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
총 429개 세계기록유산 중에서 아랍지역의 기록물은 단 2%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아랍지역 기록유산의 수가 적거나 가치가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등재신청서의 기준에 맞춰 기록물의 세계적 가치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에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은 처음으로 아랍의 기록유산에 눈을 돌려, 아랍지역 7개국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몰타에서 진행되었다.
아랍지역은 아랍어로 된 단일 경전(코란)을 가지고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점에서 역내 국가 간 강한 문화적 동질감을 지닌다. 국경선과 관계없이 말과 글이 통한다는 사실은 권역별 개최를 지향하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에 장점이 될 수도 있으나, 정치・종교적인 이유로 불안정한 이 지역에서 워크숍을 개최하는 일은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가 숙제였다. 수많은 기록물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들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데 관심이 적고 국가별 이해 정도에도 상당한 격차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한 아태지역보다 이 지역에 진작부터 관심을 가지고 아랍지역 맞춤형 역량강화 워크숍을 준비했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선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총 18개 아랍국가 중 관심을 보인 10개 국가에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 초안 작성을 요청했다. 이 초안을 전문가들이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모로코, 몰타, 오만, 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의 7개 국가가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몰타는 유럽과 아랍의 점이지대라는 지정학적 장점과 함께, 지난 2017년부터 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한국과 협의해온 덕분에 이번 워크숍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몰타에서 만난 아랍 참가자들은 쾌활하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국별 기록유산 전담 기관이 부재한 탓에 참가국 내 문화부처 담당 실무자들이 주로 워크숍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기록유산의 개념과 유네스코에서 제시하는 등재 요건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들의 초안을 전문가 및 여타 참가자와의 토론을 거쳐 수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기록유산 등재가 재개된다면 아랍지역의 등재 신청이 이전보다 확연히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기록유산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아랍지역에 자생적으로 뿌리내렸던 기독교회의 폐허 속에서 찾아낸 금석문(이라크), 현재의 국가 형태를 갖추게 해 준 근대적 조약문서의 원본(요르단), 헬레니즘 그리스 시대의 이카루스 이야기(쿠웨이트), 사막의 은자로 불리는 성자 안토니우스의 삽화 이야기(몰타), 지금은 찾기 힘든 다양한 코란 원전 중의 하나(오만), 그리고 살라딘과 그의 아들을 기리는 내용을 꽃과 다채로운 문양 형태로 기록한 송시(팔레스타인)까지,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기록물들이 워크숍을 거치며 차츰 등재신청 양식을 갖추어 갔다.
등재 신청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으로 등재신청서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전문가 그룹 구성원들도 아랍지역을 대상으로 처음 진행된 이번 워크숍에 보다 열의를 가지고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기록유산제도의 개요, 등재신청서 작성시 주의할 사항과 특별히 고려해야할 내용들에 대해 강연한 후, 일대일로 참가자들이 제출한 기록물을 검토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기록유산 등재 기준에 부합하도록 신청서 내용을 수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워크숍 마지막 날에 참가자들이 직접 발표한 최종 신청서의 내용은 초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이 발전해 있었다. 일부는 지금 당장 제출을 해도 될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었으며, 전문가들은 최종 논평을 통해 전체적으로 해당 기록유산의 진정성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을 누구든지 이해하기 쉽도록 좀 더 보충할 것을 주문했다.
공식 일정 마지막날인 9월 14일에는 몰타의 국가기록원과 국립도서관을 방문하여 몰타가 제출한 기록유산 실물을 직접 살펴보고 몰타의 기록물 보존 및 관리 현황과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아울러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몰타의 수도 발레타를 찾아 도심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3박 4일의 워크숍 공식 일정을 통해 아랍 참가자들은 세계기록유산 전문가와 더불어 참가자 상호간에도 친분을 쌓았다. 참가자들은 이번 워크숍 개최를 준비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유네스코몰타위원회에 사의를 표하고, 앞으로도 아랍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이 개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워크숍은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한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고자 유네스코가 창안한 유산사업 전반에 대한 아랍지역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간 상대적으로 활동이 적었던 아랍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촉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현 문화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