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019년을 ‘세계 토착어의 해’로 정했다. 한 지역 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 곧 토착민(indigenous people)이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언어에 올 한 해 동안 더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90개 나라에 약 3억 7천만 명의 토착민이 있다. 지구 전체 인구의 5%인 이들은 세계 빈곤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그룹에 남다른 애정과 지지를 보내야 하는 이유는 그저 빈곤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필수적인 생태적 다양성을 지키고, 인류의 창조성과 가능성을 담고 있는 문화와 언어의 다양성을 지키는 열쇠를 바로 토착민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보고, 토착민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언어의 수는 7,097개로 집계된다. 하지만 전 세계 90%의 인구가 이 중 300개 언어만을 쓰고, 나머지 대부분은 소수 민족들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에서 쓰는 언어들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나무 한 그루에 사는 개미의 종(種) 수는 영국 땅 전체에 서식하는 개미의 종 수와 같다고 한다. 지구에는 열대우림 같이 생물 종의 수가 특히 풍부한 지역이 있는데, 5,000개 이상의 고유 식물군이 존재하는 곳을 ‘거대 다양성’(megadiversity) 지역이라고 한다. 이를 언어다양성 분포와 비교해 보면, 언어의 수가 가장 많은 10개 국가 중 8개 국가가 생물학적 거대 다양성 국가에 해당된다.
자연의 생물다양성은 인간의 언어다양성을 더 키우도록 돕는다. 다양한 언어들은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자연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기 위한 지식을 담아 후대에 전한다. 이렇듯 서로 깊이 관계하는 자연의 다양성과 언어의 다양성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바로 토착민이다.
다양성을 흔드는 토착민의 위기
에콰도르와 페루에는 구성원이 불과 200명 남짓한 사파라(Zápara)족이 남아 있다. 한때 200개 부족 3만 명이 넘었던 사파라족은 서구 열강이 몰고 온 전쟁, 전염병, 종교 탄압 때문에 거의 절멸에 가까운 위기를 겪었다. 생물다양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아마존의 자연환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풍부한 어휘, 특히 약용식물에 대한 의학 지식을 담은 사파라족의 전통 언어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사파라어를 온전히 구사하는 사람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자연과 소통하는 인류의 지식을 담은 언어의 소멸은 계속 진행 중이다. 현재 토착민들이 쓰는 언어 중 2,680개의 언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보존 혹은 개발의 이유로,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한 원치 않는 이주로 인해, 토착 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다.
유네스코와 토착민
유네스코는 올해 ‘세계 토착어의 해’를 이끌어 갈 책임 기구다. 유네스코는 각 전문 분야를 엮은 사업들을 통해 토착민들에게 꾸준한 정성을 기울여왔다. 자연 환경을 활용하고 극복하는 토착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연에 대한 지식 시리즈’(Knowledges of Nature Series), 토착민들의 지식을 모아 지구촌 환경 문제의 맞춤형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링크’(Local and Indigenous Knowledge Systems, LINK) 사업, 그리고 사라질 위험에 처한 언어의 상황을 보여주는「위험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토착민 이슈를 기구 전반에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유네스코 토착민 정책’ 문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2030 아젠다가 내건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Leave no one behind)라는 약속은 당연히 토착민들을 포함한다. 생물다양성부터 물 문제까지, 식량부터 기후변화까지, 교육부터 평등의 이슈까지, 지속가능발전목표는 토착민의 참여와 보호, 그리고 토착민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이 토착민 그룹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19년 한 해, 유네스코가 펼쳐갈 토착민 관련 활동들이 토착민들의 삶과 환경, 그리고 그들의 사라져 가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이선경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
주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파견하며, 외교업무수행, 유네스코와 대표부와 한국위원회간의 연락, 유네스코 활동의 조사, 연구, 정책개발 등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