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유네스코 공공외교 현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주재관은 현지에서 업무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함께한 경험들을 써서 보내 오기도 하고, 인터뷰를 통해 직접 목소리를 전해 주기도 하고, 때론 직접 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번 호 주재관 서신이 바로 그런 케이스인데요. 주재관의 제안으로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공공외교가 이루어지는 각종 행사를 담당하는 방희경 서기관이 최근 치른 행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내 왔습니다.
유네스코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방희경 3등 서기관입니다. 대표부에서 공공외교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표부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공공외교 행사를 개최하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연말에 다음 해의 공공외교 계획을 수립하여 외교부 본부에 제출하고, 심사를 거쳐 예산을 배정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각 단계에서 챙겨야 할 세부적인 것들은 매우 많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행사 장소를 빌리는 것입니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파리에는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장소가 다양하지만, 대표부에서는 주로 유네스코 본부를 대관하여 행사를 개최합니다. 본부에는 회의장이나 사무실 외에도 공연이나 전시, 리셉션을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게 있는데, 원하는 기간에 대관하려면 보통 1년 전, 늦어도 9개월 쯤 전부터는 선점이 필요합니다. 많은 회원국에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 각 대표부가 대관할 수 있는 횟수(2년에 2회)와 기간(최대 2주)에 제한도 있고 대관료도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본부는 여러 가지 행사들로 늘 북적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는 행사들은 아무래도 서로 비교가 되기 마련이라 자연스레 ‘우리도 질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석자 다수가 각국 외교단,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국제공무원, 그리고 유네스코 관련 전문가라는 점도 행사 준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우리 대표부는 지난 9월에 청주고인쇄박물관과 공동으로 ‘직지와 한지(JIKJI and HANJI : Heritage of Printing and Paper in Korea)’ 전시를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했습니다. 청주시, 그리고 세계기록유산인 직지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이 함께 직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제작한 직지 복본을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아울러 직지가 인쇄된 한지에도 주목하여, 오랜 세월 다방면으로 사용된 한지의 특징을 조명하고 현대 한지 공예품을 소개함으로써 전통 종이인 한지가 오늘날 전승 및 재해석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개막식에서는 ‘한국의 장’을 활용한 한식 핑거푸드를 선보였고요. 우리나라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한지, 전통 지식과 기술(가칭)’을 등재하는 것을 향후 목표로 하는 만큼 장과 한지를 알려 조금이나마 등재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기획이었습니다. 행사 준비를 하면서 학창 시절에 ‘1377년’을 달달 외우기만 했던 직지, 그리고 그것을 7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간직해 온 한지의 우수성을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10월에는 각국의 주유네스코 대사 등을 초청하여 우리의 세계유산위원국 선거 지지를 요청하는 ‘한국 미식의 밤(Tastes of Korea : an evening to experience the gastronomic culture of Korea)’을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개최했습니다. 한국에서 요리사를 초청해 한식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면서, 한국 전통주, 프랑스 와인을 곁들여 음식 간 조화(마리아주)를 이루도록 구성한 행사였습니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파리에서도 한식은 꽤나 잘 알려져 있지만, 아직은 비빔밥, 김치, 불고기, 치킨 등이 위주인 것 같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파인 다이닝으로서 한식의 새 면모를 보여주고자 파리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탕평채, 잣죽, 온반 등을 선보였고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미식의 밤 행사는 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한 소규모 초청 행사인 만큼 특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의전, 특히 좌석 배치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남성보다 여성이, 대사의 경우 부임일 순으로 의전 서열이 우선이긴 하지만 정답은 없고, 결과적으로 말석에 앉게 되는 당사자는 의문이나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명 순으로 한다고 해도 영문을 기준으로 할지, 불문을 기준으로 할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자유석’이었어요^^; 대부분의 참석 인사들이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고, 오붓하고 친근한 분위기의 소규모 행사였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습니다. 다행히 참석자 대부분이 행사에 만족하신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행사에 참석한 유네스코 사무국의 한 직원은 저에게 ‘한국 대표부가 개최하는 행사는 늘 유익하고 멋있어서 기대된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럴 때 뿌듯하고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국제정치학에서 배웠던 연성 권력(soft power)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도 대표부에서 개최하는 행사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호감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연말이 다가오네요. 저는 다시 내년도 공공외교 계획을 천천히 세워봐야겠습니다.
방희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서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