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간으로서 남긴 흔적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 주변의 환경을 계속해서 바꾸고 있다. 우리에게 지구 전체를 바꿀 막강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까. 유네스코『꾸리에』2018년 4-6월호가 ‘인류세’(Anthropocene)를 주제로 던진 도발적이고도 지적인 질문들을 소개한다.
지구와 인류의 역사
지구의 역사를 나타내는 지질시대 구분법에 따르면, 『유네스코뉴스』 9월 호를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현생누대(顯生累代, Phanerozoic eon) 신생대(新 生代, Cenozoicera) 제4기(第四紀, Quaternary period)의 홀로세(Holocene epoch)에 살고 있다. ‘공룡의 시대’였던 중생대가 약 1억 8000만 년, 그 이전인 고생대가 약 3억 3000만 년간 지속됐던 것과 비교할 때, 66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신생대는 상대적으로 젊은 시대다. 신생대 안에서도 현재의 홀로세가 속한 제4기는 258만 년 전에 시작됐다. 그리고 257만 년 간 지속된 제4기가 마지막 빙하기와 함께 끝난 1만 년 전에 와서야, 비로소 인류가 지구의 역사에 발자국을 남기기 시작한 홀로세(그리스어로 ‘완전 또는 가장’을 뜻하는 holos와 최근을 뜻하는 kainos의 합성어)가 시작됐다. ‘가장 최근’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에 걸맞게, 우리가 인류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지난 1만 년의 시간은 45억 년의 지구 나이에 비하면 ‘시작’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하리만큼 짧은 것이다.
방사능, 플라스틱, 그리고 닭 뼈의 시대
그런데 2000년대 초부터 몇몇 학자들은 지구가 이미 홀로세에 이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질시대는 지층에 남겨진 흔적을 기준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비록 지질학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할지라도 인류가 그간 지구에 남긴 흔적이 다른 지질시대와 뚜렷이 구분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고 이질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1945년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과 투하 이후 전 세계로 퍼진 방사성 동위원소는 앞으로 약 10만 년간 서서히 붕괴하며 지구 전역의 퇴적층에 남는다. 석탄과 석유가 연소하면서 생긴 검댕 역시 히말라야의 산꼭대기부터 그린란드의 빙하 아래에서까지 일관되게 발견되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온 온실가스 농도는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이들은 모두 자연 상태에서 쌓일수 없는 인류 고유의 표식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고 버려지며 지구의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도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지층에 남는 인류 고유의 화석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합성물질에 ‘기술화석’(technofossil)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심지어 지구 전역에서 매년 약 600 억 마리가 소비되며 땅속에 쌓여가고 있는 닭 뼈까지 새 지질시대의 뚜렷한 화석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과학자도 많다.
이에 2002년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 교수는 홀로세의 뒤를 잇는 새로운 시대(epoch)를 ‘인간’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인류세’(Anthropocene)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2009년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wicz) 영국 레스터대 지질학 교수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인류세 워킹 그룹’을 출범시켜 공식적인 연구와 논의를 시작했고, 2016년에 그 결과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학회를 앞두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질 연대 구분을 결정하는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ICS)와 국제지질학연합(International Union of Geological Sciences, IUGS)은 아직까지 인류세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수의 층서학자들은 불과 1만 년 만에 홀로세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명명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에 여전히 조심스럽다. 인류세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가장 뚜렷한 증거로 내세운, 대기 중 방사능 낙진이 붕괴하여 사라지기까지의 10만 년이라는 시간 역시, 지질학적 개념에서는 새시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더욱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한 증거가 쌓인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 측 일각에서는 인류세 논의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인 주장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들은 인류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지질학적 경계를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한 지구의 파괴를 강조하려는 환경주의자들의 정치적 주장을 대변할 뿐이 라고 평가절하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일까
이러한 논의에 뛰어들어 찬성 혹은 반대를 표하는 것과 별개로, 급격한 환경 변화와 위기를 맞은 지금의 시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인류세가 과연 적절한 명칭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안드 레아스 말름(Andreas Malm) 스웨덴 룬트대 인간 환경학 교수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말름 교수는 인류세라는 이름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서사’(flawed narrative)를 전파한다고 주장하며, “서구 중심 시각에서 다듬어진 이 담론이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그간 대부분의 오염 물질을 배출하면서 부를 독점한 선진국 자본주의자들이 아니라) 인류 전체로 돌림으로써 현실을 왜곡한다”고 통렬히 비난한다. 지구에 좋지 못한 변화를 초래한 증거들을 뭉뚱그려 ‘인류의 흔적’이라 부르는 것은, 그러한 흔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일부 사람들의 죄를 인류 전체에 전가하는 일종의 ‘물타기’라는 뜻이다.
말름 교수는 “세계 최고 부자 8인의 재산이 인류의 가난한 절반이 가진 재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는 옥스팜의 2017년 통계치를 제시하며, 부의 축적이 에너지 소비 및 탄소 배출량과 상관관계가 있었던 자본주의의 지난 역사를 무시한 채 기후 변화의 책임을 우리 모두에게 지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묻는다. 또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슈퍼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은 도미니카의 불쌍한 주민과 같은 수억 명의 최빈국 사람들은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소위 인류세라 불릴 만한 생활을 누려본 적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이유로 말름 교수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호모 사피엔스 종 전체의 문제로 만드는 인류세라는 용어 대신,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할 주체를 명시한 ‘자본세’(Capitalocene)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말름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는 ‘모든 사람이 비난 받아야 한다면, 아무도 비난받지 않게 된다’라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 있다. 기후 변화를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지구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인류의 활동에 따른 여파를, 그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 말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해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된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둘러싼 논란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2017년에 조약 당사국인 미국이 “인류 전체가 나눠 져야 할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미국에만 불리하다”는 이유로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담은 최초의 조약은 시작부터 절름발이가 된 상태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할 때
과학계 내부의 논쟁에 정치적 관점과 계급 투쟁까지 덧씌워지면서, 인류세는 단순히 지질시대를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인류세 논의를 그저 학자들 간의 권위를 둘러싼 ‘기싸움’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비록 일반인의 관점에서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는 당장 일상과는 동떨어져 보일지라도,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 대신 그 이면의 ‘현상’에 주목한다면 우리가 인류의 일원으로서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은 한둘이 아니다. 인류의 손에 의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고 있고, 지구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만은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에 디페시 차크라바티(Dipesh Chakrabarty) 시카고대 역사학 교수는 “(지구의 변화를 둘러싼) 인류학적 논의 자체가 ‘인간의 역사’와 ‘자연사’를 분리해서 다뤄 온 그간의 관점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전체 자연의 모습을 바꿔놓을 수 있는 ‘지질학적 힘’(geological force)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류세 논의를 통해 비로소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질학적 힘이란 빙하기나 대규모 운석 충돌 같은 막강한 힘이자, 지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실질적 위협이다. 그 정도의 힘이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그 힘을 마구 휘두르고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미래를 위한 행동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차크라바티 교수는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제작 및 사용 과정에 탄소를 배출하는) 차를 타지 말거나 스마트폰을 쓰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 면서도, “지금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과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 사이에 커다란 모순이 있다는 점만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인류가 앞으로 수십 수백만 년 더 존속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인류는 지금의 우리 시대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20세기 들어 지구상에서 멸종된 생물 종의 수가 기존 추세보다 100배나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공룡의 멸종을 초래한 ‘5차 대멸종’의 뒤를 이은 ‘6차 대멸종 시대’라는 이름을 지금 시대에 붙여도 우리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를 재촉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신생대가 시작된 6600만 년 전 이후로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는 사실을 들어 지금 시대를 ‘탄소의 시대’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2mm 두께로 지구와 똑같은 크기의 복제 행성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콘크리트로 지구를 덮은 우리는 ‘콘크리트 시대’ 의 주인일 수도 있으며, 지구 전체를 감쌀 수 있는 랩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쏟아낸 우리는 어쩌면 ‘플라스틱 시대’의 증인이 될지 모른다.
이 많은 가능성 중에, 더 긍정적이며 희망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이름이 붙을 여지는 과연 없는 것일까. 인류가 지난 1만 년간 쌓아 올린 이 모든 성취에 부끄러운 이름표가 붙지 않도록, 우리가 지금 무엇이든 시작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편집국장
*참고자료
theConversation.com “Introducing the Terrifying Mathematics of the Anthropocene”
theGuardian.com “The Anthropocene Epoch:
Scientists Declare Dawn of Human-Influenced Age”, “How the Domestic Chicken Rose to Define the Anthropocene”
jacobinmag.com “The Anthropocene My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