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호] 국제개발협력
남성 중심의 가부장주의가 만연한 인도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은 소위 말하는 ‘부엌데기’(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성을 얕잡아 이르는 말)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곧 결혼하게 될 소녀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일찍 학교를 떠나기도 하고, 남성들에 비해 경제활동이나 사회참여에 큰 제한을 받습니다.
하지만 인도 사회의 이 권위적인 얼굴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쓰기 시작한 한 여성이 있습니다.
인도 여성들의 권한 강화를 목표로 하는 브릿지 인도 프로젝트를 통해, ‘부엌데기’의 운명에서 벗어나 ‘변화의 첨병’으로 도약한 스물 두 살 압사나(Afsana)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내 운명은 내가 직접 씁니다
인도 싯타푸르 지역의 카림나갈 마을에는 스무 명 남짓 되는 성인 여학생들이 다니는 지역학습센터가 있습니다. 앳된 얼굴의 압사나 씨가 문해교육 교사로 활동하는 곳입니다. 압사나 씨와 학생들은 이곳에서 ‘부엌데기’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새로 써나가고 있습니다.
압사나 씨의 ‘새 운명 만들기’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압사나 씨는 다른 많은 인도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학교를 중퇴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곁에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과 아픈 아버지도 있습니다. 남편마저 등을 돌렸지만 압사나 씨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로 바느질을 해 돈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교육까지 무사히 마칠 무렵, 브릿지 인도 프로젝트를 통해 카림나갈 마을의 지역학습센터 교사로 선발됐습니다.
변화의 첨병
바뀐 것은 압사나 씨의 운명만이 아닙니다. 공부를 반대했던 남편은 이제 압사나 씨가 지역학습센터에 있는 동안 직접 아이를 돌볼 정도로 변했습니다. 공부하느라 집안일을 챙기지 못 한다며 나무랐던 부모도 이제는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달리 인식하고 있습니다.
압사나 씨의 수업을 듣는 성인 여학생들의 생각도 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학생들 대부분은 “뒤늦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운다 한들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압사나 씨의 설득에 하나둘씩 지역학습센터를 방문하기 시작했고, 이제 글을 배우면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권한 또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성 교육에 회의적이었던 마을 주민들도 이제 압사나 씨의 용기와 도전에 지지와 존경을 아끼지 않습니다. 배움의 마법이, 압사나 씨뿐만 아니라 남편과 가족, 나아가 카림나갈 마을의 주민들까지 새 운명을 써 나가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영은 브릿지아시아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