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와이어트 전 국제펜클럽 부국장
30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소감이 어떠신가요?
제가 20대였던 1980년대에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에서 동아시아 담당 연구팀원으로 6년 정도 일했습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당시 정치·사회적 격동기를 겪고 있던 한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1988년 동료 1명과 함께 2주 동안 한국에서 양심수와 그 가족들, 각 대학 학생회장, 당시 시민운동의 중요한 축이었던 한국의 기독교 단체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고 서로 연대하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이 사람들 속에는 단단한 무언가가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다시 찾은 한국은 3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고 사회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다는 느낌입니다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은 그대로인 것 같네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을 떠나 23년간 국제펜클럽에서 일하셨습니다. 국제펜클럽은 어떤 곳인지, 이직 동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국제펜클럽은 소설가, 시인, 기자 등 글 쓰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읽고, 쓰고, 말하고, 출판할 권리를 침해 받지 않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1921년 설립된 국제 단체입니다. 인권 보호라는 큰 맥락에서 보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비슷하지만 대상과 주제 면에서 그 범위가 훨씬 집중되어 있지요.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제 가족은 대대로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머니는 일러스트레이터, 새아버지는 화가, 할머니는 의상 디자이너, 할아버지는 재즈 연주자였습니다. 친아버지는 영화관에서 일하셨고요. 모두 이름난 예술가들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을 생업 수단으로 삼은 평범한 시민들이었죠. 저는 예술가가 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예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이런 주제와 관련성이 더 높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던 것 같네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많이 접하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예술가의 권리 옹호를 위해 일하게 된 셈이네요. 현재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국제 전문가 그룹 멤버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유네스코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유네스코와 주로 어떤 분야에서 협력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예술적 표현의 자유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오다 보니, 유네스코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문화다양성협약 이행에 관한 글로벌리포트를 처음 펴낼 때였죠. 2013년에 처음 연락을 받았고, 당시에는 주요 집필자는 아니었지만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해서 제공하는 역할을 했어요. 이후 제가 직접 주요 집필자로 참여한「2018 글로벌 리포트」를 준비할 때는 더욱 깊이 관여했습니다. 현재는 문화다양성협약 국제 전문가로 등록되어 제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직접 가서 발표를 하기도 하고, 자문을 해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활동 중인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국제 전문가가 총 40명 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의 의의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또한 이 협약의 한계가 있다면 어떤 부분일지 말씀해주세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은 제가 아는 한, 다양한 국가가 모여 문화예술을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 규범이에요. 국가, 특히 정부 대표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는 흔치 않죠. 그런 면에서 논의의 계기와 장을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협약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협약이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협약 이행에 대한 정기보고서를 국가가 작성해 제출할 때, 시민사회의 의견이나 활동을 꼭 포함하도록 되어 있어요. 이러한 체계가 정부와 시민사회 간 소통을 진작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다만, 유네스코는 오래된 기구이면서 조직의 크기도 작지 않아서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문화예술 관련 현안을 다루기 위해 유네스코도 계속해서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 실효성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유네스코뉴스』 독자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문화예술은 사치품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일상 속 문화의 중요성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예술적 표현의 자유라는 말도 화려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우리가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 마음대로 사진 찍고, 노래 부르고,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서로 다른 이질적 문화들의 합, 그러니까 ‘문화의 다양성’(diversity of cultures)이라고 치부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는 고유성이 바로 문화다양성의 출발점이니까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송지은 문화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