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이면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2020년부터는 중국이 유네스코의 최대 의무분담금 공여국이 된다. 이런 중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의무분담금 외 추가로 제공하는 자발적 기여금 규모를 크게 늘려 왔다. 과연 한국은 어떤 비전과 중장기 목표를 지향하며 유네스코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을까?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올해 ‘한국의 유네스코 협력 비전’을 주제로 관련 전문가와 함께 정책연구를 수행했다. 유네스코 안팎의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짚어보고, 최근 유네스코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화’ 문제와 더불어 2011년 팔레스타인 가입 이후 지속되어온 재정난 등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유네스코 협력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연구 결과가 지난달 13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열린 ‘2018 유네스코 전략포럼’에서 발표되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외교부, 교육부와 함께 공동 개최한 이번 포럼에는 다양한 정부 부처 및 유네스코 카테고리2 센터, 석좌, 유니트윈 등 관련 기관, 학계, 일반시민 등 200여 명이 참가하여 한국의 유네스코 협력 비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회원국이 바라보는 유네스코
이번 포럼에는 나이지리아, 브라질, 러시아의 주유네스코 대표부 대사와 함께 유네스코 아제르바이잔 위원회 사무총장과 스웨덴 위원회 사무차장도 참석하여 자국의 유네스코에 대한 비전과 활동 전략을 공유했다. 마리암 카타굼(Mariam Y. Katagum) 주유네스코 나이지리아 대사는 ‘나이지리아-유네스코 협력 계획’을 수립하고 그 기초 위에서 역량강화 등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알렉산더 쿠즈네초프(Alexander Kuznetsov) 주유네스코 러시아 대사는 유네스코만이 할 수 있는 전문 분야인 교육, 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며 정치화를 지양하고 정부간기구로서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리아 에딜레우자 폰테넬레 레이스(Maria Edileuza Fontenele Reis) 주유네스코 브라질 대사는 유네스코가 정치화로 인해 분열되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21세기에 부합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실 기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협력의 지속성과 국내 조정을 위한 국가위원회의 역할도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유네스코 스웨덴 위원회 페르 마그누손(Per Magnusson) 사무차장은 국제기구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기구별 협력 전략을 수립하는 스웨덴 정부 정책을 소개하고, 스웨덴 국가위원회가 관련 부처와 협의하여 유네스코 협력 전략을 수립한다고 말했다. 특히 스웨덴의 유네스코 협력 전략은 국제사회 규범 제정에 중점을 두는 스웨덴의 개발협력 정책을 토대로 유네스코의 규범 설정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웨덴의 유네스코 협력 전략은 표현의 자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성평등, 기후와 해양, 효율적이고 현대적인 조직 등 자국의 주요 전략적 관심 분야와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엘누르 술타노프(Elnur Sultanov) 유네스코 아제르바이잔 위원회 사무총장 역시 회원국 내 NGO,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유네스코 활동 참여와 기여 강화를 위한 유네스코 국가위원회의 역할과 유네스코 개혁에 대한 참여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유네스코 본부에서도 싱 취(Xing Qu) 부사무총장이 처음으로 방한하여 유네스코 사무국의 개혁 노력을 적극 소개했다. 유네스코는 현재 ‘전략적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과학, 문화 분야에서 유네스코의 리더십 발휘, 아이디어의 실험실 기능 강화, 유네스코 조직 개방, 효율성 증진 같은 4대 개혁과제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회원국이 있으며, 이에 각 섹터별로 회원국들과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 바라보는 유네스코, 그리고 협력의 방향
유네스코는 정치, 경제, 군사력이 아닌 교육‧과학‧문화를 통해 세계평화를 이룩한다는 숭고한 이상을 갖고 출발했지만, 창설 이래 늘 위기를 겪어왔다. 냉전시대를 겪었고, 변화된 세계질서와 마주했고, 지금은 재정난까지 겪고 있다.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이러한 변화들을 언급하고, 유네스코가 지금까지 충분히 교육적, 과학적, 문화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유네스코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고 한국은 좁은 의미의 국가 이익보다 장기적이고 폭넓은 의미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유네스코 협력 비전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유네스코의 정치화와 비효율적 거버넌스에 대한 개혁 필요성은 ‘한국의 유네스코 협력 비전’을 연구한 세명의 정치학자에 의해 다시금 강조되었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유네스코가 그 태생부터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를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조직임을 지적했으며, 조윤영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테러와 강대국 간 경쟁 등 국제체제적 위기로 인해 국제기구가 정통성과 효율성을 도전받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그러한 가운데 조한승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늘날 미국의 탈퇴로 인해 겪고 있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느슨한 유네스코의 거버넌스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유네스코와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 류석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 유네스코 외교에 있어 한국이 세력균형 및 거버넌스 개혁의 주도자 또는 중재자, 규범의 기획자 및 확산자, 나아가 모범사례의 제시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여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공여 주체와 분야 간 조정은 물론 전체적인 전략의 제시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손혁상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다자전략안과 국제개발협력의 기본 목표 등에 유네스코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음을 지적하며,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국의 유네스코 협력에 대한 제안도 이어졌다. 조우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개발협력본부장은 교육 분야에서 한국이 평화교육 규범 제정 사업과 새롭게 정의된 문해교육 사업을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했으며,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규범 수립 등 유네스코가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네스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기여 방안도 논의되었는데, 관련 연구를 맡은 최동주 숙명여대 글로벌협력전공 교수는 대북 제재 해제 전과 후에 따른 사업 추진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지원과 평화 증진 간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본부에 따르면 회원국에서 유네스코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제포럼을 개최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한 연사의 지적처럼 ‘전략’은 군사 용어이기에 평화를 이야기하는 유네스코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협력을 논의하는 기술적 방법으로는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내년에도 유네스코 협력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고, 주요 회원국과 의견을 교환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포럼에 참여한 회원국 대표들도 한국위원회의 이니셔티브를 높이 평가하며, 향후 적극적 협력을 희망하기도 했다.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유네스코 회원국이 전환기에 놓인 유네스코의 개혁 노력에 더욱 적극 동참하여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현, 김영은 국제협력팀 선임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