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세종 우루과이 프로젝트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제정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상한 기관들과 함께 지난해부터 스리랑카, 요르단, 우루과이, 파키스탄 등 4개국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요르단에 이어 이번 달에 찾은 곳은 남아메리카의 우루과이입니다. 우루과이 교육문화부는 브릿지 세종 사업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교정 시설에 있는 재소자들의 자립갱생을 돕는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실제 재소자인 카를로스를 만나 책과 문해력이 가져다 준 삶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새벽 6시, 우루과이 북서부 살토(Salto)시의 20번 교도소. 모범수 카를로스는 재소자 중 제일 먼저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동료 재소자들과 차 한잔을 한 뒤, 정확히 아침 7시에 다목적 도서관의 문을 엽니다. 카를로스는 우루과이 교육문화부가 지원하는 20번 교도소 내 다목적 도서관의 책임 사서로, 평일에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지원합니다. 교도소 내 700명의 재소자들의 도서 대출과 반납을 돕고,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며,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직접 찾도록 사전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카를로스는 9시부터 12시까지 운영되는 문해교육에 필요한 교보재가 학생 수에 맞게 모두 인쇄되어 있는지, 칠판은 깨끗한지 확인한 뒤 외부에서 오는 선생님들을 맞이합니다. 재소자들은 읽기 및 쓰기 워크숍, 연극, 수화 등 여러 활동에 참여합니다. 이곳의 재소자들은 입소하자마자 문해진단을 받고, 문해력에 따라 초·중·고등반에 각각 배정됩니다.
4년 전에 입소한 카를로스도 이곳에서 중등교육을 마쳤습니다. 카를로스가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고, 교도소 안의 시간은 느리게 갔습니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카를로스는 사회에서 일을 하며 어렴풋이 익혔던 문해력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매일 수업을 듣고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만난 세상을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동료 재소자와 간수, 문해교사들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런 카를로스의 성실함을 오랫동안 지켜본 교도소장은 카를로스를 도서관의 책임사서로 임명했습니다.
“카를로스 아저씨! 이번 주에 새 책이 도서관에 들어왔던데! 요즘 역사가 재밌는데 역사소설 도 있나요?”
도서관에 새로운 교보재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달려온 페드로가 카를로스에게 묻습니다. 최근 이곳에서 초등교육 과정을 마친 스무 살 청년 페드로는 읽고 쓰는 데 흥미가 생겼고, 카를로스의 도움으로 사전 사용법도 익혀 새로운 글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책이야. 네가 지난 주에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의 난이도이니 쉽게 읽을 수 있을 거야. 가기 전에 도서대출반납대장에 기록하는 것 잊지 말고.”
새 책을 보고 눈을 반짝거리는 페드로를 보면서 카를로스는 책임사서로서의 책임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카를로스는 도서 관리와 도서관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동료 재소자들과 각자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공유하고, 관심사와 열정을 나누면서 재소자들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에 흥미를 갖도록 도와주는 멘토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문장 한 줄 읽는 것도 버거워했던 페드로도 그런 카를로스의 안내에 따라 지난 6개월간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한 끝에 지금은 ‘독서왕’이 되었습니다.
카를로스에게 도서관은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생각의 창이기도 합니다. 카를로스는 이곳에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어쩌다 감옥까지 오게 되었는지, 출소 후 평생 안고가야 할 낙인과 고정관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래에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 것인지 등을 생각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면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동력을 찾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료 재소자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책을 통해 삶의 중요한 가치와 교훈을 찾는 여정에 함께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브릿지 세종 우루과이 프로젝트를 통해 20번 교도소뿐 아니라 4000명의 재소자가 있는 몬테비아(Montevia)시의 4번 교도소에서 우루과이 교육문화부가 도서관 기자재 및 교보재를 마련하고 입소자 대상 문해진단을 하는 일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해진단과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도구와 운영지침을 만들어 문해교육 체계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비문해 극복은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후원자들의 소중한 기부 덕에 어두운 과거를 안고 있던 우루과이 재소자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이를 바탕으로 출소 후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2023년 브릿지 세종 우루과이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서정아 브릿지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