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023년 5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조선 후기 민중 속에서 싹튼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갈망이 빚어낸 저항이자, 나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185건(13,132면)의 기록물을 말한다. 2010년에 설립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신순철)은 2015년 6월 2일 각계의 전문가와 유족 등 관계자를 포함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추진 작업을 시작했고 그 실무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가 맡았다. 학술대회와 추진위원회 전체회의, 학술연구분과회의를 개최하며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범위와 대상을 선정한 위원회는 2015년에 문화재청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특별전시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사적 가치를 부각하는 작업을 지속한 뒤 2017년 6월에 다시 문화재청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고, 이번에는 등재 추진 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유네스코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세계기록유산 제도 개선 작업을 진행하면서 신규 등재가 중단돼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했고, 올 5월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됐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에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동학농민군의 임명장과 회고록 등 동학농민군 기록, 동학농민군 진압에 가담한 관료 및 진압군의 공문서와 보고서 등 조선 정부 기록, 민간인의 문집 및 일기 등 민간 진압 기록, 개인이 동학농민혁명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내용을 기록한 개인 견문 기록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종이 매체(일부 사진 포함)로서 주로 전통 한지에 기록한 문서 및 책자(공문서, 재판기록, 일기, 문집, 회고록, 임명장)이며,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을 비롯하여 고려대 도서관, 국가기록원,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천도교 중앙총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 11개 기관이 소장·관리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은 ‘집강소’라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제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고자 했는데 , 이러한 형태의 거버넌스는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이기도 했다. 19세기 당시까지 세계 어디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는 없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이 번영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민족주의·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세계사적으로도 동학농민혁명은 중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청일전쟁이 촉발되고 여기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오랜 동아시아 질서가 해체됐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어떻게 민중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보편적 가치, 즉 평등, 자유, 인권, 정의의 방향으로 전진시켜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저장소로서 그 가치와 의미가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는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이다. 이를 위해 기념재단은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아카이브 구축, 등재기록물 특별전시, 등재기록물 해제집 발간, 국제학술대회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저 반란이나 민란이 아닌,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 민중들의 고귀한 정신과 노력의 산물로서 동학농민혁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