운 기술이 초·중등 교육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한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이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 보급 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교육 모델은 교사와의 화상통화보다 훨씬 적은 인터넷 대역폭으로도 가능합니다. 저는 오히려 병목현상이 각 문화와 언어에 맞는 맞춤형 콘텐츠와 인공지능 교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니까요. 정부가 공공 또는 민간 부문에서 이를 촉진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해외 원조의 일부를 여기에 쓸 수도 있겠죠. 만약 기업 일부의 탐욕이나 정부 일각의 부패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비극일 겁니다.
+ 그러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과 별개로, 교육 부문 신기술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인공지능과 관련한 많은 규제 이니셔티브가 추진되고 있고, 유네스코 역시 회원국들에게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윤리적 원칙에 따라 인공지능을 개발할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데이터 보호와 개인정보 보호는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엄격한 규칙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필요한 경우 관련 데이터가 교사나 감독자에게 공개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미성년 학습자와 부적절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논의할 수 있는 주제에 엄격한 제한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챗GPT와 같은 시스템 속에서 수조 개의 매개변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낼 수가 없고, 제 생각엔 알아내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방법을 모른다”는 개발사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오히려 규제가 더 나은 기술 개발을 유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핵발전소 운영자가 폭발을 막을 방법을 모른다고 말하면 그냥 받아들이고 운영을 맡길 수 있을까요?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이렇게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이해하고 또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합니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