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탐방로 걷기
굽이굽이 역사의 위기의 순간마다 그 중심에 남한산성이 있었다. 한반도 요충지였던 남한산성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장구한 역사의 발자취를 느껴보자. 시간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성벽에 그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는 남한산성은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남한산성은 해발 500m의 험준한 산세 지형을 따라 지은 긴 타원형 포곡식 산성으로 성곽의 둘레만 12.4km에 이른다. 17세기 방어적 군사공학 기술을 집대성한 산성 축성술과, 요새화된 도시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라는 점에서 201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남한산성이 이처럼 늠름한 모습을 갖춘 것은 조선 인조 때다. 세력이 커진 후금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624년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터에 성을 쌓아 1626년에 완공됐다. 그로부터 10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전했지만, 추위와 굶주림에 47일 만에 서문 밖을 빠져나와 지금의 송파동인 삼전나루터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굳게 잠겼던 남한산성의 문은 그렇게 안으로부터 열렸다.
현대에 이르러 남한산성 성곽 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성벽 아래에서는 기나긴 역사의 자취가 드러났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이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증명하는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더불어 고려시대에 증축한 건물터와 유물이 발견되며 이곳이 고려 때 몽골군의 침입에 항쟁했던 결전지였다는 사실도 증명됐다.
남한산성을 둘러보는 탐방로는 테마에 따라 다섯 가지 코스로 나뉜다. 북문에서 시작해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을 통과해 남문으로 나오는 1코스는 장수의 길이며, 영월정과 숭렬전, 서문, 수어장대를 차례로 둘러보는 2코스는 국왕의 길이다. 어떤 코스로 걸으나 주변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좋다. 남한산성의 4대문 중 가장 큰 남문에는 유일하게 ‘지화문’이라는 현판이 남아있다. 지화문은 정조 때 성곽을 개축하며 붙여진 이름이다. 남문 위에 올라 성곽을 바라보면 북쪽으로 갈수록 험준한 능선을 따라 지은 산성의 형세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남한산성의 웅장함을 특히 잘 느낄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 위에는 1940여 개의 여장(女墻)이 설치돼 있다. 여장은 몸을 숨긴 상태에서 적에게 총과 활을 쏠 수 있는 낮은 담이다. 남한산성의 여장은 구운 벽돌인 전돌로 만들어 화포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했고, 총안이라는 구멍을 설치해 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했다.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활을 쏠 수 있는 타구가 있다. 전돌로 여장을 쌓은 남한산성의 기술은 이후 수원화성 축조에도 기초가 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옹성도 5개나 된다. 옹성은 원래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을 둘러싸는 반원형 성벽인데,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공격하기 위해 문이 아니라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점이 남다르다. 옹성 앞부분에는 포대를 설치하고 불랑기(조선 중기에 제작된 서양식 화포)도 배치했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 마주치는 암문에서도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암문이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작은 성문으로 물자를 나르고 지원병을 받는 통로였다. 남한산성에는 총 16개의 암문이 있다. 성안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장수가 전투를 지휘하는 장대가 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내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로 지금도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는 행궁에도 깃들어 있다. 인조는 1626년 한양 도성 밖으로 거둥할 때 머물기 위해 남한산성 행궁을 지었다. 당시 남한산성 행궁에는 왕의 침소였던 상궐과 업무를 보던 하궐을 비롯해 조선시대 행궁 중에서는 유일하게 종묘사직을 모시는 좌전과 우실이 있었다. 좌전은 종묘의 위패를 비상시에 옮겨놓을 수 있는 건물이고 우실은 사직을 옮겨 놓는 곳으로, 이는 남한산성 행궁이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남한산성 여행자 노트
만해기념관 | 남한산성 남문 주변 만해기념관에서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발자취를 느껴보자.
광주한옥마을 | 남한산성의 수려한 자연 아래 조성한 전통 한옥 마을이다. 전통문화 체험은 물론 한옥에서 하룻밤 머무를 수 있다.
남한산성 백숙거리 | 남한산성행궁 앞으로 조성된 백숙거리에서 식사를 즐겨보자. 닭과 오리를 활용한 백숙요리 전문점들이 성업 중이다.
글 · 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남한산성 5개 탐방로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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