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향후 50년을 위한 대담 시리즈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채택 5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 및 회원국 국가위원회가 세계유산의 의미와 향후 비전을 생각해 보는 다양한 기념 행사를 마련한 가운데, 세계유산위원회는 전 세계 석학 50명을 대상으로 세계유산의 향후 50년을 전망하고 이를 준비해 보는 대담 시리즈를 마련해 홈페이지에 공개한 바 있다. 그중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류의 건강과 세계유산의 의미를 살펴본 아디 우타리니(Adi Unarini)와 프랭크 스노든(Frank Snowden) 교수의 대담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대담자
– 아디 우타리니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 공중보건학 교수
– 프랭크 스노든 예일대 역사 및 약학사 석좌교수
프랭크 스노든 교수(이하 스노든) — 먼저 문화와 건강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서 우리 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웰빙 간의 밀접한 관계를 절감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디 우타리니 교수(이하 우타리니) — 코로나19가 두 가지 측면에서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드는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이번처럼 잘 드러난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위기가 생기든 사람들은 함께 머리를 맞댐으로써 금새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냈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비록 초창기에 바이러스가 함께 모이려고 하는 우리의 문화적 본능을 억눌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창의성과 사회·문화적 연대가 우리의 안전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동시에 지키도록 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신 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이번 팬데믹이 문화유산에 미친 영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스노든 — 팬데믹과 문화유산을 생각할 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역사상 일어났던 모든 팬데믹이 문화적으로, 또 유산의 측면에서 비슷한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독감은 엄청난 수의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문화·예술적인 측면에서 그리 큰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록이나 문학작품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와 반대로 흑사병과 콜레라는 종교와 예술,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요. 심지어 유럽 여러 도시 건축에도 영향을 줘서 파리나 나폴리 같은 도시는 아예 전체가 새로 만들어지다시피 했을 정도죠. 이 두 극단적인 사례들은 유네스코와 세계유산 프로그램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할 실마리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지요. 이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견뎌낸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두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겠고, 백신 개발 과정을 비롯한 과학의 역할에 대한 전시나 회의를 개최할 수도 있습니다. 문화는 일반 대중의 과학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도구를 제공합니다. 저는 유네스코가 우리의 이 모든 경험을 보전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번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타리니 — 문화 간 접근법의 중요성도 이번 팬데믹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점 아닐까요?
스노든 — 정말 그렇습니다. 이번 경험이 가르쳐준 학제성의 의미를 강조해 주셔서 기쁩니다. 팬데믹은 과학적이고 의학적이고 공중보건적인 이슈였지만, 이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어휘와 상상력을 제공해 준 것은 인류학자와 예술가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육체적 건강만큼이나 정신적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우리의 오랜 유산을 뒷받침합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바로 불안이나 우울 같은 정신적 문제였으니까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했던 일들에 관한 기억은 우리가 결코 무기력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네스코가 과학자와 역사가, 예술가, 인류학자, 환경주의자들을 모두 아우르는 학제적 협업과 대화를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타리니 — 그러한 접근이 반드시, 그리고 긴급히 필요하다는 점이 이번에 많은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산과 건강 간의 밀접한 관계가 이번만큼 잘 드러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교육과 연구의 측면에서 특히 이를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유네스코가 여러 분야의 연구자를 모아 교육의 강화로 이어지는 전략적인 연구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노든 — (유산과 건강의 측면에서 볼 때) 유네스코와 세계보건기구(WHO) 간의 차이(이견)를 좁히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필요할까요? 일단 유용한 대화의 창이 필요할 수 있겠는데, 마침 WHO 사무총장도 팬데믹 관련 허위정보와 그 악영향에 관한 우려를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이러한 사례가 과학의 가시성을 높이고 우리 모두가 이 위기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우타리니 —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공중보건과 유산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긴밀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왜나하면 문화와 유산이야말로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만드는 것이기에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이슈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네스코와 WHO가 다양한 측면에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노든 — 팬데믹은 실로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문제를 노출시켰고, 따라서 그 해결책도 다양한 측면에서 모색해야 함을 이번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각각의 전문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생각과 혁신에 관한 아이디어를 모은다는 측면에서 유산과 건강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이러한 대화가 또 다른 팬데믹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