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부석사 불상 사건과 문화재 환수 문제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단이 일본 쓰시마의 가이진(海神) 신사와 간논지(觀音寺) 사찰에서 통일신라시대 동조여래입상과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금새 붙잡혔지만, 왜구가 약탈해 갔을 가능성이 큰 고려 좌상의 반환 문제를 두고 불거진 논란은 아직 진행중입니다. 이 기구한 불상의 여정은 과연 어디서 끝나게 될까요?
2013년 1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들을 일본에서 훔쳐온 절도단이 3개월 만에 붙잡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본격적인 논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절도단이 훔쳐온 불상 중 고려 좌상 안에서 1330년 서주(지금의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되었다는 결연문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1352-1381년 사이 왜구가 서주 일대를 5차례 침략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볼 때, 불상은 그 시기에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서산 부석사는 2016년 이 불상에 대한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1심은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1일, 2심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뒤집고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고 결정했습니다. 부석사 측이 바로 상고장을 제출함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나기까지 불상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 수장고에서 그 운명의 날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불상의 제작 이력이 분명하고, 여러 정황적 증거를 토대로 왜구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의 소유권을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일본 학자 기쿠다케 준이치(菊竹淳一)가 쓴 『쓰시마의 미술』(1978)을 보면, 왜구였던 고노가 조선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뒤 1526년 돌아와 간논지 사찰을 창건했고, 고노의 ‘일방적인 청구’(약탈)로 고려 불상이 온 것으로 추측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점은 2심에서도 인정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먼저 부석사가 당시의 부석사와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일본 사찰이 약탈에 대해 모른 채 취득시효(20년)를 넘겨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불교계가 한국 불교의 역사상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 절도단의 행위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애초에 왜구가 불법적으로 가져간 것도 정당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불법은 맞고(또는 묻고 따지지도 못하고!) 지금의 불법만 틀린 것일까요?
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화재 환수 문제
문화재 환수와 관련된 국제협약으로는 1970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이하 ‘1970년 협약’)」과 1995년「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유니드로와 협약(이하 ‘1995년 협약’)」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1970년 협약 당사국이지만 1995년 협약에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불상은 나가사키현 지정문화재이므로 1970년 협약에 따라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2심 재판부는 일본 사찰의 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1995년 협약을 언급하며 불법 반출된 문화재는 기원국에 반환되어야 한다는 국제법의 취지를 강조했습니다(사실 1970년 협약의 취지도 같습니다). 비록 수백 년 전까지 소급하여 법을 적용할 수는 없지만, 국제법의 취지를 고려한 반환 논의의 필요성을 열어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프랑스와 독일 등을 중심으로 과거 식민지로부터 반출한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돌려주는 움직임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프랑스는 130년 전 약탈한 서아프리카 베냉의 문화재 26점을 반환했고, 독일도 2022년부터 지금까지 수백 점의 문화재를 나이지리아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 돌려주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의 자발적 움직임도 활발해졌고, 소유권 이전이 까다로운 경우에는 장기 임대 등의 형식을 취한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문화재 환수 문제 해결 방식은 꼭 법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훨씬 더 과거에서도 혜안은 찾을 수 있습니다. 17세기에 제작된 일본 시나가와 시의 혼센지(品川寺) 사찰의 종이 19세기 화재 시 사라졌다가 20세기 초 스위스 제네바의 한 공원에서 발견됐고, 제네바 시는 일본의 요청에 따라 이 종을 되돌려주었습니다. 그 취지를 기념하여 혼센지는 종의 복제품을 만들어 제네바 시에 선물하고, 두 도시 간에는 우호협정도 체결되었습니다. 사실 쓰시마섬은 1980년 이래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 축제(이즈하라항 축제)도 개최하고 있을 만큼 한국과 많은 역사를 함께한 이웃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문화재 환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보다 유연한 사고와 대화의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지현 국제협력팀장, 건국대 세계유산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