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학교 60년사 ➊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세계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유네스코학교가 한국에 뿌리를 내린 지 올해로 60년이 되었다. 교육 현장에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뿌리내리고, 포용적이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하는 차세대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유네스코학교의 60년사를 차례로 소개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옛날에 어떤 왕이 소 한 마리를 끌고 지나가는 신하를 발견하고는 소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신하가 그 소는 제물로 바쳐질 소라고 대답하자 왕은 소를 놓아주고 대신 양으로 바꿔 의식을 치를 것을 지시했다. 두려워 벌벌 떨며 사지로 나아가는 소를 왕은 차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여러 나라를 순회하던 중 이 나라에 와 있던 현자가 왕의 이러한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끌려가는 소를 목격하고 죽이지 않은 것은 측은지심 때문이며, 따라서 왕의 행동은 인(仁)을 몸소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 대신 양이 제물로 바쳐지게 된 데 대해서는 왕이 “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한 탓”이며, 만약 왕이 양을 눈 앞에서 보았다면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겠지만,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는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이 있다. 양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까? 왕은 직접 보지 못한 양에 대해서는 왜 측은지심을 발동하지 않았을까? 맹자의 의도와 달리, 이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홀대나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데 인용될 수도 있다면 유교 경전에 대한 무책임하고 불경스런 오독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과 연민, 그리고 애정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차별 없이 평등한 사랑을 강조하는 겸애론(兼愛論)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내 곁에서 일상을 함께 하는 가족의 안부에 비해 멀리 다른 지역에 사는 타인의 안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고 후순위이기 십상이다. 시간 관념으로도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현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적한데, 정확히 예측하기도 어려운 내일의 일을 관심 갖고 준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과도하게 구별해서 대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와 내 가족, 우리의 이웃, 우리나라만을 챙기고 다가올 미래보다는 현재의 문제 해결에만 치중하게 된다면, 낯선 타인의 어려움이나 미래에 당면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무관심과 무감각한 태도로 일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내 시야 바깥의 타인이나 미래는 어떤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타인이나 미래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감각은 결국 나와 현재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감각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과 참여
유네스코학교 활동의 핵심 주제인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은 시공간적으로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각별하다.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사회, 경제, 환경 측면에서 현 세대의 요구 못지 않게 미래세대의 요구를 강조함으로써, 이전까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미래’를 일상의 사고 범위와 행동 반경 안으로 끌어들였다. 세계시민교육은 세계의 집단과 개인의 연결성을 강조하면서 상호 연대 책무의 공유 대상을 국가 시민에 한정하지 않는다.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먼 곳의 기후난민이나 분쟁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인종, 성적 지향, 문화적 배경에 관계 없이 시민적 권리와 책임이 배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치를 학습하고 여기에 대해 고민해 본 학생들에게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다. 세계시민교육을 접한 학생들은 ‘다름’을 ‘틀림’으로 단정하거나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접한 학생들은 자신의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일상 속 말과 행동에서부터 타인과 미래를 늘 염두에 두며 ‘더불어 살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일찍이 기성세대가 가져보지 못한 변화로, 유네스코학교 활동이 이러한 변화를 촉진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2015년에 실시된 중학생 세계시민성 인식 실태 분석이나 2018-2019년 유네스코학교 교사 대상 설문 결과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2015년 실시한 중학생의 세계시민성 인식 실태 분석에 따르면, “유네스코학교, 시민운동 관련 활동이나 국제 캠프 같은 프로그램 참여 경험이 2개 이상인 응답자 집단에서 전 지구적 갈등 추세에 대한 보다 깊이 있고 비판적인 이해가 나타나고, 인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또한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유네스코학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학교, 교사, 학생 차원에서 모두 국제사회의 공동과제 및 국제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 유네스코학교 활동의 중요한 성과로 손꼽혔다.
이처럼 유네스코학교는 지속가능발전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통해 ‘더불어 살기’를 배우고 익히는 학교로 진화하고 있다. 1953년 전 세계 16개국 33개 중등학교가 참여해 시작된 유네스코학교는 차츰 그 영역을 넓혀가며 전 세계의 학생들 마음에 평화의 터전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1년에 그 첫 걸음을 뗀, 한국의 유네스코학교 발전사를 함께 살펴보자.
신종범 유네스코학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