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는 비단 경제사회 분야에서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에서도 나라마다 하늘과 땅만큼 격차가 크다.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꾸준히 자국의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선도국이 있는 반면, 자국의 문화유산이 사라질 위기에도 마땅히 보존할 방안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저개발국이 적지 않다. 특히 이 가운데엔 인류에게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이 훼손 위기에 놓여 있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이 최근 공동 발간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개도국 협력 전략 세미나 보고서>에 새삼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이러한 지구촌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문화유산 선도국으로 떠오른 우리나라가 저개발국가의 문화유산 발굴 및 보호, 보존을 도우려 하는 배경과 현황, 그리고 효율적인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2월 27일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방향과 전략’이란 주제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세미나의 내용을 다룬 것이다. 한경구 교수(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의 기조 발제, 문화유산 ODA의 현황 및 전략과 전문가 제안 등으로 이뤄졌다. 과연 지금 이 시점에서 문화유산 ODA가 왜 필요한 것일까. 만약 필요하다면 어떻게 돕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이번 보고서 내용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자. |
ODA(공적개발원조)는 경제적 원조와 같은 말로 통용돼 왔다. 우리나라도 전후 폐허 속에서 해외의 경제적 원조를 받았다. ‘마셜 플랜’(2차 대전 후 미국의 서유럽에 대한 경제원조 계획) 이후 우리처럼 경제적 성장을 이룬 나라가 없기에 우리나라는 흔히 ‘ODA 성공 사례’로 인용되곤 했다.
이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ODA 성공 사례 리스트’에 한국을 새롭게 등장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원조의 수혜국이 아닌 공여국으로, 그리고 경제적 물질적 원조가 아닌 문화적 창조적 원조의 모범 사례로서 또 하나의 신화를 쓰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답을 ‘문화유산 ODA’로 잡았다.
이에 대해 질문이 있을 수 있다. 기존의 ODA 방식이 있는데 문화유산 ODA로 가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가이다. 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기존의 ODA가 보여주는 단점이 장점보다 크기 때문이다. 원조의 효과도 떨어지고 현지민들의 자존감만 떨어뜨린다는 평가에 ‘ODA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난 3월 25일자 신문에는 베트남 관리들이 일본의 철도 컨설팅 업체인 일본교통기술(JTC)의 ODA 사업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약 78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베트남이 발칵 뒤집혔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기존 ODA가 갖는 폐혜의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고 절대빈곤에 놓여 있는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을 끊을 수는 없다. 지원을 하되 올바른 방향으로 해야 한다. 지원의 성과도 높고 현지민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문화유산 ODA가 그 방안 중 하나라고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판단했다.
문화유산 ODA로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황원규 강릉원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국제개발협력 환경이 변화하였기에 이에 맞춰 ODA 방식도 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곽재성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논거로 문화유산 ODA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문화유산에 대한 복원과 지속적인 유지관리는 경제적 부가가치뿐만 국가적 자긍심을 높이는 사회적 효과를 동반하기 때문에 승수효과가 매우 높다. 또한 유형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복원 및 유지관리 사업의 경우 외부 노출효과가 뛰어나 공여자 가시성(visibility)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즉 원조를 받는 나라는 국민적 자긍심과 개발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공여자 입장에선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유산 ODA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현재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을까. 효과적인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황진단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김광희 한국문화재보호재단 국제교류팀장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경우 “중국, 이집트 인도 등의 국가에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대상지는 라오스 홍낭시다 유적, 캄보디아 프레아 피투, 미얀마 바간 유적 등 3곳이 있다”고 전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경우 유적지 보존보다는 세계기록유산 등재훈련 워크숍을 통해 저개발국 현지전문가의 능력을 함양시키거나 등재를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등재훈련 워크숍은 2009년 아태지역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실시되었으며 워크숍 참가 대상은 아직 세계기록유산을 등재하지 못하였거나 한 건만 등재한 국가들로 구성된다. 워크숍을 통해 동티모르와 미얀마가 실제로 기록유산을 등재하는 성과(표 1 참조)도 있었으며, 금년에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기록유산 워크숍을 개최하고 세계유산 등재지원 사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문화유산 ODA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미 독일 일본 등이 유적지 보존 위주로 문화유산 ODA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적 문화유산 ODA는 어떻게 준비되고 시행되어야 할까. 곽재성 교수는 효과적인 문화유산 ODA를 시행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그중에서도 △우리 원조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지나친 하드웨어 중심의 원조 행태에서 탈피해 상대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 △현지 인력과 기관의 역량을 높여주어 해당 지역이 스스로 개발을 주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점 △한국이 비교우위를 지닌 영역인 정보기술(IT)를 활용해 창조적인 사업 영역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 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문화유산 ODA를 시행하는 이유는 공여국이란 타이틀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문화유산은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류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다. 다양한 문화유산에 대해 이해하고 그 문화를 통해 서로 소통할 때 우리의 삶과 문화 또한 풍요로워질 수 있다. ODA 수여국이 갖고 있는 문화유산은 그들에게는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고, 우리에게는 인류의 지혜로 다가와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앞으로 펼치게 될 문화유산 ODA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친구’로 맺어지는 나라가 하나 둘 늘어난다면, 그것은 행복한 덤이 아닐까.
공적개발원조(ODA)란?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정부나 기관 등이 개발도상국 또는 국제기관에 제공하는 증여, 차관, 기술 등의 원조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의 기구로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조직된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009년 가입함으로써 공식 공여국의 자리에 올랐다. 최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유산 ODA’는 저개발국가가 궁극적으로 자국의 문화유산을 스스로 발굴 보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통해 돕는 일종의 문화적 원조이다. 이러한 원조 방식은 단순한 경제 지원을 뛰어넘어 상대 국가의 자존감을 높이고 문화적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원조 패러다임으로 주목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