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생물다양성 보전,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
기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우리의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관념적으로 이야기하던 생물다양성 보전의 필요성은 이제 우리 모두의 생존에 절실한 문제가 되었으며, 그 일환으로 전 세계 야생식물의 종자를 보전하는 글로벌 시드볼트가 지난 2017년 백두대간 산자락에 만들어졌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자연과학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유미 원장이 이곳으로부터 환경과 생태의 새 물결을 일으켜 볼 것을 제안한다.
생물다양성(Biodiversity, Biological diversity)은 무엇인가?
간략하게 정의하면 지구상 모든 생물과 그 생물을 둘러싼 생태계의 다양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육상, 해상, 수생태계 및 생태적 복합체를 포함하는 모든 자원에서 생물 간의 변이, 종과 종 사이 혹은 종과 그 생태계 사이의 다양성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는 좁은 의미의 종다양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생태계 다양성과 유전자 다양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한 생물을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보전하려는 논의도 있다. 사람을 위한 실제적·잠재적 가치를 포함하는 생물자원(Biological resource)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신약 개발 등에 쓰일 수 있다는 등의 경제적 가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에너지나 물질 순환을 통한 생태계의 환경 조절이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폭우나 산불 등의 재난 방지, 나아가 우리가 생태계로부터 위로를 받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등의 정신적(사회적)가치까지 포함한다.
생태계에서도 식물은 지구 전체에 발견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먹이사슬의 고리를 떠받치며 생명이 계속 자라게 하고, 매년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며, 질소고정을 통해 생명체 기본 구성 물질인 단백질의 주성분인 질소를 이용하게 해 주고,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더없이 아름다우며 무궁한 존재이기도 하다. 식물이 존재하므로 우리도 존재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식물의 결실이자 시작은 바로 씨앗(종자)이다. 따라서 씨앗은 식물의 미래이자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도 하다. 씨앗에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환경과의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유전적 정보가 누적되어 있다. 이 정보는 인류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수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호프 자런의 소설 『랩걸(Lab Girl)』의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는 말은 생각할수록 마음에 닿는 문구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기후위기와 전쟁, 분쟁, 산불 등이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 중요한 식물들을 안전한 장소에 옮겨 보전하는 방법을 논의해 왔다.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식물종과 유전적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씨앗(종자) 보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 세계 식물의 90% 정도는 종자 형태로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유럽을 중심으로 주요 농작물과 이들을 계속 개량할 수 있는 유전정보를 가진 야생식물, 즉 CWR(CropWildRelatives)을 모아 보전하는 ‘글로벌 CWR 프로젝트’가 실행됐다. 북극 아래 얼음처럼 차가운 땅인 노르웨이의 스발바르(Svalbard) 땅 속에, 어떠한 재난으로부터도 안전하게 종자를 보전할 수 있는 중복저장장소인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SGSV)가 만들어졌다. 이어서 지구 반대편에 농작물 외의 지구상의 야생식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종자중복보전시설이 마련됐다. 두 번째 글로벌 시드볼트이자 최초·최대·유일의 야생종자 중복보전시설은대한민국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들어섰다. 2017년 문을연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에는 이미 여러 나라의 수십개 연구기관에서 야생종자를 기탁했고, 이들 종자는 기탁자 이외에는 열 수 없는 블랙박스에 담겨 영하 20도 이하의 온도에서 땅속 깊이 안전하게 국가보안시설로서 지켜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지구촌을 위한, 대한민국의 호혜적이고 자랑스러운 가치를 담은 시설이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내년으로 창립 70주년을 맞이한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 일어선 우리나라가, 모든 가능성을 담은 생명의 가치인 ‘씨앗’을 주제로 미래세대를 위한 생물종 보전운동을 제안하고 선도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전 세계 유네스코 회원 국의 미래세대들이 자신에게 상징적이거나 의미 있는 식물 종자를 모아 한국에 보내고, 이를 지구의 그 어떤 재난으로부터도 안전한 시설 내에 따로 마련한 ‘유네스코 존’에 각 나라의 이름으로 영구보전하는 ‘씨앗(미래세대)들의 씨앗(seed)보전운동’.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이렇게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생물다양성 보전운동을 펼치면서 그 과정을 각국 상황에 맞는 단계별 교육프로그램으로 풀어내며, 글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지키는 일을 실천해 나가는 아름다운 운동이자 교육이 진정성을 가지고 실현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생각을 모아볼 수 있길 소망한다.
이유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사업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