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학교 활동을 통한 경험과 변화
교사로서 유네스코학교의 활동들을 이끄는 것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 경험과 세계시민의식을 심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부터 유네스코학교 활동에 푹 빠져버린 한 교사의 성장기를 읽어보면, 유네스코학교 활동은 학생과 교사 모두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2008년 2월 15일,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고 학교에 인사차 갔을 때 학교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본 유네스코학교 국제교류 소식이 나와 유네스코학교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나는 당돌하게도 처음 뵙게 된 교장 선생님께 “유네스코학교를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 순간이 나의 교직생활과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삶의 목표를 정한 때가 아닌가 싶다. 유네스코학교는 유네스코의 이념을 전하고 행동하기 위한 학교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넘어 학교 교육과정 전체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점을 다 이해하고 활동을 펼치기엔 역량이 부족했고 어려웠다. 다행히 기존의 학교 교육과정, 다른 유네스코학교들의 교육 활동들을 경험하고 학습하면서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관심과 변화를 통해 유네스코학교 운영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한편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유네스코학교를 운영하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있지만 그 중 의미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가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주제로 학생들과 함께했던 레인보우 프로젝트(유네스코 청소년 평화 프로젝트의 전신) 활동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방과 후에 모여 논의를 하던 중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쌤(선생님)! 외국인들이 느끼는 한국 사람들의 차별에 대해 이태원에 가서 직접 인터뷰를 하면 안 되나요?”라고 말이다. 당시 초짜 교사였던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외부에 나가는 것도, 게다가 장소가 이태원이라는 점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청이 그럴듯하기도 하고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관리자의 허락 하에 어느 토요일 오후 학생들과 함께 이태원으로 나갔다. 능숙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길거리에 다니는 외국인들에게 눈을 맞추고 인터뷰에 응해달라며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반짝이는 눈동자와 진지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느껴진다. 4시간이 넘게 거리 인터뷰를 하면서 모은 자료들로 학생들은 보고서를 작성해 발표했다. 그 남다른 의미가 있는 보고서 발표를 지켜보며 ‘고놈들 대단하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사로서 학생들의 교육에 필요한 자세가 ‘행동과 인내와 기다림’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학교 레인보우 프로젝트 지도교사로 참석했을 때였다. 이전에 근무하던 중학교의 유네스코학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한 학생을 그곳에서 목격했다. 이전에는 늘 수줍어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3년 후 만난 그 학생은 과거와는 달리 전국의 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걔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 학생이 다가오더니 “선생님 저 OO입니다. 기억하세요? 선생님이랑 같이 활동했을 때 좋았었는데요. 그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저 막연히 ‘목표와 취지가 좋은 교육’이라 생각했던 유네스코학교 활동이, ‘정말로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었구나!’라는 실질적인 보람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겪은 나 자신의 변화와 성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타인을 설득시키기보다는 그냥 내가 하는 것을 묵묵히 하는 게 편한 사람이었다. 그다지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적당하게 ‘직장인’으로서의 교사를 생각했다. 그런데 유네스코학교와의 만남은 나를 변화시켰고,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이제 나는 교무실에서도 선생님들에게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행동하자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유네스코학교로서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아마도 유네스코학교 활동을 하면서 유네스코의 이념을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생긴 변화이자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유네스코학교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 어디서나 유네스코의 생각과 이념을 자신있게 말하고, 전파할 수 있다.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씩 알아가는 교사,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유네스코학교의 교사로서 계속 남고 싶다. 끝으로 유네스코학교에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교육 소외 지역에서의 유네스코학교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유네스코학교에 대한 지속적인 홍보도 필요하겠지만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적극적인 발굴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환경은 학생들의 삶과 경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교육 소외지역에서 유네스코학교가 제공하는 교육 활동은 학생들의 삶의 시야를 훨씬 넓혀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학생들의 삶에 반영되어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의 평화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다영
시흥매화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