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문화유산과 소중한 예술작품들은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그것이 없을 때에도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유네스코는 여러 국제기구 및 관련단체들과 함께 전쟁 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협약에서부터 문화재 밀반출과 불법거래 방지, 나아가 약탈된 문화재의 환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인류의 문화유산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술 발달과 함께 나날이 변화하는 세상이 던져주는 또 다른 도전 앞에서, 그러한 작업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 거리두기 속에서도 쉴 수 없었던 문화유산
코로나19는 약 2년 간 전 세계를 멈춰세웠다. 관광은 사라지다시피 했고 산업은 차질을 빚었으며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시에 의도치 않은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세계화와 인간의 이동성 증가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던 숲과 바다, 그리고 동물들이 어느 정도 숨 돌릴 틈을 마련했다. 관광객들의 발길 앞에서 신음하던 문화유산들도 마찬가지였다. 예고 없이 주어진 ‘안식년’ 덕에 세계 곳곳의 생태계와유적들은 조용한 회복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문화유산이 이러한 팬데믹의 의도치 않은 효과를 즐겼던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두기만 해도 스스로 회복하는 생태계와 달리 문화유산은 그저 내버려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예컨대 보호 활동 재원을 관광 수입에 의존하던 수많은 유산이 최소한의 보존을 위한 활동이나 시설 유지에 차질을 빚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을 차단한 사이,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 아래서는 검은 손길들이 유산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훔치고, 은밀하게 유통했다.
2021년 말 인터폴이 전 세계 72개 회원국의 보고를 취합해 발표한 「2020년 문화재 대상 범죄 집계」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인간과의 접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의 약탈과 밀반출, 그리고 밀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2020년 한 해 동안 인터폴에 자료를 제출한 회원국들이 압수한 문화 관련 도난품(회화, 조각, 고고학 유물, 도서, 동전과 메달 등)은 총 85만 4742점에 달했다. 보고서는 특히 도굴 등의 불법 발굴이 전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늘어났음을 보여주었는데, 전년 대비 증가폭은 아프리카에서 32%, 남북 아메리카에서 187%,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려 3812%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유적지나 발굴 현장에서 도굴꾼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린 셈이다. 문을 걸어잠근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사소한 절도 사건 발생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경찰력이 방역 관련 사안에 집중되는 틈을 노린 대형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싱어 라렌 미술관에서는 반 고흐의 작품이, 영국 옥스포드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미술관에서는 16-17세기 걸작 회화 세 점이 시설 폐쇄 기간 동안에 사라져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인터폴의 코라도 카테시(Corrado Catesi) 예술품 담당 코디네이터는 “팬데믹이 문화재 관련 범죄 양상에 분명 영향을 끼쳤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한 수요나 사건 발생 동기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각국이 국경을 걸어잠근 만큼, 범죄자들은 문화유산을 훔치고 운반하는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더 은밀하게, 더 편리하게
이와 같이 문화유산 불법 거래는 모든 것을 멈춰세우는 팬데믹 속에서조차 번영하는 사업이다. 유네스코 『꾸리에』는 2020년 10-12월호에서 “(문화재 보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고 문화재를 모니터링하고 추적·인증하는 시스템도 발달했지만, 문화재 불법거래의 기술 또한 고도화되면서 관련 범죄도 그만큼 늘고 있다”고 썼다. 불법거래의 특성상 상세한 통계 자체가 많지 않은 가운데, 유네스코는 문화재 불법거래가 마약과 무기 밀매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국제 범죄 활동이라고 추정한다.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전 세계의 유물 및 미술품 딜러들의 수요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문화재를 노리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촘촘하게 발달한 온-오프라인 네트워크는 이 둘을 더욱 은밀하고 빠르게 연결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 되고 있다.
21세기의 유물 밀거래 당사자들은 더는 야심한 밤, 인적 드문 부둣가에서 돈가방과 상자에 담긴 유물을 거래할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수십만 명의 회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락하고, 다크웹(dark web; 추적이 불가능한 인터넷 네트워크)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고 간편한 거래를 한다. 유네스코와 파트너십을 맺고 불법 유물 거래 디지털 네크워크를 조사·감시하는 학자 및 전문가 그룹인 ‘고대유물 밀거래 및 유산 인류학 연구(ATHAR)’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으로 페이스북에서 유물을 판매하는 단체 수는 120개에 달하며 가입 회원 수도 수십만 명에 이른다. 특정 그룹과 소통을 시작하면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이와 유사한 다른 그룹도 알아서 추천해 준다. AHTAR는 2014년부터 모은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끈질기게 압박을 한 끝에 2020년 6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하여금 자사 플랫폼에서 모든 역사 유물의 거래를 금지시키는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세계 각지의 제조 및 판매 거점을 잇는 글로벌 물류 시스템 또한 오늘날의 문화재 불법거래가 더욱 은밀하게 번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에서도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는 ‘프리포트(freeport)’는 물류 및 통관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문화재 불법 거래에 악용되는 또 다른 사례 중 하나다. 프리포트는 판매되기 전의 제품을 세금이 부과되지 않은 상태로 공항이나 항구의 면세 구역에 저렴한 비용으로 보관하도록 해 주는 창고 시설로, 유네스코는 2016년 9월에 열린 불법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 회의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의 프리포트가 문화재 불법 거래의 중간 경유지로 활용될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도난당한 문화재가 몇 년이고 이곳에 머무르면서 세계의 이목과 관계 당국의 추적이 한풀 꺾일 때를 기다리는 용도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세계적인 미술관의 이름까지 그러한 사례에 이름을 올렸다”면서 “1995년에 스위스 제네바 소재 프리포트를 거점으로 한 국제 약탈유물 거래 네트워크에는 미국 LA 소재 게티 미술관도 연루돼 있었다”고 밝혀 세계 예술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 욕망의 사슬을 끊기 위한 노력
문화재 불법 거래 환경이 이처럼 날로 좋아지면서,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그저 문화재 현장에서 훼손이나 도난을 방지하고 행위자를 처벌하는 수준을 넘어, 이 번창하는 사업의 수요자 쪽 연결고리를 끊어낼 묘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화재 불법 거래를 희귀동식물 밀반출에 비유하자면, 보호받는 동식물은 별다른 신고나 허가 없이 이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처벌을 받지만 엄연히 합법적 거래 시장이 존재하는 문화재 거래에서는 모든 수요자를 그렇게 대접할 수 없다. 따라서 유물이나 예술품의 경우에도 수요자가 자신이 구매하는 물건의 출처와 전달 과정이 적법한지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더 분명히 부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고학자이자 마스트리히트대 형법 및 범죄학과 부교수인 돈나 예이츠(Donna Yates)는 2017년 예술품 거래 전문 매체 『아트넷(Artnet)』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도 자신이 눈표범(snow leopard)을 데리고 명확한 설명 없이 공항 세관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고미술품 거래에 대한 인식도 이와 달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실 초창기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우선적으로 집중해 온 부분은 문화유산 파괴와 밀반출 행위 자체를 예방하거나 금지하고 그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유네스코가 1954년에 채택한, 전쟁 당사국의 문화유산 파괴 행위를 금지하고 보호 의무를 부과한 최초의 국제협약인 「무력충돌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일명 ‘헤이그 협약’)은 협약 위반자에 대한 제재는 규정하고 있지만 문화재 불법 유통과 거래에 대한 대응책은 구체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또한 이 협약은 전시 상황에 적용되는 협약으로서 ‘중요한 군사적 필요’가 있다면 그 의무조차 면제될 수 있었다. 헤이그 협약의 한계는 1970년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채택한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일명 ‘1970년 협약’)에 이르러 돌파구를 마련했다. 1970년 협약은 약탈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유통을 금지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이를 반환하는 것까지 규정함으로써 문화재 파괴와 약탈 행위자뿐 아니라 이를 중개하는 이에게도 일정 부분 부담을 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70년 협약 역시 협약이 마련된 1970년 이전에 발생한 사례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되지 않고, 협약 비준국이 마련해야 할 법적 조치를 일관성 있게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유네스코는 1978년 설치한 불법문화재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를 통해 주로 식민지 피탈국을 중심으로 제기된 ‘1970년 이전에 발생한 약탈 문화재의 반환 또는 환수’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1995년에는 국제사법위원회(UNIDROIT, 유니드로와)와의 협력을 통해 「도난 및 불법 반출 문화재에 관한 유니드로와 협약」을 마련함으로써 문화재 불법 거래의 수요자쪽 책임까지 명확히 했다. 2018년 유네스코가 유럽 내 사법 당국의 법 적용을 위한 지침서로 발간한 『Fighting the Illicit Trafficking of Cultural Property』(문화재 불법거래와의 싸움)은 유니드로와 협약이 “구매자가 해당 물품이 시장에 나온 경로가 불법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마침내 “(불법 거래 방정식의) 수요자 측면을 제대로 다루게 됐다”고 썼다.
— 제도와 단속만큼이나 중요한 것
이처럼 여러 협약과 법적 조치가 가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약탈되고 있으며, 전 세계 주요 미술품 경매처에는 출처가 미심쩍은 유물이 올라오고 있다. 인류 전체의 유산이란 원칙도, 구매자로서 마땅히 염두에 둬야 할 법적 책임과 의무도, 각자의 눈 앞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유물이 ‘나의 보물’로 보이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9년 영국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 올라온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두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도 그 한 예다. 당시 이집트 정부와 시민단체는 해당 유물이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규정한 유네스코 1970년 협약 발효 이후에 이집트에서 불법 반출됐다고 주장하며 경매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하지만 크리스티 측은 1960년대에 이 유물을 소유했음을 주장하는 전 소유주의 ‘공증 진술서’가 있다면서 이 유물이 적법한 경매물품이라 반박했고, 결국 해당 유물은 전화를 통해 470만 파운드(약 69억 원)라는 거액을 입찰한 익명의 투자자에게 낙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아므르 알아즘(Amr Al-Azm) 미국 쇼나주립대 중동사·인류학 교수는 『꾸리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모든 관심과 논의가) 1970년 이전에 이 유물이 이집트에서 반출되었는지 아닌지에만 집중됐다”면서 “애초에 이 유물이 어떻게 도난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고 짚었다. 합법과 불법의 논리를 따지기에 앞서, 무려 3천 년이나 된 이 소중한 유물이 고향을 떠나 경매장의 매물로 나오기까지의 경위가 과연 온당한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알아즘 교수는 “(유물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려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약탈당한 유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술시장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도 말했다.
사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이번 호 10-11페이지 기고 참조). 2012년 한국인 절도단이 일본에서 훔쳐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의 거취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법적 다툼과 논란이 그것이다. 이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는 것이 맞는지, 각각 소유권을 주장하는 한국과 일본 사찰들의 주장에 어떠한 법적 쟁점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물론 중요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유물이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인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보존되고 공유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아닐까? “(문화재의) 참된 가치는 그 기원, 역사 및 전통적 배경에 관한 가능한 모든 정보와 관련해서만 평가될 수 있다”고 한 유네스코 1970년 협약의 서문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이 모든 노력이 이루고자 하는 것은 결국 빈틈없이 작동되는 사법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의 가슴에 각자의 문화와 유산을 존중하고 내 것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뿌리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