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용 전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과학 발전의 속도는 인류의 미래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동시에 윤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계에서 윤리적 성찰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 온 송상용 교수를 만나 과학기술윤리 분야에서의 활동 소회와 한국사회에서의 유네스코의 역할에 대해 들어 보았다.
― 유네스코와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네스코와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사업 분야에 과학 분야를 넣는 데 크게 기여한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 초대 사무총장과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초대 과학부장은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름을 알고 있던 유명한 생물학자들입니다. 1959년 화학과를 졸업한 나는 이듬해 철학과 3학년에 학사편입한 뒤 한국과학사학회와 한국휴머니스트회 두 학회의 창립 회원이자 간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영국휴머니스트회 회장 헉슬리, 합리주의출판회 회장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과 교류하게 되었고, 헉슬리의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니덤은 1974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과학사회의에서 만났습니다. 1952년 북한과 중국이 제기한 세균전을 조사하는 국제 과학조사위원으로 평양에 간 적이 있던 니덤은 중국과학사학자로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이후 30년 동안 니덤과 나는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유네스코에 한국이 가입한 것이 1950년이고, 한국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이 1954년이지요. 당시 교육이나 문화 쪽에 비해 과학 분야 활동이 잘 보이지 않던 때였는데, 이 셋을 연결시킨 것이 유네스코였습니다. 80년대에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발간한 영문 학술지 『코리아 저널』(Korea Journal)에 과학사 분야의 글을 두 번 투고했고, 1989년부터 5년 동안 편집자문위원을 했습니다. 유네스코 본부에서 발간한 Impact of Science on Society의 한글판인 『과학과 사회』도 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죠. 1981년에는 유네스코에서 ‘현대사회와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했어요. 거기에서 내가 ‘과학과 사회에 관한 해외 연구의 배경과 현황’이라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것이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 한국에 소개되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이어서 ‘중·고등학교 과학교육에 과학과 사회를 도입하는 방안’이라는 프로젝트를 맡아서 연구를 했습니다. 1995년에는 베이징에서 중국, 일본, 한국이 참여한 동아시아생명윤리학회(East Asian Association of Bioethics)가 발족했습니다. 윤리학 전공이 아닌 내가 홀로 참석하게 되어 1998년에는 한국생명윤리학회가 태어났고, 이후 동아시아생명윤리학회는 아시아생명윤리학회(Asian Bioethics Association)로 발전했습니다. 1998년에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mission Mondial d’Éthique des Connaissances Scientifiques et des Technologies, COMEST)가 출발했습니다. 2004년에 내가 한국에서는 첫 번째로 위원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부위원장이 되었습니다.
― 과학 분야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과학기술윤리의 중요성도 날로 커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MEST에서 하신 일을 듣고 싶어요.
유네스코에서는 국제생명윤리위원회(International Bioethics Committee, IBC)가 먼저 만들어졌고, 그 다음에 나온 COMEST는 생명윤리 이외의 과학기술윤리 전반을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명윤리위원회에 견주어 중요도도 조금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졌고, 위원 수나 예산도 절반이었습니다. IBC는 ‘생명윤리와 인권보편선언’ 등 중요한 선언을 여럿 발표했지만 COMEST는 별로 중요한 성과를 못 냈어요. COMEST의 관심은 정보기술윤리에서 시작해 담수윤리, 외계윤리, 핵기술윤리, 나노윤리, 기후변화윤리까지 다양했습니다. 위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나는 아프레시안(Ruben Apressian, 러시아), 하팅(Johan Hattingh, 남아연방) 위원과 함께 환경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Environmental Ethics and International Policy(2006)이 발간됐습니다. 또한 과학기술윤리강령 제정에도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어요. 당시 부시 정부 때 미국의 COMEST 위원은 지구 온난화를 부인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었어요. 미국은 이제 더 이상 표준 설정(standard setting)을 하지 말자고 했어요. 마츠우라(Koichiro Matsuura) 사무총장은 일본 출신이라 미국의 뜻을 무시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사무국에서 고민을 하다가 1974년 유네스코에서 과학 연구자들이 지켜야 할 규정을 만들어 놓은 것을 기초로 이를 선언으로 발전시켜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내가 그것을 읽고 신랄한 배경논문(Song Sang-yong, “Reflections on the UNESCO Recommendation of 1974,” 2006)을 썼습니다. 1930년대의 낡은 과학관을 반영해 만든 1974년의 유네스코 권고는 너무 고칠 것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이 배경논문을 가지고 뉴델리, 방콕, 서울, 벨로 오리손치에서 자문회의를 한 결과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결론이 났어요. 자문회의를 아랍지역, 아프리카 쪽으로 확대해 윤리강령으로 발전시키려고 하다가 내 임기가 끝난 것입니다. 그 이후 상황을 알지 못하다가 최근 구글을 통해 검색해 보니 2017년에 유네스코 권고의 수정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편 한국에서도 과학기술자 윤리강령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2002년에 내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과학기술인 헌장 제정에 관한 연구’ 라는 프로젝트를 맡아 보고서를 냈습니다. 과학기술자 윤리강령 시안을 만들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과총)이 공동으로 과학기술자 윤리강령을 만들자고 과학기술부에 제안했어요. 그런데 과기부에서 그것을 과총에 맡겼어요. 과총은 인사치레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한림원을 협력 기관으로 집어 넣었지만 실제로는 단독으로 연구윤리강령 비슷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과학기술자 윤리강령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윤리적인 성찰을 중심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난 2020년은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이 되던 해였는데, 그간 유네스코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네스코가 태어난 해가 1946년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유네스코에 가입한 것이 1950년 6월 11일이에요. 6·25 전쟁이 일어나기 2주일 전에 유네스코 회원이 되었지요. 우리는 분단국이어서 유엔에 가입을 못했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유엔을 대신해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전 세계에서 국가위원회가 한국처럼 규모가 크고, 사업을 많이 하는 곳이 없을 겁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1954년에 만들어진 이후에 상당히 중요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에 잿더미에서 출발해서, 정말 아무것도 없는 형편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때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단계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한국의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과학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생물다양성 같은 새로운 주제를 열어 주고, 미생물학과, 해양학과를 만드는 기초를 닦아 주기도 하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연결하는 간학문적인(interdisciplinary) 활동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7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이 경제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올라갔고, 교육·과학·문화 분야에서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유네스코가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활동이 더욱 창조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송상용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철학과를 거쳐 미국 인디애너대에서 과학사·과학철학을 공부했고 성균관대(조교수), 한림대(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객원교수), 한양대(석좌교수) 등에서 가르쳤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위원을 맡았으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자연과학분과위원장, 인문사회과학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림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과학청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