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글로벌 청년 포럼: 전문가에게 듣는다 ➊
올해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6·25전쟁(1950-53)을 끝내기 위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2022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2661달러를 넘어선 사회의 일상에서 73년 전에 발발한 전쟁의 흔적이나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비무장지대(DMZ)를 찾지 않는 한 전쟁이나 분단을 직접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우리 청년들이 전쟁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6·25 전쟁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자 참상이지만, 각국의 입장에 따라 같은 전쟁이라도 기억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예컨대 중국은 6·25전쟁을 미국을 상대해 조선을 도왔다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으로 부르며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던 2020년 10월 23일에는 그 7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부르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오늘의 경쟁으로 소환되고, 참화가 아닌 승리로 기억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현충일과 6·25전쟁 발발일에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와 기념의 행사가 열리며, 미국에서 6·25전쟁은 베트남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어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편으로 전쟁은 세대 간에도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국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베트남전은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베트남전에 대한 세대별 기억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트남전을 직접 겪은 58-65세의 미국인은 젊은 세대들에 비해 최근의 이라크 전쟁을 포함한 갈등 자체에 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 중장년층은 비록 군사적 충돌에는 반대했지만 미국의 국익을 중시하며 초강대국으로서 글로벌 문제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보았고, 국가를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군사력으로 평화를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이와 달리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을 간접적으로만 인지한 젊은 세대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미국 중심주의보다는 유엔이나 국제기구에 더 우호적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국제협력을 선호했다. 또한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견에 다소 유보적이며, 국제정치보다는 국내문제에 더 집중하는 것을 선호했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미국 중장년층과 청년층 간의 인식 차이를 그저 ‘비둘기파’와 ‘매파’로 단순하게 구분 짓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는 학업과 취업, 육아와 사회참여라는 서로 다른 생애 과제를 직면하고 있는 세대 간에 나타나는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이나 군사 갈등과 관련한 태도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전쟁을 직접 경험했고 관련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 경험에 따라 기성세대는 적극적인 현실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젊은층은 주로 간접적 정보와 지식에 근거해 유보적이면서도 이상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세대 차이를 정치적 차이로 본질화 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을 통해 이상을 현실화한 경험을 전수하고 정책 참여의 폭을 늘려가는 것이 아닐까?
6·25전쟁에 대한 기억은 냉전 진영에 따라 여전히 서로 다르게 기념되고 있고, 베트남전에 대한 기억은 세대에 따라 다른 경험과 태도를 만들어 냈다면, 유럽의 2차대전에 대한 경험은 또 다른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 낸 사례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중심가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공원에 가면 느낄 수 있듯, 독일은 ‘배제적 민족주의의 팽창’의 산물인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철저히 반성하고 이웃 국가인 프랑스와의 화해 노력을 통해 협력적 파트너십을 형성함으로써 냉전으로 인한 긴장과 분단 상황을 넘어 마침내 독일 통일과 유럽의 통합을 이루었다. 독일의 자기 반성이 오랜 경쟁 관계에 있던 프랑스와의 협력관계를 이끌어냈고, 독일과 프랑스의 유럽 데탕트 노력이 동·서 유럽의 화해협력을 이끌어 냈으며, 그렇게 더 큰 정당성과 역량을 갖게 된 통일 독일이 동·서 유럽의 통합을 추동함으로써 오늘날 유럽의 리더십과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패전국으로서 승전국들이 주도한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전쟁 범죄를 처벌받은 독일의 경우는 6·25전쟁이나 베트남전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에 동독과 갈등하며 프랑스와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한 서독, 1960-70년대 소련이나 동유럽과 긴장을 완화하려 했던 독일과 프랑스의 노력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있다. 바로 주변국을 우방국으로 만들어 협력을 얻고, 관계를 개선해 전쟁 발발 가능성을 줄이고, 지역 평화와 통일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노력을 통해 실제로 체제 차이를 넘어서 독일 통일과 유럽의 평화로운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그 모든 노력을 한국 혼자서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모두가 함께 한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다가오는 유네스코 글로벌 청년 포럼에는 워싱턴과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오타와, 시드니, 웰링턴, 마닐라, 앙카라 등지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16개 유엔 회원국들을 대표한 청년들이 참여한다. 베를린과 스톡홀름, 프라하, 바르샤바 등에서 의료지원국들의 청년들도 참여한다. 안으로는 남북 협력과 동아시아 평화를 경험한 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협력을 통해, 밖으로는 세계의 청년들과 함께 미래의 협력의 저변을 넓혀나가는 일이 지속된다면,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평화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힘이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김학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