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다자협의체로서 유네스코의 특징과 역할
과학기술 발전의 영향 범위와 파급효과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자협의와 과학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며, 과학기술 관련 다자협의체 중 가장 많은 회원국을 보유한 유네스코의 역할도 중요하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이슈 브리프’ 『과학기술 다자협의체로서의 유네스코의 특징과 역할 모색』은 과학기술 부문에서 유네스코의 강점과 특징을 분석하고, 유네스코 본부와 한국 정부 간의 가교로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역할을 제안해 보았다.
지난 7월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신경과학기술윤리 국제 컨퍼런스’ 현장 모습. 과학기술 다자협의체로서 유네스코의 역할, 그리고 유네스코 내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이번 ‘이슈 브리프’ 1절에서는 먼저 과학기술의 국제화 및 범용성 특징과 최근의 지정학적 환경변화를 마주한 글로벌 연구생태계에서 유네스코 과학사업의 의미를 탐색했다. 현대사회의 과학 연구는 연구자가 연구 질문을 설정하고 연구를 시작하는 첫 단계부터 논문 출판, 특허 등록, 과학계로부터 과학지식으로 인정받고 널리 활용되기까지 모든 단계에 걸쳐 전 세계 과학자들과 직·간접적 교류하는 하는 국제 활동이다. 또한 개인 삶의 질과 방식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산업·경제 발전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글로벌 난제 해결에도 주요한 성공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국제적 및 범용적 특성을 알고 있기에 국제사회는 과학기술 국제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연구생태계는 이러한 지정학적 역학이 OECD, G20, G7의 과학기술 국제협력 논의에까지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유네스코 과학사업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네스코는 역사적으로 지정학적 긴장감이 첨예했던 시기에 과학기술을 통한 평화적 유대관계를 증진시킨 경험이 있고, 구조적으로도 다른 국제기구에 비해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영향을 덜 받고 비교적 중립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절에서는 유네스코의 과학사업 활동을 OECD의 과학기술정책위원회(Committe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CSTP) 및 CSTP에서 과학의제를 담당하는 글로벌 과학포럼(Global Science Forum, GSF) 활동과 비교·분석했다. OECD와 유네스코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이후 설립되었고 본부를 프랑스 파리에 두고 있는 기구로서 ▲과학기술관련 권고안 제정-이행-모니터링-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과학기술 정책권고를 포함한 국제규범 수립에 주력하고 ▲데이터베이스 운영을 통한 회원국의 과학기술 데이터와 정보를 제공한다는 유사점을 갖고 있다. 물론 유네스코 과학사업과 차별되는 CSTP의 특징도 있는데, 특히 전문가 참여 채널이 체계적으로 수립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CSTP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기술 정책담당자뿐만 아니라 정부출연연구소와 대학의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의 참여를 위한 채널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 최근 한국 전문가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CSTP에서 한국인 의장이 배출되기도 했고, 산하 거의 모든 작업반에 한국인 전문가가 의장단으로 활동하고 있어 OECD에서 진행되는 과학기술 정책의제에 대한 논의를 정기 총회 이전부터 파악해 필요에 따라 한국 정부와 OECD 사무국 간의 논의를 진행한다. 또한 OECD는 다양한 정책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회원국 전문가가 제공하는 의제별 각국 현황과 정책방향 정보를 비교·분석하여 발간물로 내고 있다. 이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활동과 성과를 OECD를 통해 국제사회에 확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유네스코의 과학사업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기회요인과 위험요인을 분석해 보았다. OECD CSTP의 활동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유네스코 과학사업의 강점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네트워크(회원국 194개국, 지역사무소 53개, 산하조직 136개)를 보유한 과학기술 다자협의체라는 점, 그리고 개도국 과학기술에 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표준화된 최신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사업재원이나 전문인력 등의 자원 부족 이슈가 여러 차례 지적됐다는 점, 개도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특히 국내에서 사업의 파급효과와 가시성이 미약한 점, 그리고 한국인 전문가의 참여체계가 아직 미비하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분은 유네스코 사업과 국내 연구생태계 간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이하 한위)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위는 한국 정부와 유네스코 본부의 연계 사업을 기획하고 한국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유네스코 글로벌 네트워크와 사업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간 국내 연구생태계는 활발한 과학기술 투자활동에 비해 국제협력 및 과학기술 인력 이동성이 낮은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또한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여전히 국내 전략 의제에 더 집중하고 있어 글로벌 도전과제와 SDGs 달성을 위한 과학기술적 노력은 아직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네스코 과학사업의 한계점을 개선하고 194개국 회원국이 이를 빠르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한위가 한국 과학기술계의 기여방안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이를 추진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해 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유네스코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과학기술계가 글로벌 도전과제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 역할 수행에 견인차가 되어줄 것을 요청한다.
선인경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지속가능혁신정책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