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만나는 ‘한국의 서원’
선비의 고장 안동에는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줄기를 따라 고요하게 자리 잡은 서원이 두 곳이나 있다. 서애 류성룡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병산서원과 퇴계 이황의 숨결이 깃든 도산서원이다. 책 읽기 좋은 이 계절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옛 학문의 전당인 서원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열두 폭 병풍 같은 절경을 품은 병산서원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면 선비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병산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병산서원의 시초는 1572년 서애 류성룡이 풍산 류씨의 교육기관인 풍산서당을 병산으로 옮겨 지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13년에는 서애의 제자들이 류성룡의 업적과 학덕을 높이 사 존덕사를 짓고 향사하며 서원이 되었고, 1863년에는 철종으로부터 ‘병산서원’이라는 편액을 받아 사액(賜額)서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의 서원은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을 기폭제로 하여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사림들에 의해 다수 건립되었다. 특히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병산서원, 함양 남계서원, 안동 도산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은 2019년에 동아시아 성리학 교육기관의 한 유형으로서 서원의 한국적 특성을 잘 나타낸다는 점을 평가받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병산서원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물로 손꼽힌다. 그 구조는 전형적인 서원의 배치와 다를 바 없이 사당, 강당 그리고 기숙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직접 가 보면 그 이유가 느껴진다. 병산서원의 정문으로 ‘예로 돌아가라’는 뜻을 품은 복례문(復禮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동서로 길고 웅장한 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20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만큼 긴 만대루(晩對樓)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통나무를 누각을 지탱하는 대들보와 기둥으로 써서 지었다. 만대루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가면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의 강당인 입교당(立敎堂)에 다다른다. 입교당 누마루에 걸터앉으면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 그리고 만대루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다. 사방이 탁 트인 만대루의 나무 기둥 사이로 펼쳐지는 병산의 산세는 열두 폭 산수화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왜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서원으로 불리는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수려한 경관이다.
선비의 이상향이 깃든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조선의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 퇴계 이황이 벼슬에서 물러나 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상덕사를 지어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도산서원을 완성했고, 1575년 선조로부터 편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특히 한석봉이 썼다는 현판은 도산서원의 품격을 높여준다.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황이 직접 설계한 도산서당과 제자들이 지은 서원이 한 울타리 안에 자리한다. 정문인 진도문을 기준으로 아래는 도산서당, 위는 도산서원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스승이 지은 도산서당 건물과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기리며 지은 도산서원의 건물이 마치 대학 캠퍼스처럼 어우러진다.
도산서원에서 이황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곳은 단연 도산서당이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유정문(幽貞門)을 지나면 소박한 도산서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락재라 이름붙인 아담한 방에 책과 침구만 두고 생활했다는 퇴계의 청빈한 선비 정신이 느껴진다. 도산서당 옆으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隴雲精舍)가 이어진다. 자연을 품은 농운정사의 수많은 창과 문에도, 제자들이 자연을 가까이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라는 스승의 뜻이 깃들어 있다.
안동 여행자 노트
하회마을 | 풍산 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은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고택과 초가집이 마을의 풍경을 이루고, 그 안에서 100여 가구의 주민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퇴계종택 | 도산서원에서 3km 거리에 위치한 퇴계종택은 1907년 일본군이 불을 질러 소실되었지만, 13대손 이충호가 1929년에 현재의 종택으로 재건했다.
유교랜드 | 안동문화관광단지 안 유교랜드는 유교와 관련된 예절과 풍습, 생활 등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글 우지경 여행작가 / 사진 배나영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