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 ‘토착 언어의 지속가능한 발전’
유네스코‐겨레말큰사전 국제학술포럼 ‘토착 언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열었다. 이번 포럼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세계 토착어 보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한편, 남북 언어를 집대성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있듯, 언어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루는 역사와 기억, 세상을 보는 관점과 삶의 흔적이 담겨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7천여 개의 언어 중 3분의 1이 넘는 2600여 개의 토착언어가 소멸 위기에 놓여있다는 현실은, 그만큼 다채롭고 풍부한 인류의 문화와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유산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있는 한반도의 우리에게 ‘언어’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같은 언어에서 출발했지만 오랜 세월 단절된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발전해 온 남과 북의 말과 글은 점점 그 차이가 도드라지고 있고, 그러한 차이에 대한 무지는 상대방을 더욱 낯설고 멀게 느끼게 하며 뜻하지 않은 오해와 불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오드리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협력의 일환으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에 대한 유네스코의 관심과 지원을 논의한 이후 그 후속사업으로 열린 이번 포럼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프라인 현장에 모인 국내 연사와 패널을 화상으로 해외 연사들과 연결해 유튜브 ‘겨레말TV’ 채널로 생중계된 이번 포럼의 개회식에서는 염무웅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의 개회사,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환영사에 이어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김동기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대사의 축사가 있었다. 특히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 ‘겨레말큰사전’ 사업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하며 남북한 교류협력을 통한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의지를 밝힌 이인영 장관의 메시지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첫날 진행된 제1세션 ‘토착 언어의 보전’에서 기조강연을 한 아일리 케스키탈로 세계 토착어의 해 운영위원회 공동의장은 토착언어의 보전과 소수 언어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019년 세계 토착어의 해에 이어 다가오는 ‘세계 토착어 10년’(International Decade of Indigenous Languages; 2022-2032)을 통해 토착어 이슈를 의제화하고 국제사회가 함께 그 실마리를 풀어나갈 것을 기대했다. 뒤이어 만다나 사이페디니푸 소아스 런던대학교 멸종위기어 기록 프로그램 원장은 사라져가는 토착어의 현황과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언어의 역할과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했으며, 유네스코 본부의 야코 드 투아 보편적 정보 접근 섹션 과장은 세계언어지도 및 세계언어보고서 발간 사업과 다언어사용 증진을 위한 관련 권고 등 토착어 보전과 언어다양성 증진을 위한 유네스코의 노력을 소개했다. 한편, 종합토론에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정도상 부이사장은 세계 각지의 토착어로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2021 토착어로 문학하기’ 시범사업을 제안하면서, 기존 언어의 기록과 채집을 넘어 창작을 통해 지속가능한 토착어의 보존과 계승을 도모하고자 하는 기획의도와 함께 이 프로젝트의 결과를 다음 포럼에서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토착어의 채집과 기록’이라는 주제로 이튿날 열린 제2세션은 ‘소수자 언어와 분단언어의 개선’을 주제로 한 홍종선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장의 기조 강연으로 문을 열었다. 뒤이어 겨레말큰사전 남측편찬위원 유현경 연세대 교수는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경과를 소개하고 남북의 언어가 갖는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통합’ 사전이자 ‘과정형’ 사전으로서 겨레말큰사전의 특징과 의의를 짚었다. 알브레히트 후베 본 대학교 명예교수는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지역어의 실태를 소개하며 분단언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했고, 브리티시콜롬비아대 로스 킹 교수는 ‘콘코디아 언어 마을’ 사례를 통해 소수언어의 유지와 보전을 위한 방법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며, 변영수 겨레말큰사전 편찬3부장은 겨레말큰사전 편찬 과정에서 카자흐스탄 지역 해외 교민의 한국어 조사와 채집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세계 토착어 10년을 앞두고 열린 이번 포럼은 언어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제 논의와 더불어 남북간 상호이해의 초석을 닦는 겨레말큰사전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지속가능발전과 평화와 포용을 위한 언어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쉽게도 이번에 함께할 수 없었던 북한의 언어학자들과도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머지않아 오기를 기대하며, 언어를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평화의 방벽을 세우기 위한’ 논의와 노력들이 풍성한 결실을 맺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장지원 커뮤니케이션팀 선임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