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백제역사유적지구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은 공주는 걷기 좋은 도시다. 문주왕이 쌓은 공산성을 거닐고, 무령왕이 잠든 왕릉원 사이를 사뿐사뿐 걷다 보면 한 시대가 남기고 간 여운이 마음에 오롯이 깃든다.
도읍지의 숨결이 깃든 공산성
달이 수없이 차고 기울기 전, 부드러운 물길이 흐르는 금강변에 공산성이 있었다. 해발 10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성벽을 쌓은 요새다. 지금 남아있는 성벽은 조선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됐지만, 그 아래로 백제 시대에 쌓은 토성이 지나고 있다. 공산성은 왕궁을 품은 왕성이라는 점에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미는 오후, 공산성 금서루 앞에 섰다. 성돌 곁으로 난 조붓한 길을 따라 깃발이 펄럭이는 언덕을 오르자 공주 시가지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아래에서 보았을 땐 그리 높지 않아 보였는데, 성곽 위에 서니 아래를 내려다보기 아찔할 만큼 가파르다. 산성은 울창한 숲 가운데 있어 청아한 새소리가 가득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취는 햇볕 한 조각을 바라보며 백제의 역사를 떠올려 본다. 475년 9월 고구려의 백제 공격으로 개로왕은 죽고 수도 한성은 폐허가 됐다. 패망 후 왕위에 오른 문주왕은 그해 10월 도읍을 지금의 공주로 옮겨 공산성을 쌓았다. 위난을 극복하고 다시 강국이 되기 위한 도약이었다. 공산성은 문주왕 이후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64년간 왕성의 역할을 담대히 해냈다.
세월이 흘러 왕궁은 사라지고 추정 왕궁터만 나붓이 남았다. 동성왕이 세운 임류각과 백제 왕궁 부속 건물터와 연못, 조선 시대 인조가 머물렀던 쌍수정 등은 옛 모습대로 남아있거나 복원됐다.
왕도의 숨결이 깃든 공산성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이내 하늘은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고 조명이 하나둘 켜진다. 번번이 위기를 헤치고 희망의 장소로 거듭났던 공산성답게 찬란하게 빛난다. 마치 공산성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찬연했던 문화의 열쇠,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015년 공산성과 더불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공주 무령왕릉 왕릉원(구 송산리고분군)에도 언덕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왕릉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전시관에 실물 크기로 재현한 무령왕릉과 5·6호분을 둘러보고 산책 삼아 한 바퀴 둘러보기 그만이다.
발굴 과정도 흥미롭다. 1971년 여름 5호분과 6호분 사이 배수로 공사 중, 물길을 내려고 땅을 파는 와중에 무덤 지붕으로 추정되는 벽돌을 마주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그 만남 이후 무령왕릉에서는 백제의 유려한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금제관장식, 금제귀걸이, 고리장식 칼 등 껴묻거리만 수천 점이 출토됐다.
차곡차곡 쌓인 벽돌로 막혀 있던 무령왕릉 안에서 발견한 것은 중국, 일본과 교류하며 융성했던 백제의 문화였다. 긴 잠에서 깨어난 벽돌무덤 안에 들어서자 입구에는 무려 1500년간 무령왕릉을 지켜온 진묘수가 있었고, 그 근처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무령왕)이 계묘년에 사망해 을사년에 이르러 예를 갖추어 안장한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2021년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기념 특별전’을 9월 14일부터 열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무령왕릉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지석’부터 무령왕릉을 둘러싸고 있던 연꽃무늬 벽돌과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직접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가을, 공주에 가야 할 이유다.
| 공주 여행자 노트 |
[메타세콰이어길]
정안천 생태공원 끝자락,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선 길이 시작된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피톤치드의 기운을 한껏 누려보자.
[제민천]
요즘 공주가 궁금하다면 제민천으로 가야 한다. 골목골목 숨어있는 한옥 카페와 서점, 갤러리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곡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전통사찰’ 중 하나로 등재된 태화산 자락의 천년 고찰이다. 사찰을 둘러 본 후엔 백범 선생이 걷던 ‘솔바람길’을 산책해 보자.
글, 사진 우지경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