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춤의 가치와 유산 등재 의의
지난해 11월 30일 모로코 라바트에서 개최된 제1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탈춤(Talchum, mask dance drama in the Republic of Korea)’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풍자와 해학, 화해와 조화의 정신을 담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전통 공연예술인 탈춤의 유산 등재 의의를 짚어보고, 더불어 탈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을 살펴본다.
이번에 ‘한국의 탈춤’이라는 명칭으로 등재된 탈춤에는 한국의 국가무형문화재 14종목과 시도무형문화재 5종목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한국의 탈춤은 그 기원에 따라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과 마을굿놀이 계통 가면극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황해도의 해서탈춤과 서울·경기의 산대놀이, 경남의 야류와 오광대 등 지역적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이처럼 그 기원과 지역에 따라 연희 내용이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각 탈춤들은 모두 나름의 전승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모든 탈춤들을 묶어 등재한 것은 매우 적절한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탈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묘사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형식과 내용의 탈춤은 18세기 중반 무렵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탈춤은 제의적 성격을 덜어내고 18세기 이전까지 존재하던 잡기 수준의 탈춤을 혁신적으로 개작해 연극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춘 사회 풍자 희극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탈춤은 형식적으로는 대사와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진 연극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신나는 춤과 노래가 한국 탈춤의 특징인 흥과 신명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문제가 되던 여러 부조리를 풍자한다는 점도 탈춤의 주요한 특징이다. 양반을 풍자한 ‘유희(儒戱)’, 파계승을 풍자한 ‘만석중춤’, 그리고 처첩 간 삼각관계를 다룬 ‘영감과 할미춤’ 등 기존에 따로 존재하던 내용들이 결합해 하나의 탈춤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독립된 여러 내용이 모여 하나의 공연을 구성하는 ‘옴니버스 스타일’도 한국 탈춤의 특징이다.
탈춤에 담긴 주제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으로, 이를 통해 당시 민중에서 싹트던 새로운 사회의식의 발전상도 엿볼 수 있다.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며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탈춤을 보면서 관중들은 긍정적 인물들을 지지하고 부정적 인물들을 야유하며 연희 내용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 과정에서 관중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연희자와 관중이 함께 엮어나가는 연행의 방식도 갖게 되었다.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는 민중의 의식은 긍정적 인물인 취발이, 포도부장, 말뚝이, 할미를 통해 표현됐고, 이는 동학농민혁명 등 중세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역사적 운동과도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 탈춤의 인류무형유산 등재의 일차적인 의의는 이상에서 살펴본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특징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번 등재가 한국 탈춤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적극적 논의를 펼칠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탈춤을 유산이자 문화재로서 잘 보존하고 전수하는 것을 넘어, 대중화와 공연예술화를 통해 ‘현재적 탈춤’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탈춤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정규교육과정에서 체육이나 무용 수업 또는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탈춤을 보급하는 활동과 함께, 지역마다 탈춤 축제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만하다. 한국에는 외국처럼 종교 축제나 카니발 축제에서 전승되는 탈춤은 없지만, 강릉관노가면극처럼 강릉단오제라는 전통 축제 속에서 전승되어온 탈춤이 있다. 최근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진주탈춤한마당, 노원탈축제 등 탈춤 관련 축제도 생겼다. 이들 축제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탈춤의 전승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탈춤 전승지가 아닌 지역에서 열리는 노원탈축제의 사례는 적절한 기획과 노력이 있다면 새로운 탈춤 축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컨대 오늘날 젊은층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핼러윈 데이를 즐긴다는 점에 착안해 핼러윈과 관련한 가면 축제를 검토해 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한국의 탈춤을 중심에 놓고, 핼러윈 가면과 전통 가면, 창작 가면 등을 포괄하는 현대적 가면 축제를 새로운 발전 방향으로 모색해 보는 것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가면극을 공연예술로 개작해 상업적 공연장에서 연행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예로는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궁정의 ‘짤론 아랑(Calon Arang)’이나 태국 싸라 찰럼끄룽 왕립극장(Sala Chalermkrung Royal Theater)의 ‘콘(Khon)’ 등이 있다. 이들의 사례를 참고해 탈춤을 중심으로 전문화된 전통연희들을 결합해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공연예술을 창출하고, 그것을 공연할 수 있는 상업적 공연장을 설립하는 것은 탈춤의 보전과 더불어 지속적인 발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