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1974 국제이해교육 권고」 개정안 채택
교육이 특정 국가와 지역적 차원을 벗어나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이해, 협력, 평화를 위한 교육과 인권, 기본 자유에 관한 교육 권고(1974 국제이해교육 권고)」가 지난 11월에 열린 제4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개정됐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해지고 있는 지금, 이번 개정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유네스코는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무지 탓에 불신과 갈등이 커지고, 끝내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는 인식을 토대로 국가나 민족 간 상호 이해를 증진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그 대표적 활동 중 하나가 바로 국제이해교육으로, 유네스코는 1974년 국제이해교육 권고를 제정하면서 평화와 인권,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교육의 원칙과 실행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1974년 권고는 모든 교육이 전쟁과 폭력, 차별과 혐오,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 정의로운 평화, 사회 정의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명시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 이해와 협력 및 세계 평화를 가로막는 국가 간 긴장과 모순의 정치경제적 요인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정치·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는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진정한 이익을 강조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러한 원칙은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없이 중요하다. 비록 각국의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여전히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더 문제이지만, 기후위기나 인공지능, 디지털 전환과 같은 중대한 도전과제에 직면한 교육환경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국제이해교육에 대한 관심과 실천 동력을 다시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회원국이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1974년 권고 개정 발의를 환영하고 지지했다.
한국 제안으로 세계시민교육 강조
유네스코는 권고 개정을 위해 작년 상반기부터 지역별 협의를 시작해 4월에는 21명의 국제전문가집단에 1차 초안 작업을 맡겼다. 한신대 강순원 교수가 이 과정에 참여해 권고 개정 방향과 내용 등에 관해 의견을 제시했고, 9월에 나온 1차 초안을 회람한 49개 회원국이 제출한 800건에 가까운 수정안을 반영해 올해 4월 2차 초안이 공개됐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정부간 특별위원회가 6월과 7월에 파리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는 연세대 박순용 교수와 강원대 한건수 교수가 참석했고, 필자는 1차 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했다.
한국은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수립과정에서 교육 분야 세부목표에 세계시민교육을 넣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세계시민교육은 교육분야 세부목표(SDG 4.7)에 포함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은 1974년 권고 개정과정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으며, 아태교육원은 국내 전문가 검토 작업을 시작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공동 개최한 개정안 검토 포럼을 거쳐 개정 권고의 제목과 내용 곳곳에 세계시민교육을 언급하도록 제안했다.
각국의 제안 사항이 적지 않았던 만큼 6월과 7월의 정부간 특별위원회에서는 개정 권고의 명칭에서부터 용어 정의, 주요 원칙, 영역별 실천과제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례로 러시아는 세계시민교육이란 개념에 대해 국제사회의 합의된 정의가 없다는 근거로 개정 권고 명칭은 물론 용어 정의 단락에도 포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한국은 세계시민교육이 2015년 인천선언 및 행동계획에 정의되어 있고 SDG 4에도 들어가 있는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반박했으며, 서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남미 여러 나라가 이를 지지하면서 한국의 제안이 최종 초안에 반영되었다.
세계시민에 전하는 호소
이번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 아래 정부간 특별위원회의 최종 초안대로 ‘평화 인권, 국제이해, 협력, 기본적 자유, 세계시민성,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교육 권고’라는 이름으로 개정안이 채택됐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인류의 양심에 호소하는 이 2023년 권고의 의미는 각별하다.
먼저, 혼돈이 가중되고 있는 오늘날 현실에서 인류 평화와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하고, 그 교육의 방향과 원칙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국제사회가 일치된 목소리로 천명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이가 변화의 주체로서 불확실한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변혁교육(transformative education)이며,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 등이 그 주요 접근법임을 개정 권고안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발전교육에서 종래 다루던 평화, 인권, 사회 정의, 문화다양성, 성평등, 지속가능성 같은 주제 외에 기후위기와 디지털 기술의 도전 등에 초점을 맞춘 기후변화교육과 미디어정보문해교육을 강조했다는 점도 이번 권고에 담긴 중요한 의미다.
끝으로, 국제사회에서 세계시민교육을 강조해 온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권고가 세계시민교육의 개념과 내용 등을 담고 있는 유네스코의 첫 번째 규범문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유네스코는 여러 자료와 간행물에서 세계시민교육을 소개하고 실행 지침을 제공해 왔으나, 집행이사회나 총회 같은 의사결정기구가 결의한 문서에는 그 근거를 두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권고를 통해 더 탄탄한 근거를 확보하게 된 세계시민교육은 앞으로 그 실천에 있어서도 더욱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임현묵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