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관이 만난 사람: 문화체육관광부 이혜림 과장
지난 2005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다양성을 보호하고 각국 문화 산업의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해 왔다고 평가받는다. 인류의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인 유네스코 사무국에 파견돼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문화체육관광부 이혜림 과장을 만나 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한 프랑스 내 통행 제한이 이제 풀렸는데, 먼저 지난 두 달여간 업무는 어떻게 처리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3월 중순 통행 제한이 내려진 이후 유네스코 사무국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분야 중 하나가 문화예술계인 만큼, 제가 일하고 있는 문화다양성협약 부서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바쁘게 업무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을 되새기고, 향후 각국의 코로나19 관련 지원 정책에 문화예술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수 있도록 정책 사례를 공유하는 한편, 저명 예술인과의 온라인 대담과 국가별 온라인 정책 세미나 등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한국은 유네스코와 어떻게 협력하고 있나요?
유네스코는 영화, 음악, 출판 등 문화산업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개발도상국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법제 수립을 권고·자문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신탁기금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문화산업분야 정책 수립 및 인력양성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파키스탄 문화산업 창업인력 육성, 르완다 문화산업 인재 양성, 우즈베키스탄 영화정책 자문과 워크숍 등을 마무리했고, 올해에는 중앙아시아 4개국 영화분야 협력과 아세안 공무원 초청 문화산업 정책 연수, 태국의 문화산업 분야 시민사회 협력, 인도네시아 예술의 자유 모니터링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예술인의 지위 보장을 위한 정책 연구, 코로나19 대응 관련 문화예술정책 모니터링 등에 한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올 가을에는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을 기념해 영화나 케이팝 등 한류 콘텐츠를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를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하기 위해 문체부 및 콘텐츠진흥원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문화다양성협약 정부간위원회의 차기 의장국입니다. 사무국에서 보는 한국의 활약상은 어떠한가요?
한국은 2010년에 문화다양성협약을 비준한 이후 문체부를 중심으로 유네스코 신탁기금과 인사교류를 적극 지원해 왔습니다. 또한 2017년에는 정부간위원회의 아태지역 대표 부의장국을 맡은 데 이어, 차기 의장국으로 선출되는 등 모범적인 리더십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사무국 근무를 시작한 작년 6월에는 마침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기생충’이 프랑스 전역에 개봉했고, 그 주말에는 그룹 ‘BTS’가 파리 월드컵 주경기장에서 이틀에 걸쳐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이에 유네스코 본부 직원들과의 대화나 업무 회의 중에도 한류가 자주 화제에 오를 정도로 문화다양성 분야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한류 붐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업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창작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 분야 전문가로서 유네스코 사무국에서 일하고 계신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문체부 근무 중이던 2011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채택을 추진하기 위해 이곳으로 출장을 왔었습니다. 당시 각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갈등이 표출되는 한편으로 문화를 통한 협력을 논의하는 다층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이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이곳에서 다양한 시차와 문화를 고려하며 개발도상국과 차근차근 사업을 진행하는 업무가 여전히 어렵기도 합니다. 아직도 많은 국가가 예술가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고,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 때문에 자국 영화산업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국제기구의 일원으로서 각국의 여건에 맞는 문화산업 정책기반을 조성하는 업무를 지원하는 한편, 틈틈히 한국의 문화정책 사례와 경험을 알리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로 한국의 유네스코 가입 70주년을 맞았습니다. 문화 분야에서 한국의 지난 활동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작년 가을 르완다 출장 중에 키갈리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아기상어’ 노래를 듣는 어린이와 한국영화를 다운받아 본다는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종파 간 대학살의 비극을 딛고 국가 발전을 모색하는 르완다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딛고 도약한 한국의 경제와 문화가 영감이자 희망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더 강조되면서, 지난 70년간 한국이 그려온 성장의 궤적은 많은 개발도상국에게 희망을 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한류의 세계적인 성공 또한 아프리카의 영화감독에서부터 남미의 청소년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희망을 북돋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국가가 자국의 언어와 문화로 된 콘텐츠를 창작하고 이를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도록, 한국이 유네스코와 함께 문화정책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지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