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 5월 2일 외교부 및 문화재청과 공동으로 서울 롯데호텔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가입 30주년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 기조 발제를 맡은 무니르 부슈나키(Mounir Bouchenaki)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랍지역센터 소장의 기조 연설을 요약, 소개한다.
1972년 체결된 이후 세계유산협약은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와 보존에 있어 가장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이행수단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거의 모든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고 보호 대상으로 지정된 유산의 수 역시 방대하다는 사실은 세계유산협약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를 증명한다.
세계유산협약의 보이지 않는 성과 또한 적지 않다. 유네스코 문화 분야 사무총장보와 세계유산센터 소장을 역임한 프란체스코 반다린(Francesco Bandarin)은 “(세계유산협약은) 수백만 명의 가슴과 마음을 감동시키는 가운데 국제협력의 힘과 효율성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계유산협약은 선대에서 후대로 전해지는 유산이 국경을 초월한 보편성을 갖는 동시에, 특정 국가나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산임을 인정했다는데 그 가치가 크다. 세계유산협약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미셸 바티스(Michel Batisse)와 제라르 볼라(Gérard Bolla)가 “세계유산 협약이 가장 크게 공헌한 바를 꼽자면, 바로 인류가 우리 존재의 이원성을 깨닫게 한 점과 자연은 환경인 동시에 유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점”이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세계 대다수 국가의 참여와 인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협약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각국의 유산은 여전히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다양한 위협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산의 수는 2018년 현재 1073점에 달한다. 하지만 1000개를 넘는 상징적 숫자에 비해서 해당 유산들이 얼마나 철저히, 효과적으로 보호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있는 대답을 하기 힘들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나 정부간위원회는 문화 및 자연유산 훼손을 막기 위한 공권력을 갖고 있지 않아, 세계유산협약은 국제협력을 유도하고 증진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협약 채택 이후 세계유산이 처음으로 직접 공격 대상이 된 사례는 1991년 12월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의 구시가지였다. 유고 내전 상황에서 발생한 해당 사건 이후에도 전 세계에서는 여러 유산들이 고의로 파괴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1993년 11월에는 모스타 르(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역사적인 다리가 파괴되 었고, 2001년 3월에는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아프가니스탄)의 거대 석불을 폭파했다. 그리고 2012년 7월에는 유서 깊은 도시 팀북투(말리)에 위치한 세계유산의 왕릉이, 최근에는 시리아 알레포의 구시가지와 성채, 크락 데 슈발리에, 팔미라를 비롯한 일부 세계유산이 파괴되어 전 세계인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유네스코가 이 모든 과정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2012년 팀북투의 유산을 파괴한 아흐메드 알파키 알마흐디는 해당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ICC)에 기소돼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이리나 보코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유산이 인류 전체에게 지니는 중요성과 해당 유산을 보존해 온 지역 사회의 공로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이정표”라 평가 하고, 해당 판결이 “세계유산이 재건 및 평화정착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유네스코의 신념에 힘을 실어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모든 시스템이 그러하듯, 세계유산협약 역시 이상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책과 전략을 수정해 가며 다양한 도전에 맞서고 있다. △서양 중심적 유산 개념을 탈피해 세계유산목록의 균형성을 향상하고 △특정 카테고리(현대 또는 유사 이전 유산)의 등재 건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에서 나타나는 유산의 시대적 지역적 편중을 해소하고 △유산 등재 신청 건수 폭증에 따른 사무국과 자문기구의 업무 부담 증가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높은 보존 기준을 확립하고 목록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 등은 그 중에서도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 모든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적 물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세계유산협약이 당사국에 제공하는 지원은 주로 세계유산기금, 유네스코, 기타 공공 및 민간 기부금을 통해 조성된 자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질 가용자원은 지난 몇 년간 계속 감소해 왔다. 따라서 세계유산위원회는 정책 방향을 제시 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일과 더불어, 이 같은 기술적 지원을 개선해야 하는 임무까지 함께 신경을 써야 한다.
과연 세계유산협약은 이런 도전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당사국들이 협약에 힘을 실어주고, 지난 40년간 협약이 수행해 온 역할과 협약이 쌓아온 명성을 더욱 증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끊임 없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다.
무니르 부슈나키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랍지역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