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
2010년대 들어 벌 군집의 대규모 붕괴 등의 소식이 뉴스에 소개되면서 도시 양봉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고 있다. 삭막한 도심 옥상에 벌들의 작은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10년째 매진해 오며, 오늘도 만나는 사람마다 “비(bee) 해피!’라고 인사를 건네는 소문난 ‘벌덕후’, 박진 대표를 만나 보았다.
— 2013년부터 ‘전업 도시 양봉가’로서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양봉장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비록 벌들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지만, 지난 2년 여간의 팬데믹 기간 동안 힘든 점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건물마다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면서 양봉장을 관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15군데 정도 양봉장을 철거해야 했고, 대신 경기도 고양시 인근 장소로 벌들을 옮겨 두었습니다. 코로나 관련 조치가 완화된 요즘에는 양봉장 수가 다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벌통도 사실 벌들의 ‘집’이잖아요? 그 집을 새로운 동네로 옮기면 벌들은 또 새로운 동네를 탐색해서 먹이를 찾고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람이 잘 통하게 해준다든지, 너무 덥지 않도록 한다든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 2000년대 들어 세계 곳곳에서 벌들이 대규모로 사라지는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수의 벌들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도시의 벌들은 괜찮았는지요? 이러한 재앙이 반복되는 것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대책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022년 들어서 월동에 실패한 벌들이 생겼어요.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던 날씨 때문에 벌들이 집 밖으로 나왔는데, 벌은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밖에 오래 있을수록 더 이상 열을 못 내고 밖에서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개화 시기가 너무 빨라져서 벌들이 먹이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도 전에 꽃이 져버리니까 먹이를 찾기가 힘들어서 죽어버리기도 해요. 또, 장마철이 길어질수록 벌들의 활동량이 떨어져서 먹이를 못 구하게 돼요. 마지막으로 농약도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농약 중 약 30%를 차지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농약이나, 농사를 지을 때 과실의 크기가 커지게 하려고 뿌리는 ‘적화제’같은 것들이 벌들에게 치명적이거든요. 그래서 먹이를 찾으러 나간 벌들이 농약과 접촉해서 죽거나, 농약이 묻은 먹이를 벌집 안으로 가지고 와서 다른 벌들에게까지 해가 가는 거에요. 이런 복합적인 원인들 때문에 약 20% 정도의 벌들이 사라졌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부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죠. 이를 막기 위해 기후위기도 막아야 하지만, 그건 하룻밤 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대신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농약 규제라고 생각해요. 실험실에서 검사하는 농약의 안전성과, 농업 현장에서 각종 농약들이 섞였을 때의 안전성은 또 다르거든요. 지금은 관심이 많이 낮은 편이지만 이런 조치가 꼭 필요해요.
— 이같은 벌들의 위기 소식을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최신의 기술이 양봉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는 없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수분 매개를 할 수 있게 제작된 드론 로봇 같은 시도가 있었어요. 대부분 외국에서 이루어진 시도였는데, 아무래도 상용화되기에는 가격 및 효율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죠. 그런데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이 자연을 대체할 수는 없어요. 과학 기술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벌들이 자연에서 사라지지 않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도시 양봉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빌딩 옥상에서 꿀을 얻는다는 의미 외에, 도심에 존재하는 벌이 갖는 생태적 가치는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연구에 따르면 도시에 양봉장이 한 군데 생길 때마다 도시 생태계 내 꽃의 발화율이 약 20% 증가한다고 해요. 그렇게 되면 그 꽃에서 열린 열매를 먹고사는 곤충과 새들이 더 유입되고, 그것이 또 식물의 재생산을 도우면서 생물다양성 증진에 도움이 되죠. 특히 ‘벌’하면 대부분의 관심이 꿀을 생산하는 꿀벌에만 집중되는데, 꿀벌은 전체 벌 종류의 일부분에 불과하거든요. 도시 양봉을 통해 더 다양한 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인구 대부분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양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벌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더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처음 어반비즈를 창업한 10년 전에 비해 요즘은 저희 사업을 ‘꼭 필요하다’며 우호적으로 봐 주시는 분들이 크게 늘어났어요. 사실 도시라는 공간은 벌들에게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에요. 시골은 워낙 벌이 많아서 벌끼리 먹이 경쟁이 심한데, 도시에는 벌이 적어서 경쟁이 덜하거든요. 그리고 도로에도 계절별로 각종 꽃이 심어져서 먹이가 풍부하기도 하고요. 용산에 있는 저희 양봉장은 시골 양봉장보다 약 1.5-2배 더 많은 꿀을 생산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 끝으로 각자가 벌들을 위해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유네스코뉴스』 독자들께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원하신다면 저희처럼 양봉을 직접 해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양봉인 교육 프로그램도 매년 진행하는데,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질 정도로 양봉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아니라면 두 가지를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이에요. 소비자의 행태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농가의 관행을 바꿀 수 있거든요. 아니면 벌들이 먹이를 얻을 수 있게 꽃을 한 송이라도 심어주세요. 이 외에도 해외에서는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야생벌 호텔 키트’(야생벌들의 집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설명서와 자재가 들어있는 키트)를 활발히 판매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조금 더 유연하게 박물관, 카페 등에서 이런 키트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박다혜 홍보팀 전문관
사진 촬영
김현철 홍보팀 전문관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는 시장경영진흥원(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우체국쇼핑(한국우편사업진흥원)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2013년 도시 양봉을 사업화한 사회적기업 ‘어반비즈서울’을 창업했다. 현재 서울숲공원, 국립과천과학관 등 수도권 일대에서 다수의 도시양봉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심에서 벌 기르기, 이것이 궁금해요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에서 벌을 키우는 것이 가능한가요? 벌들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밀원식물(꿀의 원천이 되는 식물)과 가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양봉이 가능합니다. 도시의 크고 작은 공원과 산,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꽃과 식물들은 훌륭한 밀원 제공지가 됩니다. 꿀벌의 행동반경은 직선거리 2km 정도로 꽤 먼 곳까지도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도시에서의 양봉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심 옥상에서의 양봉이 활성화되어 있고, 도시의 고온건조한 기후와 다양한 식물, 농약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성 등을 도시 양봉의 장점으로 꼽고 있습니다.
벌들이 도시의 꽃에서 수집한 꿀은 믿고 먹을 수 있나요?
벌이 물어온 꿀을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과정 중에 꿀 속에 섞여있던 성분들이 벌의 효소와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꿀이 됩니다. 벌들이 처음 꿀에 있을 수 있는 중금속 및 유해한 성분들의 필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도시 양봉 업체가 해당 꿀을 한국양봉협회 시험검사를 거쳐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시 양봉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도시에서 꿀벌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의 생활환경도 좋아집니다. 꿀벌의 수가 증가할수록 꽃의 발화율도 증가합니다. 더 많은 꽃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에 따라 다른 곤충과 작은 새들도 도시로 유입되며, 나아가 도시의 생태계 복원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시 양봉을 통해 생산되는 다양한 양봉 부산물을 통해 경제적 이득과 일자리도 창출되지요.
도심의 벌들이 시민들에게 위험하지는 않나요?
벌의 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벌을 무서워하지만, 꿀벌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하여 먼저 덤비지 않습니다. 사람이 먼저 벌집이나 꿀벌을 해치려 하지 않는다면 꿀벌은 사람에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꿀벌의 최대 관심사는 꽃과 꿀이고, 침을 쏘고 나면 죽기 때문에 함부로 쏘지 않습니다. 분봉(1개의 꿀벌 군집이 2개 이상으로 나뉘는 것)이 생기면 새 벌집 터를 찾는 벌떼가 야외에서 발견되어 민원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 때 모여있는 벌들은 이사를 위해 뱃속에 꿀을 잔뜩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배를 굽혀 벌침을 쏘지 못한답니다. 그리고 애초에 분봉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받은 도시양봉가들이 관리하기 때문에 분봉이 관찰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이러한 벌의 생태와 안전수칙을 적은 안내판을 도시양봉장에 설치하여 사람들의 안전사고도 예방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벌을 키우고 싶으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요?
벌을 키우려면 꿀벌, 벌통, 기본 양봉도구, 방충복, 벌통을 놓을 장소가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갖췄다면 도시 양봉 교육을 받고, 주위의 도시 양봉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경험을 쌓으면 훌륭한 도시 양봉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먼저 양봉이 나와 잘 맞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반비즈서울의 ‘원데이클래스’ 같은 일일체험을 통해 이를 먼저 확인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