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라디오 박귀빈 아나운서
라디오 진행자(DJ)는 라디오라는 매체를 사랑하지 않으면 맡기 어려운 일이다. 매일 생방송을 진행해야 하고, 자기 관리와 ‘내공’ 관리도 필수적이다. 17년째 라디오를 진행해 오고 있는 박귀빈 아나운서에게 라디오라는 매체는 무엇인지, 이 매체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 안녕하세요. EBS라디오와 YTN라디오에서 활동하시면서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에서도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매체에 진심’인 분 같기도 한데요. 아나운서님께 라디오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듣기만 해도 된다는 것, 소리로만 전달된다는 게 제가 생각하는 라디오만의 매력이에요. 청취자가 상상을 하게 만들거든요. 뭐든 실물을 보게 되면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 이상의 상상을 하게 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때론 상상을 통해 더 많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기대와 설렘을 갖기도 하죠. 그것이 라디오의 큰 장점입니다. 물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라디오만의 장점이에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소리로만 전달된다’는 이 매체의 속성, 그 자체가 매력입니다.
— TV 등의 영상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겠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이야말로 진행자(DJ)의 역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포맷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에게 그것은 기회이자 부담이기도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시각적인 것에 신경이 분산되는 TV와 달리 라디오는 오로지 소리만 들리기에 진행자의 방송 역량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청취자의 귀가 예민해지는 거죠. 올바른 표현을 쓰고, 발음, 발성, 목소리, 말투, 말의 속도 등에 더욱 신경을 써서 청취자가 편안하고 듣기 좋게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평소 제가 한 방송을 자주 모니터링하는 습관도 그 중 하나예요.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말하는 것만 꾸준히 들어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잖아요? 라디오 방송은 청취자에게 꾸준히 말을 걸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요. 제 방송을 오래 들은 청취자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테니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죠.
— 오랜 역사만큼이나 라디오에 대한 경험은 세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과거의 라디오와 요즘의 라디오에서 어떤 다른 점이 느껴지시나요?
예전 라디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DJ’와 ‘사연’이에요. 게스트 없이 DJ 혼자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저녁이나 늦은 밤 시간대의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였죠. ‘라디오’ 하면 ‘감성적’이란 인식이 있었어요. 소통 방식도 손편지나 엽서여서 라디오와 청취자 사이에 애틋함과 기다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엔 시사나 예능 프로그램이 더욱 주목받고 출연자들도 많아졌어요. 또 ‘보이는 라디오’로 스튜디오를 볼 수도 있고 댓글창 등으로 실시간 소통도 가능하죠. 라디오에 대한 신비감은 줄어든 대신 청취자와 현실적인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청취자와 참여자의 연령층도 매우 넓어진 것 같고요.
— 라디오는 레거시(구) 미디어이지만 오늘날의 환경에 맞춰 진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예 중 하나로 팟캐스트로 대표되는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을 들 수 있겠는데요. 아나운서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오디오클립을 따로 운영하게 되셨는지, 어떤 특별함을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EBS라디오에 있을 때 낭독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정말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방송에서 낭독했죠. 7년간 진행했던 프로그램에서는 매주 그림책 한 권씩을 읽었었고요. 그때 낭독이란 게 참 좋다는 걸 알았어요. 힐링이 되더라고요. 그때의 좋은 기억이 개인 오디오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졌어요. 제게 주어진 선택권이 제한적인 방송 프로그램과 달리 이 채널로는 제가 뭘 할지, 어떻게 할지, 언제까지 할지, 모두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림책 낭독이 좋고, 그걸 오디오 콘텐츠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게 좋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청취자로부터 힐링이 된다, 좋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는 더 큰 보람을 느끼죠.
— 끝으로 라디오를 사랑하는 청취자들, 그리고 21세기에도 라디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여러 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네스코의 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라디오의 중요성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내 일상을 멈춤 없이 그대로 하면서 들을 수 있고, 비싼 기기나 이용료 없이도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매체죠. 전쟁이나 재난 발생 시 정보전달의 수단이기도 하고, 개발도상국에선 건강과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 도구이고요. 화려하고 다양한 매체들이 뜨고 질 때도 라디오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언제나 제 역할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믿어요. 그 믿음을 여러 사업을 통해 펼치고 있는 유네스코 가족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라디오 청취자 여러분, 앞으로도 라디오 많이 사랑해주세요.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유네스코뉴스』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