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차 동북아 생물권보전지역 네트워크 회의
제16차 동북아 생물권보전지역 네트워크(East Asian Biosphere Reserve Network, EABRN) 회의가 ‘(포스트) 팬데믹 시기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위한 생물권보전지역’을 주제로 2022년 10월 3일부터 7일까지 몽골에서 열렸다. 2015년부터 MAB(Man and the Biosphere, 인간과 생물권)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철인 교수의 후기를 전한다.
1995년 설립된 이래로 2년마다 개최해 오던 동북아 생물권보전지역 네트워크 회의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18년 카자흐스탄 회의 이후 4년 만에 열렸지만, 동북아 각국은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7개 회원국 중 북한을 제외한 6개국이 참가하는 것으로 예정되었으나 막상 현장에는 4개국만 참가했다. 중국은 2년간의 활동을 국가별로 보고하는 첫날 회의와 다음날 주제발표를 온라인으로 했고, 러시아는 국가별 보고서 발표자료만 보내오는 것에 그쳤다.
2021년에 유네스코가 발간한 『생물권보전지역을 위한 기술 지침서』에 따르면 지역별·주제별 네트워크는 생물권보전지역들의 연합을 기반으로 하며 MAB 국가위원회도 ‘종종’ 참여한다고 나와 있는데, 이번 네트워크 회의에는 주최국인 몽골을 제외하고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자의 참여가 매우 부족해 보였다. EABRN이 처음에 공동연구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나 언어 소통의 문제로 지역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자의 참여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EABRN이 생물권보전지역 간 네트워크임을 감안하면 이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네트워크 회의 참가자의 구성을 보면서 MAB 국가위원회와 생물권보전지역 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의 회의를 마친 후 참가자들은 지난 2020년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토손-훌스테(Toson-Khulstai) 생물권보전지역을 방문했다. 3일간의 여정이었지만 회의가 열린 울란바토르에서 그곳까지 왕복 1300km가 넘는 거리를 차로 이동하는 여정이어서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체류할 수 있었던 시간은 5시간 반 남짓에 불과했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서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은 봄여름의 푸른빛을 뒤로하고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가에 작은 들쥐가 많이 보였는데, 들쥐가 많다는 사실은 초원의 질적 저하를 보여준다고 한다. 유목민이 키우는 가축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몽골은 1992년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체제변환이 이루어졌는데, 사회주의 국가 시절에는 가축 수를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장탐방 내내 회의 참가자에게 영어로 설명을 해 준 이는 토손-훌스테 생물권보전지역 신청서를 작성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생물권보전지역의 풀이 다른 곳보다 더 잘 자라 있다는 설명을 해 주었지만, 사실 문화인류학자의 눈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초원지대에 사는 유목민, 특히 생물권보전지역에서 방목하는 유목민의 삶에 관심이 갔다. 다행스럽게도 생물권보전지역 내 한 유목민 가정을 방문할 수 있었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는 토손-훌스테 생물권보전지역에 대해 “대략 200가구가 9만 1000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핵심구역에서 살고 있는데, 그중 18가구가 정착해서 살고 있고 47가구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유목가구”라고 나와 있다. 생물권보전지역에서 방목하는 가구는 이곳을 관리하는 지자체를 비롯한 이해당사자 간 합의서를 체결해야 한다. 합의서에는 유목민 가구가 생물권보전지역 안에서 할 수 있는 행위와 할 수 없는 행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는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어 아쉬웠다.
몽골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어 이 지역에 서식하는 가젤(gazelle)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였다. 가젤의 서식처 보전이 몽골 자연보호구역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이곳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MAB 한국위원회 위원은 거의 이틀에 걸쳐 달려왔음에도 가젤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한 상황이 전혀 아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가젤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지난 여름 내내 뛰어다녔을 것이고 내년 봄에 다시 이곳에서 노닐 테니, 굳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더라도 가젤과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가젤뿐만 아니라 재두루미와 초원수리(Steppe Eagle)를 비롯한 조류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그러나 계절상 대부분의 조류도 이미 이곳을 떠나 현장탐방 때 제대로 관찰할 수는 없었다.
야생동물인 가젤과 인간이 방목하는 가축은 이 초원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가젤은 주로 봄과 여름철에 이곳 토손-훌스테 생물권보전지역에 머물고 가축은 가을과 겨울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처럼 계절에 따라 생물권보전지역 내 초원의 풀을 먹는 동물이 달라지지만, 그 과정에서 야생동물과 가축이 공존해야 할 순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와 삶의 방식이 우리와 다른 몽골의 생물권보전지역 현장을 탐방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지속적인 공존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유철인
MAB 한국위원회 위원 /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