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재정 위기 속에서도 유네스코는 정규예산의 37%를 교육 분야에 투여했다. 유네스코의 관점에서는, 세계가 빈곤을 타파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데 교육이 모든 개발 노력의 근간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인쇄된 ‘반기문 교과서’가 교육 입국의 사례를 증명하고 있다. 반면, 유네스코 사업의 가장 강력한 성공 사례는 여전히 1972년 협약에 근간한 세계유산이다. 195개 유네스코 회원국 중 190개국이 세계유산협약의 당사국이며, 금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되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세계유산 목록도 가히 1000건의 문턱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제협약 등 정부 간 협의기제를 통해 유네스코가 관리하는 등재 목록은 세계유산 981건, 무형유산 281건, 생물권보전지역 621건 등이며, 이와 함께 정부 간 협의기제 없이 전문가 평가에 의해 지정된 기록유산 301건, 창의도시 39건 등도 모두 유네스코의 브랜드를 부여받아 사실상 해당 분야의 ‘명예의 전당’에 위촉되는 영예를 향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카테고리 1기관 9건, 카테고리 2센터 98건, 국제상 20건, 명예대사 56건, 석좌교수 796건, 유니트윈 67건, 공식NGO 373건, 공식재단 24건, 협동학교 7600건 등 유네스코의 이름이 직간접적으로 부여되는 사업 및 네트워크는 모두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로 많다.
유네스코 공식 연계 기념일 행사 793건을 차치하고라도, 매년 지정되는 세계책수도, 세계재즈도시, 기관 간 상호 업무협정, 각국 유네스코국가위원회 행사, 회원국 정부 및 지자체 행사 후원까지 고려해 보면, 과연 유네스코의 ‘브랜드 파워’가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마침 지난달 제194차 집행이사회 수석대표 연설에서 매튜 서더스 영국 대사는 현재 유네스코 명칭 사용의 안일함이 도를 넘었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심지어 “후원의 힘을 과용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결국 언젠가는 전혀 힘이 없어질 지경에 이를 테니까”라고 일갈했다.
물론, 유네스코 등재 모델은 일부 사업의 목적을 성취하는 핵심 소프트웨어이며 다른 유엔 전문기구와 차별되는 성공의 비결이다. 특히 재정 위기의 시기에는 다양한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자원이 유네스코의 가시성을 유지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는 이미 목록과 명칭 제공자로서의 피로감이 역력하다. 예컨대, 세계지질공원의 유네스코 사업 공식화 이슈의 경우, 해당 논의가 수 년째 제자리에서 공전되고 있는 배경에는 물리적인 영토 갈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또 다른 유네스코 브랜드 목록 사업을 창안하는 데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독립외부평가(IEE)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전문기관의 권리에 집착하여 핵심경쟁력 투자에 실패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제 유네스코는 스스로의 과거 성공 모델을 쉽게 답습하기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유엔 체제의 일원으로서 존재가치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유네스코의 개입 여부를 놓고 표결에 부쳐진 우크라이나 사태나 중동 이슈는 오히려 유네스코 입장에서는 호재이다. 유네스코는 국제사회가 다루어야 할 이슈를 결정할 수 있으며 권능 분야에서 단호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연성(soft) 권력을 다루는 기관이라고 해서 약한(weak) 기관이 될 필요는 없다.
강상규 주 유네스코 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