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자연사 박물관, 광릉숲 걷기
광릉숲은 50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천연 자연사 박물관이다. 걷기만 해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울창한 숲길이 그 안에 펼쳐진다. 긴 세월 새로운 생명을 틔워 온 광릉숲에서 나무의 숨결을 느껴보자.
경기도 포천시 남쪽에 동서 4km 남북 8km에 이르는 광릉숲이 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전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까막딱따구리, 참매, 원앙 등 멸종 위기의 새들이 서
경기도 포천시 남쪽에 동서 4km 남북 8km에 이르는 광릉숲이 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전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까막딱따구리, 참매, 원앙 등 멸종 위기의 새들이 서식하는 광릉숲은 온대 중부 성숙림으로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꼽힌다. 이에 2010년 6월에 설악산, 제주도, 신안 다도해에 이어 한국에서 네 번째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이곳은 나라에서 쓸 큰 나무를 기르는 숲이자, 왕실 일가가 사냥을 즐기던 사냥터였다. 1468년에는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왕비의 능인 광릉이 조성되면서 이 일대는 왕릉의 부속 숲으로서 엄격하게 관리되어 왔다. 옛날의 광릉숲이 왕가의 전유물이었다면, 오늘날의 광릉숲은 모두에게 열린 숲이다. 1987년에 산림박물관과 온실을 갖춘 광릉수목원으로 문을 열었고, 1997년에는 침엽수원, 활엽수원, 관목원, 수생식물원, 습지원, 지피식물원 등 22개의 전문 전시원이 조성되면서 국립수목원으로 거듭났다. 사전 주차 예약만 하면 누구나 언제든 국립수목원에서 피톤치드 가득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초록빛 힐링을 즐길 수 있다.
숲길을 걸을 땐 핸드폰은 내려놓고 국립수목원 안내 지도를 펼쳐 보자. 힐링 전나무길, 러빙 연리목길, 느티나무 박물관길 등 테마별로 걷기 좋은 길이 표기된 지도를 국립수목원 입구에서 챙겨들고 길을 나서면 한층 더 깊은 광릉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먼저 찾아본 곳은 ‘숲생태관찰로’다. 숲생태관찰로는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걸으며 숲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코스다. 나무의 뿌리는 어떻게 발달하는지, 고사목이 흙으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등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길 중간중간 만나면서 숲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길이었다.
숲생태관찰로를 벗어나자 육림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육림호는 ‘여리 연꽃’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호숫가 키 큰 나무 아래에는 벤치가 많아서 가만히 쉬어가기도 좋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육림호를 지나 ‘힐링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니 좀 더 깊은 숲으로 접어들었다. 새들은 청아한 목소리로 ‘어서 와서 숲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어느새 거대한 전나무 무리가 산책자들을 내려다보는 전나무 숲이 펼쳐졌다. 웅장한 숲을 이루는 1500여 그루의 전나무들은 1927년 오대산 전나무 숲에서 가져온 종자를 증식시켜 심은 나무로 어느덧 백 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나무들은 어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며 나이테를 키워왔을까. 절로 숨을 죽이면서 바라보게 되는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이었다.
국립수목원 산책의 또 다른 묘미는 전국 각지에서 자생하는 수목과 조우하는 것이다. 나무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울릉솔송나무는 달걀 모양의 작은 솔방울이 소나무와 닮아서 설송나무라 불리다가 솔송나무가 되었다. 서어나무는 숲이 천이(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에 맞게 바뀌어 가는 과정)한 끝에 극상림(가장 안정된 상태의 숲)이 되었을 때 볼 수 있는 나무이며, 수령이 오래된 서어나무나 참나무에는 그 속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까지 이야기를 보탠다. 광릉숲을 걸으며 이러한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 아름다운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나부터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광릉숲 여행자 노트
광릉숲길 | 봉선사에서 국립수목원까지 3km 정도 이어지는 나무 데크 길이다. 중간중간 벤치가 놓여 있어 쉬엄쉬엄 숲길을 걷기에 더할 나위 없다.
광릉숲 축제 | 매년 가을 개최되는 축제로 광릉 숲길 걷기, 숲속 콘서트를 비롯해 각종 전시와 에코 플리마켓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봉선사 | 광릉 숲길 시작점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의 본사다. 절 종각에 보존된 동종은 조선 전기의 유물로 보물 제397호로 지정돼 있다.
글 · 사진 우지경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