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
높은 가치를 지닌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과소등재국들을 지원하고, 개발도상국의 체계적인 기록물 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역량강화 워크숍’이 9월 5일부터 7일까지 요르단 암만에서 열렸다. 3년 만에 다시 오프라인으로 개최돼 그 의의가 더욱 남달랐던 워크숍의 현장 모습을 전한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워크숍은 그간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동, 남미, 태평양의 섬나라 등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을 매년 순회하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가치 있는 기록물이 등재 준비를 마치도록 도와 왔다. 이렇게 매년 준비하는 행사임에도 올해 워크숍은 준비 과정부터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현장 워크숍을 개최할 뿐 아니라,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준비 회의와 사전 수강 등 지난 두 차례의 온라인 워크숍에서 축적한 노하우까지 활용해 더욱 입체적인 워크숍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9개국의 참가자와 4개국의 옵서버를 선정하는 일도 이전보다 녹록지 않았다. 기록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증대된 이유도 있겠지만, 특히 2017년 이후 기록유산 제도 개편으로 인해 신규 등재가 한동안 중단됐었기에 더 많은 국가들이 그간 자신들의 등재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이번 워크숍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보인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에 참여해 온 국제 전문가들의 심사 결과 이번 워크숍 참가국으로 초청된 9개국 중에서 최근 발생한 홍수로 인해 참석이 어려워진 파키스탄을 제외한 나머지 8개국이 요르단 현지 워크숍 일정을 소화했다. 참가국 관계자들은 기록유산 전문가들 및 타 참가자들과 교류하면서 기록유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자신들이 준비해 온 등재신청서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옵서버로 참석한 3개국(라오스, 리비아, 투발루)과 사정상 현장 참가가 불발된 파키스탄 역시 9월 6일에 열린 별도 온라인 세션을 통해 향후 자국의 기록유산 등재 가능성을 전문가와 함께 심도 있게 논의하며 미래를 기약했다.
워크숍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가국들이 제출한 기록유산 후보들은 예외 없이 흥미롭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알리고 싶은 기록물들이었다. 그중에서 독립 국가 수립 과정(쿠웨이트) 및 국가의 현재 위치에서 명멸해온 다양한 국가들의 역사(팔레스타인)가 고스란히 담긴 ‘동전’들이 두 나라의 기록유산 후보로 소개된 것이 특히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의 주변국들과 구분되는 사회·경제·언어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간직한 기록물(몰타), 투르크 문화권의 독특한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필사본(투르크메니스탄), 20세기 현대사의 질곡을 사진 등으로 담은 기록물군(이라크),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오스만제국과 영국 제국주의 영향 아래서도 독특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왕정 기록물(수단), 페르시아만을 가로질러 인도에 이르는 항해 과정과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지식이 담긴 항해 기록물(오만), 국가 건립 과정에서 제국주의 영향력을 떨쳐내고자 분투했던 공동체의 노력이 담긴 역사 기록물(요르단), 그리고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기록물 모음(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진기한 기록물들을 워크숍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에 아낌없는 성원과 협력을 해 준 요르단 측에 대한 특별한 감사 표시를 빼놓을 수 없다. 아직 코로나19의 위협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가그룹의 조언에 따라 요르단을 최우선 개최 대상지로 선정했을 때만 해도 호의적인 응답이 가능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유네스코한국위원회로부터 워크숍 취지 설명과 더불어 협력 요청을 받은 요르단 국가위원회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으며 워크숍 전 과정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워크숍 3일째에 열린 기록유산 관련 현장 답사에서는 요르단 측의 세심한 배려 속에 요르단 국가기록원과 국립도서관을 방문한 것은 물론, 평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요르단 왕궁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세계기록유산은 다양한 기록에 담긴 인류의 소중한 기억과 발전 과정을 되새기고, 기록물에 대한 일방적 해석이나 가치 판단을 뛰어넘어 다음 세대에게도 유효한 시사점을 주기 위해 고안됐다. 동 워크숍을 개최해 온 한국은 세계기록유산 분야 강국으로서 기록유산 등재와 더불어 보존과 접근성 향상, 활용 방면에서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오면서 유네스코 본부는 물론 전 세계 많은 관계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록유산 등재 과정에서 불거지곤 하는 주변국들과의 불편한 관계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이지만, 기록 자체가 지니는 힘과 대중에게 파급될 수 있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그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제도가 일깨워 줬다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자국의 소중한 기록물이 유네스코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희망하는 참가자들의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세계기록유산 사업이 앞으로도 인류의 상호 이해와 평화로운 공존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이동현
문화커뮤니케이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