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차 문화다양성협약 정부간위원회
제14차 문화다양성협약 정부간위원회가 2월 1일부터 5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코로나19로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오간 이번 회의 내용을 전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문화예술계는 ‘혼파망’(혼돈, 파괴, 망각을 줄여 만든 인터넷 신조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극장, 도서관과 전시장이 문을 닫았고 각종 축제가 취소되었으며, 관객과의 소통을 매개로 활동을 하던 예술가들은 비대면이라는 생소한 환경에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내던져졌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88%가 넘는 예술가들이 소득 감소를 겪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현금 보유량이 적은 문화분야의 중소기업들은 도산의 위기에 빠졌다. 대안으로 제기되는 온라인 활동은 보완적인 역할을 넘어 현 상황의 궁극적인 타개책이 될 수는 없다.
문화다양성협약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화 상품과 서비스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한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를 구현하기 위한 국제적인 약속이다. 이 협약 이행을 위한 회원국들의 노력을 모니터링하며 관련 논의와 정책을 검토하는 정부간위원회는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산업 생태계가 전례없는 위기와 변화를 맞이한 엄중한 상황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올해로 14번째를 맞이하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 정부간위원회는 2월 1일부터 2월 5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며, 특히 올해 정부간위원회는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의 박양우 장관이 의장을 맡음으로써 대한민국의 역할과 위상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정부간위원회 첫날 개최된 ‘국제 창의경제의 해’ 기념식에서는 오드리 아줄레(Audrey Azoulay) 유네스코 사무총장, 볼칸 보즈키르(Volkan Bozkir) 제75차 유엔총회 의장, 이반 두케(Ivan Duque) 콜롬비아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이 영상으로 축사를 했다. 이들은 문화 부문이 고용 창출, 혁신, 사회 통합의 원동력이며, 특히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의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5일간 열린 회의에서 각국 정부대표단은 ▲4년에 한 번 제출하는 문화다양성협약 국가보고서 제출현황 공유 ▲국제문화다양성기금(International Fund for Cultural Diversity, IFCD) 운용 현황 및 향후 전략 수립 ▲디지털 환경에서의 문화다양성협약 이행을 위한 보조 프로그램 제안 ▲1980년 유네스코 예술가 지위에 관한 권고와 문화다양성협약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한 방안 등을 비롯해 모두 18개에 달하는 의제를 놓고 열띤 논의를 펼쳤다. 회원국들은 또한 국제문화다양성기금 운영, 문화분야 종사자들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진행한 레질리아트(ResiliArt) 토론회, 문화다양성 제고 정책 자료 수집 및 공유 등을 주도해 온 유네스코 사무국의 활동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소통과 국제적 연대 및 협력에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문화 분야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표현의 자유 등의 문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걸림돌이었다는 데 모든 회원국들이 동의했으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디지털을 매개로 한 문화 생산 및 소비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는 창작자들의 권리 보호 문제 등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및 증진을 위해 각국이 힘을 모아가는 한편,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시민사회단체들과의 협력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2008년부터 개발도상국의 문화산업분야 역량강화를 위한 신탁기금을 제공해 오는 등 그간 문화다양성협약의 이행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올해부터는 회원국들이 협약 이행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성한 기금인 국제문화다양성기금에도 기여하기로 결정했다. 의장을 맡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 열린 이번 정부간위원회를 통해 각국 정책 사례와 창의적인 의견을 청취할 수 있어 기쁘고, 개발도상국의 문화예술과 문화산업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대한민국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문화예술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직격탄을 맞은 한편,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가 크게 줄어든 소비자의 상당수도 우울과 불안 등의 피해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적 표현의 보호와 증진에 대한 노력과 경험을 전해 듣고, 문화다양성협약이 실제로 문화정책 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느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이번 정부간위원회를 통한 진솔한 의견 교류가 문화다양성협약의 보다 성숙한 국제적 이행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장자현 문화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