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록으로 살펴본 팬데믹의 교훈
코로나19로 전 인류가 공포와 충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전염병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위협해 온 것도 사실이다. 올해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유네스코 세계기념해를 맞아, 지난 8월 20일 충남 당진시와 천주교대전교구는 ‘기후위기-감염병 종식 기원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 특별강연을 한 신병주 건국대 교수는 김대건 신부의 박애와 헌신을 되새기며, 조선시대 전염병의 역사 및 극복 사례가 현 코로나 시대에 주는 시사점을 제시했다.
전염병이 과거부터 우리에게 큰 위협이었다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에 60여 종의 역병이나 역질에 관한 기록이 무려 2만 건 이상 실려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392년에 이성계가 조선 건국의 결정적 사건인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면서 내세운 네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역병의 유행’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며, 조선 건국 직후인 1393년 3월에 이미 전염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실록에 등장한다. 해당 기록에는 태조가 심혈을 기울여 창건한 절인 양주 회암사에서 수 개월간 역질이 유행해 많은 스님이 희생됐고, 이에 왕사(王師)인 자초는 급히 거처를 광명사로 옮겼다고 나와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전쟁보다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현종실록』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다 기록할 수 없는 정도였는데, 삼남이 더욱 심했다. (중략) 늙은이들의 말로는 이런 상황은 태어난 뒤로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으로서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도 더했다”고 쓰여 있다. 실록 이외에도 오희문이 쓴 임진왜란 때의 피난 일기인 『쇄미록』과 같은 일기 자료, 이황이나 김정희의 편지 등에는 전염병에 관한 기록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는 『동의보감』과 같은 처방과 더불어 민간요법이 다수 등장하기도 하는데,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한 전통시대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최근 병자호란에 대한 한 연구는 조선에서의 천연두 유행으로 청 태종(홍타이지)이 전쟁의 조기 종결을 서둘렀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1637년 1월 16일 청나라군 진영에 마마 환자가 발생했고, 이것이 청나라가 조선 조정을 강화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천연두의 유행이 전쟁의 양상을 바꾼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6세기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아즈텍 문명을 침략했을 때로, 당시 유럽인을 통해 남아메리카에 상륙한 천연두로 인해 멕시코 원주민 2500만명 중 1800만명이 사망하며 현지 문명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질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도 전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를 격리시키는 등의 ‘사회적 격리’가 시행되었다는 사실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세워 전염병 대응을 위해 애를 썼는데, 세종은 환자의 시신을 전문적으로 매장하는 매골승(埋骨僧)을 양성했고 문종 때는 영의정을 비롯한 전 관료가 참여하는 국왕 주재의 비상대책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시대별로 유행하는 전염병의 양상도 달랐다. 15세기에는 뇌수막염으로 추정되는 악병(惡病)이, 16세기에는 이를 통해 전파되는 티푸스성 전염병인 온역(溫疫)과 말라리아 모기가 감염원인 학질(瘧疾)이, 조선후기에는 천연두가 널리 유행했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 실린 22명의 관리 얼굴 중 5명의 얼굴에서 마마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숙종은 천연두로 왕비 인경왕후를 잃었고, 아들인 경종과 영조도 천연두에 걸리는 아픔을 겪었다. 19세기에는 ‘호열자’라고 지칭된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었다.
전염병의 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조정은 의료기관을 설치하고 의학서를 편찬해 보급하는 한편, 허준, 유상, 지석영 등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며 이를 이겨 나가고자 했다. 조선의 의료기관으로는 내의원(內醫院),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가 있었는데, 내의원은 왕실 사람들을, 전의감은 관리들을, 혜민서는 백성들을 주로 치료한 의료기관이었다. 도성 밖에 설치한 동서활인서(東西活人署)는 전염병이 유행하면 격리 시설로 활용했다. 1885년에는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濟衆院)을 서울의 재동에 건립해 근대적인 의료 시설을 수용해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념해와 관련된 인물로는 정약용(2012년)과 허준(2013년), 김대건(2021년)이 있는데, 이 인물들이 모두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공을 세운 공통점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다산 정약용은 홍역을 연구한 『마과회통』을 저술했고, 구암 허준은 평생을 전염병의 예방과 치료에 헌신한 인물이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기념해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는 1845년에 천연두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선교사들에게 퇴치 처방을 요청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평화와 인권의 정신을 강조하는 유네스코의 이념과도 부합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우리 삶에는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으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이다.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시기가 있었고, 당시의 힘겨웠던 상황은 ‘홍역을 치루다’, ‘학을 떼다’, ‘염병할 놈’ 이라는 등의 우리말 표현 속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격리 시설 활용, 의학서 보급과 치료제 개발, 의료시설 확충 등의 노력을 통해 전염병의 공포를 이겨 나갔다. 이와 같은 민·관의 노력과 위기 극복을 위한 구성원들의 협력 사례들은 전염병 극복에 훨씬 효과적이고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이 되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